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작 열전/신작 영화

안양 축구 서포터즈 'RED'가 주체적 위치로 올라서기까지

반응형


[영화 리뷰] <수카바티: 극락축구단>

 

다큐멘터리 영화 <수카바티: 극락축구단> 포스터. ⓒ영화사 진진

 

서울시 아랫부분 관악구와 금천구와 맞닿아 있는 곳에 '안양시'가 있다. 그곳에 사는 분들께는 미안하지만 가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또 그리 유명하지도 않은 것 같다. 심지어 안양에서 수십 년간 살아온 이도 이런 물음을 던진다. "안양은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 "안양은 왜 이렇게 평범하지?"라고 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수카바티: 극락축구단> 감독의 말이다.

작품에 따르면 '수카바티'는 인간세계에서 서쪽으로 10만억 불토를 지난 곳에 있다.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땅으로 괴로움이 없고 지극히 안락하며 자유로운 땅, 극락세계 또는 안양정토라고 부른다. 즉 '안양'과 동일어다. 또한 수카바티는 FC안양 서포터즈 'RED'의 구호이기도 하다. 그들이 안양을 뜻하는 수카바티를 구호로 정한 건 '안양'을 향한 짙은 사랑의 모습이 발현된 것일 테다.

FC안양은 2013년에 출범한 시민구단이다. 즉 모기업이 따로 있지 않고 안양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돈이 많지 않고 K리그2에서 K리그 1로 승격하는 게 요원하다. 중위권에서 벗어나 최상위권으로 도약하는 것도 쉽지 않다. 승격한 적이 없는 몇 안 되는 팀 중에 하나다. 그래도 조규성이라는 걸출한 국가대표 공격수가 FC안양 출신이다.

그런데 FC안양은 탄생조차 쉽지 않았다. RED의 역할이 지대했고 FC안양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최대호 안양시장이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럼에도 탄생까지 1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노력하고 좌절하고 일어서고 성공했다. 그전에 허무가 있었고, 사랑이 있었고, 열광이 있었다. 그리고 시작이 있었다. 

 

안양시, 안양 LG 치타스 그리고 RED

 

우선 안양 LG 치타스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읊어야 한다. 1983년부터 시작된 축구프로리그인 슈퍼리그에 '럭키 금성 황소'가 출전한다. 이후 1990년부터 시작된 도시 지역 연고제에 따라 서울을 연고지로 했고 이름도 'LG 치타스'로 바꾼다. 하지만 2002 월드컵 유치를 앞두고 지방 축구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서울에서 쫓겨난다. 그렇게 '안양 LG 치타스'가 된 것.

RED는 그때 생겨났다. 농구, 아이스하키 정도만 연고지로 두고 있던 안양이라는 소도시에 드디어 축구단이 들어온 것이었다. 큰일이라면 충분히 큰일일 수 있었다. 그런데 2002 월드컵이 끝난 직후부터 서울을 연고지하는 축구단 이야기가 오가더니 2004년에 전격적으로 안양 LG 치타스가 서울로 옮겨간다. 그렇게 'FC서울'이 탄생했다. 이후 RED는 FC서울을 북패(북쪽 패륜아)라고 부른다.

한편 안양 LG 치타스의 서포터였던 RED는 한순간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아무리 '서울 복귀'라고 하지만 사랑의 대상이 아무런 말도 없이 도망치듯 가 버린 것이다. RED는 전국 그 어느 서포터즈보다 강성으로 열정적인 응원을 보냈기에 더욱 서운하고 서글펐을 테다. 그들에게 안양 LG 치타스는 애증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나아가 아마도 그들은 그 무엇보다 '안양'을 사랑한다.

개인적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30년 넘게 살다가 결혼하면서 수원에 새롭게 터를 잡았다. 다행히(?) 어느 스포츠단도 서포터즈를 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좋아해 본 적이 없는데, 수원도 서울은 아닌 지방이다 보니 자연스레 수원 연고지 팀에 눈길에 간다. 그래서 RED의 이야기가 조금씩 더 이해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다가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겠다"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RED가 안양과 함께 주체적 위치로 발돋움하다

 

이 작품은 FC안양의 탄생기이자 RED의 일대기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양을 향한 무한한 사랑의 결기를 중심을 이룬다. 그래서 RED라는 존재가 다르게 보인다. 단순히 서포터즈 개념이 아니었다는 걸 말이다. 물론 그들 스스로도 안양 LG 치타스가 안양을 버리고 서울로 복귀하면서 알아갔을 것이다. "우리는 안양 LG 치타스의 서포터즈가 아니라 안양의 서포터즈였구나" 하고 말이다.

이 지점이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와 맞닿아 있다. RED라는 강성 서포터즈를 통해 단순히 팬덤 현상을 되짚어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RED가 FC안양이라는 시민구단을 창단함에 있어 지대한 공을 세우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고 주체적 위치로까지 발돋움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말이다. 더 이상 외부의 힘에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내부의 힘으로 자생하려 한다.

외부의 힘에 휘둘린 건 비단 축구단만이 아니다. '안양'이라는 도시 자체가 그랬다. 아니 안양은 그렇게 시작된 도시다. 안양시는 서울시의 위성도시로, 1970년대 서울의 혐오 위해 시설을 밖으로 밀어내고자 공단 위주로 만들어낸 도시다. 이른바 강자가 정한 힘의 논리에 일방적으로 희생되었다. 그와 같은 결로 LG 치타스가 서울에서 안양으로 쫓겨났고 또 안양 LG 치타스가 안양을 버린 것이다.

RED가 사실상 만든 FC안양의 존재는 그래서 설령 성적이 좋지 못해도, 강자를 이기지 못해도 그 자체로 '언더독'이다. 강자가 정한 힘의 논리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당당하게 일어섰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추구한 건 거대한 무엇이 아니다. 그저 일상에서 작은 행복의 원천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게 바로 극락, 수카바티일 것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