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1939년 9월 3일, 제2차 세계대전 발발 3일 차에 C.S. 루이스 교수가 런던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자택을 방문한다. 프로이트가 초대한 것이었는데, 루이스가 <순례자의 귀향>이라는 책에서 프로이트를 본떠 만든 캐릭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얘기나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루이스로선 전쟁에 휘말릴 염려가 있는 런던을 굳이 가지 않아도 되었지만 다름 아닌 프로이트 아니던가?
둘은 만나자마자 신랄한 대화 혹은 토론을 이어간다. 프로이트는 무신론자, 루이스는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가 된 케이스인데 신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와중에 삶과 죽음, 지극히 내밀한 개인사가 빠르게 주제로 올라왔다가 내려간다. 와중에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는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따르기에 바쁘다. 그 때문에 그녀의 직업이 흔들린다 해도.
둘의 치열한 대화가 오가던 중에도 그들은 서로를 존중한다. 서로를 향한 공격은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 않는 정도에서 그치니 '적을 만들지 않고 이기는' 기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격할 땐 흥분해할 말 못 할 말 하기 마련인데 말이다. 그런가 하면 전쟁이 시작되니 공습이 울리고 전투기가 하늘을 뒤엎기도 한다. 라디오에선 온통 전쟁 얘기뿐이다. 둘의 대화는 어떤 식으로 끝맺음할 것인가?
20세기 최고의 지성들이 펼치는 지적 향연
영화 <프로이트의 마지막 세션>은 한국에서도 삼연까지 이어진 연극을 원작으로 한다. 연극은 프로이트와 루이스 둘만의 대화가 극의 거의 전체를 차지하는 반면 영화는 둘의 개인사를 따로 보여주는 한편 안나가 꽤 비중 있게 다뤄진다. 그런가 하면 영화는 <무한대를 본 남자>의 맷 브라운 감독이 연출했는데, 두 작품 연속으로 20세기를 수놓은 천재들의 지적 향연을 다뤘다. 흥미로운 지점이다.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하룻나절 치열한 대화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상상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니 그들 각각의 저작물과 행적, 개인사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 즉 엄청 어렵지만은 않다는 뜻이다. 신, 종교,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을 정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지성들이 펼치는 토론을 어디서 볼 수 있겠는가.
한편 개인적 상황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로이트는 당연히 오스트리아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유대인이었기에 나치 독일의 핍박을 받았고 1938년 온갖 방법을 동원해 런던으로 빠져나왔다. 그는 십수 년 전 구개암 진단을 받고 수십 차례 수술을 이어왔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 3주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계속되는 고통의 극점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참고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을 창시하고 인간 행동에 대한 이론으로 현대 심리학과 서양 문화를 영원히 바꿔놓은 역사적 거인이다.
루이스는 본래 무신론자였으나 30대에 유신론자가 되어 이론으로 정립하려 애썼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으로 전역했기에 여전히 특정 상황에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 그런가 하면 전쟁 때 가장 친한 전우의 유언에 따라 그의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다가 미묘한 관계로 나아간다. 그는 애써 그녀와의 관계를 부정하지만 프로이트는 꿰뚫어 보는 듯하다. 참고로 C.S. 루이스는 영어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변증가로 우리에겐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위대한 지성'들의 대화 아닌 지성들의 '위대한 대화'
이 부분이 영화를 대할 때 호불호의 영역일 텐데, 제목 '프로이트의 마지막 세션'에 어울리지 않는 또는 맞지 않는 부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프로이트와 루이스 둘만의 1939년 9월 3일 대화가 주가 되어야지 곁가지 이야기들이 왜 이렇게 많이 나오냐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다 풍성하게 보여주며 그들의 대화를 뒷받침하려는 의도였을 텐데, 조금 불친절한 플래시백이라는 점이 불편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프로이트와 루이스 못지않은 분량을 차지하는 안나의 경우도 같은 결이다. 그녀가 동성 연인이기도 한 멜라니 클라인과 함께 탄탄한 커리어를 이뤄가고 있는 와중에 아버지의 간호인이자 비서로서 여전히 아버지의 품 안에서,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프로이트의 마지막 세션'이 오직 루이스를 향하는 게 아니라 안나에게도 향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으나, 이 영화가 방점을 찍은 건 둘의 토론이기에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뽑으라면 바로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 대화를 마무리하고 프로이트가 루이스에게 책 한 권을 쥐어 보낸다. 루이스가 책을 펴보니 다름 아닌 자신의 책 <순례자의 귀향>이고 그 안에 한 문장이 쓰여 있다. '오류에서 오류로, 우리는 온전한 진실을 발견한다.' 프로이트가 쓴 것이었다. 치열한 토론의 완벽한 마무리이자 누구나 가슴 한편에 새겨둘 만한 명언. 이 한 문장으로도 이 영화는 할 일을 다했다.
그렇다, 영화는 '위대한 지성'들의 대화를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니라 지성들의 '위대한 대화'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 쿵짝이 맞아야 뭐라도 한다고, 제아무리 위대한 지성이라도 위대한 대화를 한다는 보장은 없다. 할 말은 후회 없이 하되 선과 정도를 지키고, 서로의 존중하며 인신공격을 가급적 피하며, 사생활의 경우 본인이 직접 들려줬을 때 조심스레 관련된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토론 부분만 따로 떼어내 '토론의 정석'이라고 이름 붙여도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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