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4월 이야기>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를 떠나 멀리 수도 도쿄의 무사시노대학에 입학해 상경한 니레노 우즈키는 벚꽃이 만개한 4월을 만끽한다. 본격적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혼자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이사를 단행한다. 생각보다 짐이 너무 많아 상대적으로 좁은 집을 꽉 채우니 뭐라도 버려야 할 판이다.
이사를 왔으니 이웃집에 뭐라도 돌리려니 이웃집 여자가 범상치 않은 것 같다. 학우들이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 와중에 우즈키만 두터운 니트를 입고 있으니 누군가 비꼬는 말투로 덥지 않냐고 물어와도 할 말이 없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동급생 데루코가 말을 걸어와 낚시 동아리에 발을 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즈키에겐 큰일이 있다. 홋타이도를 떠나 도쿄의 무사시노대학에 입학한 결정적인 이유 말이다. 그녀는 주말이면 동네 서점에 자주 들르는데, 그곳엔 야마자키라는 사내가 일을 하고 있다. 우즈키는 아무래도 그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이상의 연유가 있는 듯하다. 뭘까?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이와이 월드의 또 다른 정점
이와이 슌지는 본국 일본보다 한국에서 훨씬 더 인지도가 높은 감독으로, 일명 '이와이 월드'라고 불리는 독보적 스타일을 구축한 거장이다. 1990년대 초 데뷔해 영화 연출 데뷔작 <Undo>와 이은 <러브레터>로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다. 흥행보다 작품성에서 인정을 받은 케이스로 '이와이 월드'는 이미 구축되어 있었다.
이후 1998년에 내놓은 <4월 이야기>가 그의 다섯 번째 작품으로, 한 시간 남짓의 짧은 러닝타임에 '시작'의 아름다움을 담았다. 우리나라가 흔히 3월(학기의 시작)을 시작으로 삼는데 반해 일본은 4월이 시작점이다.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는 동일하게 4월이니 만큼 이 영화를 제목에 맞게 4월에 감상하면 금상첨화겠다.
우리나라에선 2000년 4월에 최초 개봉했고 2013년 4월에 재개봉했으며 2025년 4월에 재재개봉하여 우리를 찾아왔다. 티끌 없이 아름답기만 한 이 영화는, 바로 그런 이유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만하다. 별 것 없이 아름답기만 한 영화라. 그리고 60분에 불과한 러닝타임을 '시작'으로 채우기만 하니, 비록 콘셉트를 충실히 이행한 결과물이겠으나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시작, 봄, 설렘으로 가득 차다
주지했듯 영화는 '시작' 그리고 '봄'으로 화면을 오롯이 채운다. 봄 하면 사계절의 시작으로 세상 만물이 새롭게 시작하는 시기다. 그러니 뭐든 설레고 기대감이 충만하다. 이 영화만큼 잘 살린 경우도 찾기 힘들 것이다. 심지어 주인공 이름 우즈키(卯月)에 '음력 4월'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니 말이다.
그녀의 첫사랑, 첫 상경, 첫 이사, 첫 독립 그리고 대학 입학과 첫 학기의 시작, 첫 친구, 첫 동아리 등과 봄비까지 시작이 아닌 게 없다. 다분히 의도적인 연출인데 위화감이 들지 않는 건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감성을 끄집어내 촉촉이 적시기까지 하니 다른 데 시선을 돌릴 여유 따윈 없다.
시대가 지나고 변해도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설렘을 안기고 그리움을 유발할 것이다, 감성을 섬세하게 터치할 것이다. 하지만 뭔가를 남기진 못한다. 내게로 뭔가가 들어왔는데 타인에게 전해 주기가 힘들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덩어리라고 할까. 그렇게 각자 자신만의 형태로 간직하게 된다. 이와이 슌지의 마법이랄까.
적어도 감성적인 측면에서 이 영화는 이와이 슌지의 정점이다. 이성적인 측면, 그러니까 서사를 이끄는 스토리텔링이 끼어들 수 없다. 애초에 염두에 두고 있지 않기도 하지만 말이다.
하여 이 영화는 시작의 설렘을 시각적으로 대리 경험하고 싶을 때, 그 아름다움을 가슴에 새기고 싶을 때, 메마른 감성을 다시 촉촉이 적시고 싶을 때 언제든 한 번씩 꺼내 보면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감성 충전소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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