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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쓸데없는 말이 넘치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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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안녕하세요>

 

영화 <안녕하세요> 포스터. ⓒ엣나인필름

 

오즈 야스지로는 일본을 대표하는 굴지의 감독 중 하나다. 20세기 전반부에 활동했으나 반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까지 도달했으니, 2024년 말에 <동경 이야기> <동경의 황혼>이 수십 년 만에 국내 최초 극장 개봉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그의 또 다른 걸작 <안녕하세요>가 우리를 찾아왔다. 1932년 무성 영화 <태어나기는 했지만>의 리메이크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2000년대 이후 특별전을 통해서만 소개되었으니 극장 개봉은 최초다. 일찍이 윤가은 감독의 인생 영화로 명성을 떨쳤고 김초희 감독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져 있다.

1959년에 제작된 만큼 장장 70년 가까이 지난 작품이지만, 유성 컬러이기에 큰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고 오즈 야스지로 감독 특유의 완벽주의가 최대치로 발현되어 불편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 영화의, 족히 한 세기는 앞선 역량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TV와 부녀회비, 사소한 사건의 균열

 

앞집, 뒷집, 옆집이 몇 걸음 차이로 붙어 있는 일본의 주택 단지, 미노루와 이사무 형제는 옆집에 놀러 가 TV로 스모 경기를 보는 걸 가장 재밌어한다. 엄마는 가지 말라고 하지만 형제는 어떻게든 몰래 가서 기어코 TV를 보고야 만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으니 TV를 사달라고 엄마한테 조르고 떼를 써본다.

한편 동네에 작은 사건의 파장이 점점 커진다. 부녀회장에게 부녀회비가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 하필 부녀회 반장 네가 세탁기를 샀다는 것. 회계 담당인 미노루 네한테 물어봤더니 회비를 모아 반장 네한테 전달했다는 것. 회비를 모아 전달했다는 사람이 있고 회비를 받지 못했다는 사람이 있는데, 누구의 말이 맞는가?

미노루와 이사무 형제는 결국 아빠한테 호되게 혼난다. 급기야 그들은 아빠의 “입 다물고 공부나 해라!” 하는 말에 침묵시위를 시작한다. 집에서, 학교에서, 동네에서 어른의 말에 답하지 않기로 한 것. 그들의 행동을 우습게 여기는 어른이 있는가 하면, 그들의 행동을 두고 그들의 부모를 넘겨짚는 어른이 있다. 그렇게 오해가 쌓이고 소문이 억측으로 발전하는데…

 

말 위에 말이 쌓일 때, 진실은 사라진다

 

영화를 이루는 사건이란 게 별거 아니다. 동네 어른들이 사소한 사건으로 오해를 쌓아가는 한편, 미노루와 이사무 형제는 TV를 사 주지 않는 부모님에 반발하며 침묵시위를 이어간다. 소소하고 귀여운 모습뿐이니 뭐라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할 정도다. 그런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두 사건 다 섬뜩한 통찰을 건네고 있다.

어른들, 주로 아주머니들 사이에 오고 가는 추측이 억측으로 이어지고 소문이 점점 악질적으로 변하며 오해가 진실인 것처럼 둔갑하는 과정이 꽤 리얼하다. 말의 성격이 변하기도 하고 말 위에 말이 얹히기도 하며 말이 사라진 자리를 다른 말이 대신하기도 한다. ‘부녀회장에게 부녀회비가 전달되지 않았다’는 진실을 온갖 말이 덮어 버리는 형국이다.

평소 이웃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 정도로 친하게 지내고 속속들이 모르는 게 없을 정도지만 집집마다 살아가는 모양새는 제각각이다. 자연스레 서로를 향한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고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른의 관계라는 게 예의, 체면, 무용의 영역인지라 단순하지 않으니 속시원히 해결되지 못한다.

 

침묵으로 던지는 가장 시끄러운 질문

 

영화는 바로 그 지점, 어른들이 예의 차리고 체면을 생각하며 쓸데없는 말로 관계의 빈 곳을 채우느라 진심이 전달되지 못하고 진실도 묻히고 마는 행태를 미노루와 이사무 형제의 침묵시위로 꼬집는다. 미노루가 침묵시위를 할 때 아빠가 입 다물고 공부나 하라고 했는데, 미노루는 어른들이야말로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냐고 반발한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좋네요” “별일 없죠?”처럼 말이다.

형제의 침묵시위는 겉으론 TV를 사 주지 않을뿐더러 입 다물고 공부나 하라는 아빠의 꾸지람에 대한 반발로 보이나, 실은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낭비하고 관계를 허비하는 어른들을 향한 일침이다. 그에 동네 어른들은 ‘쓸데없는 말이야말로 관계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라며 오히려 무용한 것들이 삶에 꼭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단순한 아이들이 맞는가, 복잡한 어른들이 맞는가.

영화 <안녕하세요>가 던지는 질문은 7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도 유효하다. 쓸데없는 말은 관계에 적당한 거리를 형성하며 환기를 시켜주지만, 쓸데없는 말뿐이라면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가 하면 말을 하지 않는다면 온갖 오해와 억측과 소문이 난무할 것이다. 그렇다고 곧이곧대로만 말하면 오래지 않아 관계는 파탄 나고 말 것이다. 이 모든 걸 적절히 아우르는 한편 적재적소에 적절하게 말을 써야 할 텐데, 역시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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