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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그럼에도 "아이 엠 러브"라고 외치며 나아간다면 응원해 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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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아이 엠 러브>

 

영화 <아이 엠 러브> 포스터. ⓒ영화사 진진

 

러시아 출신의 엠마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공장으로 막대한 부를 쌓아 올린 레키 가문으로 시집을 온다. 시아버지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레카 가문의 일원, 후계자를 지목하는 중요한 자리이기도 하다. 장자 탄크레디는 당연한 듯 후계자로 지목되지만 장손 에도아르도 또한 공동 후계자로 지목된다.

그곳에 찾아온 에도아르도의 요리사 친구 안토니오, 우연히 엠마와 마주친다. 그리고 몇 달 후, 에도아르도의 파티 준비를 위해 안토니오가 오고 다시 엠마와 마주친다. 그리고 엠마는 시어머니, 며느리와 함께 안토니오가 운영하는 가게로 가서 또다시 안토니오와 마주친다. 연달아 마주친 엠마와 안토니오 사이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한편 엠마의 막내딸 베타는 '인연을 만나는 건 고독만큼 멋진 거야. 우린 용기를 내야 해.'라는 말로 남자 아닌 여자를 좋아한다고 커밍아웃했는데 엠마가 우연히 그 편지를 본다. 엠마는 그런 막내딸을 이해한다. 훗날 그녀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예견하는 걸까? 그녀는 결국 또다시 안토니오와 우연히 마주한 뒤 그를 쫓아가는데…

 

루카 구아다니노와 틸다 스윈튼

 

2018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이탈리아의 차기 거장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사실 그전에도 두 작품을 국내에서 개봉시킨 바 있다. 2016년 <비거 스플래쉬>와 2011년 <아이 엠 러브>가 그 작품들인데 일명 '욕망 3부작'의 일환이다. 이후 그는 매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와중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2년, 4년의 시간을 두고 두 번의 재개봉을 했고 이번에 <아이 엠 러브> 역시 7년, 7년의 시간을 두고 두 번의 재개봉을 했다. 특히 <아이 엠 러브>는 루카 감독의 얼마 되지 않는 연출, 각본, 제작 작품으로 그의 작품들 중 그나마 '스토리'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의외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작품들은 스토리가 아닌 영상미와 감정선에 초점을 둔다. 

이 작품의 키포인트라면 단연 엠마 역의 '틸다 스윈튼'일 것이다. 영국 출신의 이 대배우는 <아이 엠 러브> 이전에 이미 베니스, 아카데미 등을 석권했으며 <콘스탄틴> <나니아 연대기> 등의 대중상업영화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다. 물론 이후의 행보가 훨씬 더 폭넓긴 하지만 말이다. 중년의 길목에 있는 재벌집의 기품 있는 맏며느리에서 한순간에 모든 걸 뒤로하는 순수한 자연인까지 오간다.  

 

미묘한 균열과 단단한 사랑

 

이탈리아를 대표할 만한 레키 가문의 가업, 하지만 2대에 이르러 흔들린다. 아니 흔들릴 수밖에 없다. 후계자를 장자와 장손에게 맡겼으니 당연히 장자가 생각하기에 장손이 마땅할 리가 없다. 그리고 외부에서 큰손이 다가오니 장자와 장손의 대응이 다르다. 장손이 장자를 보좌해야 하는데 미묘한 '균열'이 생겨 서로 반목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 엠 러브>는 제목처럼 '사랑'을 말하기에 앞서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해 보이나 아주 약하디 약한 끈으로 이어질 뿐인 이탈리아 상류층, 귀족층, 재벌가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들은 사랑 따윈 거들떠도 보지 않은 채 돈의 청사진과 가문의 미래만 들여다볼 뿐이다. 한 발 더 내디디면 개인의 욕망이 투영된다.

그러니 미묘한 균열 하나만으로도 무너지기 십상이다. 가족, 가문이라는 혈연 공동체가 이래도 되나 싶게 말이다. 반면 엠마와 베타를 통해 보여주는 '사랑'은 끈끈하고 단단하며 서로를 향한다. 그러면서도 진짜 자신을 들여다보려 한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나일 수 있게 하고 싶은지 등을 말이다.

 

용기를 내는 건 또 다른 이야기

 

일찍이 보여주는 베타의 사랑, 그녀가 쓴 '인연을 만나는 건 고독만큼 멋진 거야. 우린 용기를 내야 해.'라는 문장이 핵심이다. 더 이상 남자가 아닌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 그녀의 진짜 모습이자 진짜 사랑이라는 것, 그녀는 용기를 냈고 엄마 엠마는 그녀의 진면목을 오롯이 받아들인다. 그녀 또한 용기를 내는 걸까?

엠마는 정녕 우연히 아들 에도아르도의 절친 안토니오와 마주쳤고 이후 몇 번의 우연이 있은 후 필연으로 옮긴다. 그녀가 그를 찾은 것. 그렇게 그들은 마치 평생의 반쪽을 만난 듯 미친 득 사랑하지만 '용기'를 내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재벌가 맏며느리로서의 모든 걸 버려야 하니까 말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앞뒤로 꽉 막힌 현실에서 잠시잠깐 도망치려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걸 과연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려면, 투철한 용기로 가진 걸 뒤로하고 자유를 체득한 뒤 미래의 식어버릴 사랑까지 각오해야 한다. 그럼에도 "아이 엠 러브"라고 외치며 나아간다면 응원해 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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