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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생존 본능에 따라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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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플로우>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플로우> 포스터. ⓒ판씨네마

 

'획기' '파격' '혁신' 등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듯싶다가도 이어진다. 역사가 꽤 오래된 영화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장편 애니메이션 <플로우>가 꽤 들어맞는다. 지난 3월 초에 있었던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거의 모든 이의 예상처럼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골든 골로브에서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고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영화제인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한 <플로우>는 라트비아 출신의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의 사실상 1인 작품이다. 

그는 제작, 연출, 각본, 작화, 디자인, 음악, 편집 등까지 작품을 구성하는 모든 걸 단독으로 작업한 <어웨이>로 장편 데뷔를 하고 국내에서도 개봉한 이력이 있는 바 이번에는 제작, 각본, 음악 등에서 협업하여 퀄리티를 끌어올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혁신의 제작 환경을 고수하고 있다.

<플로우>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면 극의 주인공은 오로지 동물들, 하여 당연한 듯 말 한마디 들려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동안 수많은 애니메이션이 동물을 의인화(심지어 감정도 의인화)하면서 당연한 듯 그들에게 '인간의 목소리'를 부여했는데, 이 작품은 현실 그대로를 담으려 하다 보니 인간의 목소리 없이 동물들 각각 고유의 소리가 극을 가득 채운다. 새로운 흐름의 시작으로 우뚝 설까.

 

세상을 뒤덮는 대홍수 속

 

무슨 일인지 인간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인간을 찾을 수 없는 세상, '고양이' 한 마리가 숲과 집을 오간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걸 뒤덮는 대홍수가 세상을 덮친다. 고양이는 홀로 영위하던 일상과 집을 잃었을 뿐 아니라 목숨까지 잃을 판이다. 다행히 낡은 배가 다가오니 살 수 있었다.

낡은 배에는 '카피바라'가 타고 있다. 무뚝뚝한 듯 친화력이 좋고 이것저것 잘 챙겨주며 다 잘할 것 같은 만능인 카피바라는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 드러누워 자곤 한다. 한편 고양이와 먹이 경쟁을 하던 개들 중 '골든 리트리버'가 낡은 배에 탑승한다. 압도적인 친화력이지만 어리바리한 리트리버 덕분에 배가 활기차다.

혼자가 좋고 경계심이 강하며 예민한 고양이지만 책임감 있는 행동을 보인다. 와중에 뭐든 물불 안 가리고 수집하는 데 바쁜 '안경원숭이'가 탑승하고 위험에 빠진 고양이를 보호하려다가 우두머리에게 대항했다가 날개를 다친 '뱀잡이수리'가 합류한다. 선장 역을 맡는다. 그들은 대홍수로 모든 게 물에 잠긴 세상을 낡은 배 한 개에 의존해 떠다닌다.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긴 듯.

 

생존 본능에 따라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고 대하는 시각은 많이 왜곡되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자는 구호가 대다수를 이루는데, 더불어 살아간다는 건 인간과 자연이 다른 개체라는 걸 전제한다. 하지만 엄연히 자연 안에서 인간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원래 지구는 자연의 것이었는데 인간이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영화 <플로우>는 자연을 새롭게 바라보고 대하는 시각을 제공한다. 아니 새로운 게 아니라 원론적인 시각일 것이다. 인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세상에서 대홍수로 모든 게 물에 잠겨갈 때 몇몇 동물들이 노아의 방수처럼 낡은 배를 타고 항해한다. 목적 없이 오직 생존을 위해. 그 자체로 다분히 동물의 시각이 반영되었다.

인간은 생존 아닌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아니 누군가가 그렇다고 믿게 하고 대다수가 그 말을 믿는 식이다. 하지만 인간도 '생존'이라는 원론적인 목적이 성사되지 않으면 다른 무엇도 허사다. 제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숨을 쉬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으면, 배출하지 않으면 죽는다.

영화 속 고양이, 카피바라, 골든 리트리버, 안경원숭이, 뱀잡이수리는 생존 본능에 따라 자연의 흐름에 자신들을 오롯이 맡긴다. 말 한마디 없으니 답답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지만 명확하고 정확한 지점이다. 인간 없는 자연의 동물에게서 말이 들려오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는가.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제목을 곱씹으며 보면 색다를 것이다. 인위적이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흐름' 말이다. 하여 어느새 편안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살면서 그런 조언을 많이 들어보지 않나. "몸에 힘을 빼고 흐름에 자신을 맡겨"라고. 수영할 때는 물의 흐름에, 달릴 때는 바람의 흐름에, 서핑할 때는 파도의 흐름에. 그리고 살아갈 때는 세상의 흐름에.

이 영화의 미시적 키포인트라고 하면 동물들의 사고방식과 행동거지다. 고양이, 골든 리트리버는 많이 보이고 잘 알려져 있어 친숙하게 봤는데 다른 동물들은 동물원이 아니면 생전 한 번 보기도 힘들다. 그런 이들의 특성을 잘 살린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감탄이 일 뿐이다. 인간으로선 이해되지 않지만 한편 그들로서는 당연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새로운 관점의 정립.

하여 이 영화는 잘 만들어지기만 한 게 아니다.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새로운 흐름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으며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성립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작품 안팎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할 거라고 본다. 인위적으로 혁신하려 들지 말고 흐름에 맡길 때가 왔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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