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100미터.>

육상은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스포츠다. 그중에서 달리기는 가장 원초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장치도 없이 순수하게 몸 하나만 이용하니 말이다. 한 발 더 들어가면, 가장 짧은 100미터 달리기와 가장 긴 42.195km 마라톤이 가장 인기가 많다. 10초 남짓한 시간과 2시간 남짓한 시간에 인생이 담겨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100미터.>는 직관적인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100미터 달리기 선수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동명의 원작 만화는 우오토 작가의 데뷔작인데, 이 작품 이후 내놓은 <지.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로 명성을 떨쳤다. 두 작품의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결은 비슷하다.
철학을 전공한 만큼 그의 만화들 전반에 꽤 심오한 철학적 신념들이 포진되어 있는 만큼, <100미터.>도 외형상 100미터 달리기 선수들 간의 치열한 경쟁과 승부를 다루지만 실상 각각의 인생철학이 만들어지고 다듬어지고 변하는 가운데 신념과 신념이 부딪히는 걸 보여주고 있다.
타고난 천재와 끝까지 달리는 사람
토가시는 100미터 달리기로 자타공인 일본 초등학교 전국 1등이다. 선천적으로 발이 빨랐고 조금의 노력으로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올라섰다. 나아가 그는 누구보다 100미터를 빨리 달리면 어떤 문제도 다 해결된다는 걸 알았다. 일종의 권력이자 지위였으니, 덕분에 선생님께 예쁨 받고 친구들을 잘 사귈 수 있었으며 누구든 그를 호감 있게 대했다.
그런 그의 앞에 코미야가 나타났다. 누구보다 잘 달리고 싶어 하지만 누구보다 달리기가 느린 그, 토가시는 그만을 위해 개인 훈련을 해줬고 덕분에 빨라지게 되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전학을 가 버렸다. 이후 토가시는 중학생을 지나 고등학생이 되었고 그 사이 슬럼프를 겪었다. 이제 달리기를 그만둬야 하나 싶을 때 육상부에서 입부 제안이 들어온다.
신경도 쓰지 않던 토가시, 육상부원 앞에서 별생각 없이 달렸을 때 알 수 없는 뭔가가 느껴지고 다시 뛰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지역 대회를 지나 전국 대회에 나서는 토가시, 무적의 포스로 결승에 진출하나 다름 아닌 코미야가 그의 앞을 가로막는데… 토가시 그리고 코미야의 달리기 인생은 어떤 식으로 계속될 것인지?
달리기를 대하는 서로 다른 인생의 태도
10초 남짓한 100미터 달리기가 인생을 비유한다는 건 과할 수 있다. 아무리 인생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고 해도 말이다. 다만 100미터 달리기를 대하는 태도나 자세를 둘러싼 이야기들로 인생을 들여다볼 순 있겠다. 인생이라는 게 무언가 존재하고 그것에 작용하면서 이어진다. 작용하는 모습은 제각각이다.
토가시에게 달리기는 당연한 것이었다. 굳이 거머쥐려 노력할 필요도 없이 달리기와 함께할 운명이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쟁취하려 하기보다 달려야 하니까 달린다는 느낌이었다. 목적의식이 점점 흐려질 수밖에 없았다.
코미야에게 달리기는 잡고 싶지만 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달리기와 함께할 운명은 아닌 것 같았다. 방법을 몰랐다. 하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해 열심히 쟁취하려 했다.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을 정신적 목적의식이 확고했다.
그런가 하면, 오랫동안 최정상에서 군림하는 이는 내려오는 순간을 꿈꾸고 만년 2등은 1등 만을 바라보고 다른 무엇도 신경 쓰지 않으며 만년 3등은 도달할 수 없는 보다 높은 곳이 존재한다는 현실에서 달아나고자 오히려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왜 달리는가, 왜 살아가는가
<100미터.>는 재차 묻는다. '왜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가?'라고 말이다.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 먹고살려고 하는 게 보편적인 답일 것이다. 라이벌을 제치려고, 1등을 하려고, 기록을 세우려고 한다는 것이 한 발 더 들어간 답일 테다. 본인의 이름을 만방에 떨치는 한편 역사에 남겨 보려 한다.
궁극적이고 원초적인 답이라 하면 '달릴 수 있으니 달린다'일 것이다. '산이 거기에 있어 그곳에 간다'라는 명언처럼 말이다. 반면 인생철학에 맞닿아 있는 답이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재밌으니까 달린다'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달릴까? 다른 말로, 우린 왜 이 일을 하는 걸까? 내 삶의 이유는 뭘까? 재미가 없으면, 재미를 찾지 못하면, 재미를 추구하지 않으면 할 수 없고 살아갈 수 없다. 타인의 재미, 나의 재미, 존재하는 재미, 발견되지 않은 재미를 내가 누리고 타인에게 전해 주며 후세에까지 남기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하여 <100미터.>는 재미의 궁극, 궁극적인 재미를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100미터 달리기는 가장 직관적이면서도 원초적이고 철학적이기까지 한 소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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