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미키 17>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가는 모양새다. 제작비가 1억 달러를 상회하는 중형급 블록버스터인 만큼, 또 '봉준호'라는 이름이 주는 파급력이 있는 만큼 당연한 모양새이기도 할 텐데 아쉽게도(?) 사회적 논란으로까진 커지지 않는 모양새다. 다분히 '봉준호 월드' 내에서 영화를 보고 위치시킨 후 다루기 때문이다.
영화 <미키 17>은 2022년에 출간된 에드워드 애슈턴의 미국 소설 <미키 7>을 원작으로 했는데, 특이할 점이 초고가 나왔을 때 계약했고 출간되기도 전에 각색 작업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만큼 봉준호가 작품 자체에 자신이 충만했다는 뜻일 테다. 그 자체로 소설과 영화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봉준호의 작품들 대다수가 그렇듯 복합다양다층적이다. 때론 장르도 다양한데 이 작품도 SF 어드벤처를 기반으로 블랙 코미디, 정치 드라마, 디스토피아에 로맨스까지 가미했다. 그리고 각각의 장르가 각각 다른 주제를 담은 이야기를 내보인다. 종국에는 하나의 거시적인 주제로 모이지만 전반적으로 정신없는 편이다.
미키 반스가 미키 17이 되기까지
2054년 지구, 미키 반스는 보육원 동기 티모와 함께 사채 빛까지 끌어들여 마카롱 가게를 차렸다가 쫄딱 망해 삶이 얼마 안 남은 상황이다. 지구 끝까지 쫓아가는 악덕 사채업자 다리우스를 피해 우주로 향하는 그들, 케네스 마샬이 국회의원에서 두 번 낙마한 후 새롭게 추진하는 니플헤임 행성 이주 프로젝트에 지원한다.
문제는 미키, 아무 능력도 없는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익스펜더블' 자리에 지원한다. 신체 정보와 기억을 완벽히 저장한 후 사망하면 인체 생성 프린터로 고스란히 되살려 내는, 하여 미키는 온갖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고 되살아난다. 그 덕분에 니플헤임에서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죽었어야 할 '미키 17'이 죽지 않았다. 하여 '미키 18'이 태어났고 그들은 위험에 처한다. 이른바 멀티플은 발각 즉시 영원히 삭제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착하고 순진한 미키 17에 비해 불같고 날카로운 성격의 미키 18, 마냥 쉽게 당할 것 같진 않다. 한편 니플헤임 행성의 토착생물 크리퍼들이 모두 나서서 본부를 둘러싸는데… 안팎에서 긴박한 모양새다.
'인류를 위한다'는 말의 위선과 반응
<미키 17>에서 미키 반스는 인류를 위해 자기 한 몸을 희생한다. 물론 몸과 정신이 온전히 되살아나긴 하나, 또 그가 무슨 투철한 신념이나 사명감을 지니지 않았다고 하나 목적과 결과는 그렇다. '소모품'이라는 뜻 그대로 가장 하찮은 취급, 밑바닥 취급을 받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없으면 니플헤임 행성에서 살 수가 없다.
그런데 인류를 위해 자기 한 몸을 수없이 내던지는 미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바로 그 '인류를 위한다'는 일이 누군가한테는 정반대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들이 하려는 게 니플헤임 행성을 테라포밍(지구화, 타 행성에 지구의 환경과 생태계를 인위적으로 조성해 지구생물이 살 수 있도록 하는 것)하는 것이니, 정작 니플헤임 행성의 환경과 생태계와 생물은 어찌 되는 것인지?
이 영화가, 봉준호 감독이 이 지점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 리는 없다. 하여 후반부에 그런 식으로 봉합을 한 것일 텐데, 그 때문에 전체적으로 헐거워지고 평면적이게 되었다. 디테일에 신경 쓰는 만큼 신경 쓸 게 많았을 텐데, 장르도 주제도 너무 여러 가지라 모든 걸 다 들여다보려 하니 조금 힘겨웠던 게 아닌가도 싶다.
그게 봉준호답다고 할까. 우린 바로 그런 봉준호를 좋아하고 또 기다리고, 여지없이 보고 물고 뜯고 맛보는 걸까. 왠지 봉준호 감독이라면 이런저런그런 반응을 모두 예상하고 있을 것 같다는 말이다.
독재자 부부가 연상시키는 것들
이 작품이 몇 년 전에 각색 작업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배제한 채 보면, 단연 케네스 마샬과 일파 마샬 부부가 눈에 띈다. 멍청하지만 잔인하고 조급하며 막무가내인 독재자 케네스와 뒤에서 그를 조종하는 일파 부부는 누가 봐도 윤석열과 김건희를 연상시킨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상당히 평면적인 현실과 캐릭터의 대응임에도, 각색 작업 당시 미래를 예견하고자 한 게 아니라 과거 역사를 들여다보고 만들었을 텐데도, 분명 예언한 것처럼 들어맞았다. 서글프고 안타깝고 황당하게도 역사는 역시 반복된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 지점이 한국에서 일반대중에게 잘 먹혀 들어갈 한편, 흥행의 한계를 긋고 별점 테러까지 각오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 사정이 그렇다.
종합적으로 <미키 17>은 '봉준호 영화' 치곤 평범하고 평균적이어서 한 번으로 족하나 '봉준호'를 빼고 보면 두세 번 다시 보면서 디테일하게 들여다볼 것 같다. 상업영화와 비상업영화(또는 예술영화)가 요즘만큼 극단적으로 나뉜 적이 없는 와중에 이런 작품을 찾기 어려우니 말이다. 그러니 '봉준호 월드'라고 하지 않겠나.
이러니 저러니 해도 봉준호 영화를 기다린다. 차기작으로 애니메이션이 거론되고 있는데 최소 2년은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의 작품이 영화로만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사회 전반으로 퍼져 다양한 이야기로 나아갔으면 한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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