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몬테크리스토 백작>

19세기 중반에 출간된 알렉산드르 뒤마의 프랑스 대하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현대적인 ‘복수극’의 전형을 만든 작품으로 유명하다. 무진장 재밌기도 해서 후대에 족히 수십 편은 될 만한 영화 및 드라마로 만들어졌는데, 흔히 떠올리는 건 2002년 작 <몬테 크리스토>다. 상당한 수작인데, 문제는 원작을 상당히 뜯어고쳤다는 것이었다.
20여 년의 시간이 흐른 2024년 프랑스에서 원작을 제대로 살린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내놓았다. 당대 최고의 제작비를 쏟아부었고 역대급 흥행에 성공했다. 비평 면에서도 상당한 점수를 받았다. 특히 각본, 연기, 미장센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는 바 피에르 니네이가 분한 몬테크리스토 백작애는 ‘역대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리고 2년 여 만에 국내에 상륙했다.
대략의 내용과 메시지까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수십 차례 재탄생한 상황에서 칭송을 받고 사람들을 불러들이려면 어떻게 만들어 내야 할까?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이 좋은 예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항해 프랑스가 만들어 낸 최고의 대작이지 않을까 싶다.
에드몽 단테스, 배신으로 시작된 나락
1815년, 지중해 한복판에서 선원에 불과한 에드몽 단테스가 선장 당글라르의 명령을 어기고 침몰한 배에서 여인 앙젤을 구한다. 그녀는 나폴레옹의 편지를 갖고 있었는데 당글라르가 압수한다. 마르세유에 도착한 배, 당글라르는 선주 모렐에게 단테스가 한 짓을 이르지만 모렐은 오히려 그를 내쫓고 단테스를 선장에 앉힌다.
단테스는 곧 집으로 돌아가 비밀 연인 메르세데스와 신분을 초월한 결혼을 선언한다. 하지만 그의 친구이자 메르세데스의 사촌이기도 한 페르낭 중위가 질투심에 휩싸인다. 축복의 결혼식 당일, 느닷없이 검사 대리 제라르에게 끌려간다. 그의 성경책에서 나폴레옹의 편지가 발견되었다는 혐의. 그는 극구 부인하지만 감옥으로 끌려간다.
당글라르가 사주했고 페르낭이 묵인했으며 카드루스가 가담한다. 제라르가 실행한다. 사실 앙젤은 제라르의 친동생이었는데, 앙젤이 단테스를 구하고자 사생활로 제라르를 협박하자 그는 친동생을 납치해 사창가에 팔아 버린다. 한편 단테스는 이프 요새에 갇혀 지옥 같은 생활을 이어간다.
감옥 생활 4년 후 템플 기사단의 마지막 생존자 파리아 신부를 만나고 그에게서 온갖 지식을 습득한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금은보화가 있다는 몬테크리스토 섬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렇게 다시 10년 후, 탈출 직전 파리아는 죽고 단테스 혼자만 탈출에 성공한다. 이윽고 스스로를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 칭하며 치밀한 복수극을 시작하는데… 당글라르, 제라르, 페르낭, 카드루스의 운명은?
거대한 서사를 압축하는 미학
2024년작 프랑스판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광대하면서도 섬세하고 폭발적이면서도 우아하며 스피디하면서도 고즈넉하다. 상당히 모순적으로 보이는데, 그만큼 단편적이지 않고 복합적이라는 뜻이겠다. 이런 면과 저런 면을 따로 또 같이 염두에 두고 보면 재미가 배가될 것이다.
대서사시의 원작을 축소시키는 게 가장 큰 난관이었을 테다. 적절하면서도 과감하게 줄여야 하는데, 성공했다. 자연을 광활하게 보여주는 한편 캐릭터를 섬세하게 구축했다. 이를테면 단테스가 생애 전성기에서 나락으로 떨어져 오욕의 세월을 견디고 본격적으로 복수극을 시작하기까지 절반을 할애했다.
사실 하이라이트는 후반부, 즉 단테스의 복수극이나 이야기로서 마음이 움직이고 몰입하는 부분은 전반부다. 대격변의 시간을 보내는 그 모습에서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곳곳에서 복선이 보이는데, '복수보다 생명' '타인을 향한 복수보다 자신을 향한 애정'이 단테스의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었다.
우아하고 절제된 복수의 완성
후반부의 복수극은 폭발적이고 스피디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자극적인 요소들이 많다기보다 단테스의 행동에 군더더기가 없다고 하는 게 맞을 듯싶다. 실로 오랫동안 생각해 왔고 연마했으며 시뮬레이션했으니 실행에 옮기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아하고 고즈넉하기까지 하다. 프랑스 영화 특유의 느낌, 또는 낭만주의로 대표되는 19세기 프랑스의 모습, 혹은 복수의 화신으로 돌아왔으나 삶을 대하고 인간을 대하는 데 정점에 다다른 단테스로 말미암아 분위기, 연기톤, 미장센 등 거의 모든 게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주지했듯, 19세기 초중반 프랑스가 주요 배경이다. 나폴레옹 1세 득세 후 몰락-왕정복고-혁명 시대-독재 시대-제국주의 등으로 이어지는 혼란의 극치였다. 단테스는 자신도 모르게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으나, 자신의 힘으로 헤쳐 나왔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험난하면서도 처절한 과정이 바로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다.
여러모로 원작의 톤 앤 매너를 탁월하게 매무시하여 펼쳐 보인다. 원작의 팬들도 감상하기 용이하고 원작을 전혀 모르는 이들도 감상하는 데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오랜만에 선보인, 제대로 된 대하영화 한 편이 나왔다. 그저 즐기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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