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카우보이 비밥: 천국의 문>
지난 세기말에 만들어져 방영되며 여러 면에서 재패니메이션의 최정점을 찍은 애니메이션 시리즈 <카우보이 비밥>은 지금도 여전히 큰 사랑과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2021년에 비록 큰 실망감을 안겨 줬지만 큰 기대감을 안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실사화를 선보였을 정도니 말이다.
이 시리즈는 2001년에 딱 한 번 극장판으로도 선보였는데 <카우보이 비밥: 천국의 문>이 그 작품이다. TV판의 제작진들이 거의 그대로 투입되어 만들었으니 시대의 걸작인 원작 특유의 특징들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하여 원작의 팬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극장판 또한 걸작이라는 점을 미리 말해둔다.
TV판은 고작 26화에 불과한데 요즘뿐만 아니라 그때도 잘 나가는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에피소드를 양산하는 양상과 완전히 반대다. 짧고 굵게, 깔끔하게 끝마친 것이다. 극장판은 22화와 23화 사이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바 원작의 클라이맥스로 치닫기 직전이다. 하여 전체적인 분위기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종합적이다.
바이오 테러의 뒤를 쫓는 현상금 사냥꾼
2071년 화성의 수도 알파 시티, 핼러윈을 앞두고 다들 들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와중에도 슈퍼마켓에는 강도가 든다. 그리고 그곳에는 경찰보다 빠르게 현상금 사냥꾼이 출몰한다. 스파이크 스피겔과 제트 블랙도 그중 한 팀이다. 그들은 낡은 우주선 비밥호를 타고 유랑 중인데 페이 발렌타인과 해커 에드가 함께한다.
어느 날 고속도로를 달리던 트레일러가 폭발하며 근방 3km 내 사람들이 죽는다. 당국은 바이오 테러를 의심하며 트레일러에서 내려 홀연히 사라진 용의자에게 거금 3억 우롱의 현상금을 내건다. 비밥 일행은 한몫 크게 챙겨볼 요량으로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에드 덕분에 유명 제약회사가 관련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 일행, 스파이크는 용의자 빈센트 블라쥬를 쫓는 한편 제약 회사에 직접 잠입하려 하고 페이는 리 샘슨이라는 해커를 쫓던 중 그가 빈센트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트는 전직 경찰로서 현직 경찰에게서 정보를 뽑아 보려 한다. 그들은 크게 한몫 챙길 수 있을까?
복합적인 장르, 장르의 잡탕
21세기 들어 나오는 콘텐츠들은 대개 선명함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오로지 끝을 향해 달려가니 장르의 복합성 아닌 단순함을 지향한다. 하여 이것저것 섞는 걸 잡탕이라고 폄하하기 십상인 것이다. 하지만 지난 세기말 때만 해도 복합적인 장르, 장르의 잡탕은 시대를 반영하는 상징이었다. 1천 년 만에 돌아온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카우보이 비밥>이야말로 애니메이션을 넘어 콘텐츠 전 영역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장르의 조화롭고 아름답기까지 한 잡탕의 파티를 보여준다. 극장판은 그걸 다시 훌륭하게 압축해 보여주는 만큼 원작과 따로 또 같이 즐길 만하다. '우리는 지금 과연 진짜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인가?' 하고 질문을 던진다.
위의 질문은 원작과 극장판을 총체적으로 아우른다. 원작의 배경 설명을 살짝 하자면, 차원문을 건설하던 중 문제가 발생해 달이 파괴되고 파편이 지구로 떨어지니 인류는 지하도시를 만드는 한편 화성을 비롯한 타 행성과 위성으로 이주한다. 와중에 네 주인공은 각자의 사연으로 아픈 과거를 갖고 현재를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다.
과거의 상처와 내면의 아픔을 딛고
사이버 펑크를 기반으로 스페이스 오페라까지 섭렵하는 등 온 세상을 휘젓고 다니는 한편 하드보일드 누아르의 주인공처럼 어느새 굉장히 진지해지는 건 과거의 상처에서 기반한 내면의 아픔이 상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과거의 상처와 내면의 아픔을 딛고 나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이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현상금 사냥꾼이라는 직업은 주인공들의 특수한 과거에서 기인한 측면과 작품에 다양한 종류의 활기를 불어넣는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주인공들이 스스로를 되찾고자 발버둥 치는 와중에도 범죄자들을 소탕하고 돈을 버는 이상적이자 현실적인 행동의 발현이기도 하다. 다분히 ‘만화스러운데’ 그래서 더 정이 간다.
<카우보이 비밥: 천국의 문>은 우리나라에 2003년 처음으로 찾아왔고 22년 만에 재개봉으로 다시 만난다. <카우보이 비밥>이 아무리 인기가 많다고 해도 극장에서 제대로 본 이들은 많지 않을 테다. 절호의 기회를 잡아 극장에서 이 하드보일드 누아르 SF 스페이스 오페라 사이버 펑크 코믹 액션 모험 활극을 만끽하시길. 후회 따윈 없을 것이다.
'신작 열전 > 신작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마른 감성을 다시 촉촉이 적시고 싶을 때 언제든 찾는 감성 충전소 (0) | 2025.04.30 |
---|---|
100% 수작업 애니메이션이 전하는, 시대를 관통하는 위로 (4) | 2025.04.28 |
오직 창의성만이 모든 것의 근원인 그곳으로 당장 달려가고 싶다 (0) | 2025.04.21 |
'인도 영화의 재발견'이라는 상투어가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없다 (0) | 2025.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