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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이것이 무슨 수사여? 똥이제!"라고 일갈하는 형사 <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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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소년들>

 

영화 <소년들> 포스터. ⓒCJ ENM

 

20세기 한국에서, 아니 군부 독재 시대에 국가 폭력으로 가짜 범인이 만들어지는 사례는 부지기수였다. 대표적으로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끌고 가 무자비한 폭력과 고문을 가해 가짜로 시인하게 만드는 사례들이었을 테다. 국민의 시선을 돌리고자 마련한 이벤트성이었던 적도 많아 오랜 시간이 지나 결국 무죄로 판결 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군부 독재 시대를 끝내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본격적인 민주주의 시대, 나아가 인권 중심의 시대에 돌입했지만 여전히 국가 폭력으로 시름하는 사례가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건이 1999년 '완주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이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3인조가 슈퍼에 침입해 강도짓을 하던 와중 할머니가 질식사했다. 사건 발생 9일 만에 동네에 살고 있던 3명의 소년이 체포되었고 실형을 선고받는다.

2010년대 들어 분노를 유발하는 실화 영화로 만들어온 정지영 감독이 이번에는 영화 <소년들>로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다뤘다. 2020년에 일찌감치 촬영을 마무리했다고 하는데, 정지영 감독 개인적인 일도 있었거니와 코로나19가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을 테다. 하지만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후 이런 상업 영화가 1년 넘게 개봉하지 않은 이유는 잘 모르겠다. 작품이 별로였을까?

 

삼례 우리슈퍼 사건을 전후하여

 

1999년 완주 삼례의 '우리슈퍼'라는 조그마한 슈퍼에 3인조 강도가 든다. 돈과 금품을 훔쳐 달아나던 와중에 할머니가 질식사한다. 딸과 손녀는 3인조 강도의 인상착의는 잘 보지 못했고 어느 한 명의 손등에 굳은살이 배긴 것만 기억에 남긴다. 오래지 않아 동네의 소년 3인방이 체포되고 피해자가 진술해 실형을 선고받는다.

해가 바뀐 2000년 완주경찰서, 일명 '미친개' 황준철이 반장으로 부임해 온다. 옆 반이 얼마 전 있었던 '삼례 우리슈퍼 사건'을 해결하며 특진했던 터라 황준철은 부임하자마자 부리나케 뛰어다닌다. 이놈 저놈 잡아들이던 와중에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우리슈퍼 사건의 진범을 알고 있다고 말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황준철은 점점 사건의 진실로 다가간다.

오랜 시간이 흘러 2016년, 이 섬 저 섬으로 떠돌던 황준철은 드디어 육지로 발령난다. 옛 동료도 재회하고 옛 원수와도 재회한다. 그리고 옛 우리슈퍼 사건의 피해자 윤미숙과도 재회한다. 마침 그녀는 변호사와 함께 우리슈퍼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자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그때 체포되어 감옥살이를 했던 3인조는 가짜였고 진범은 따로 있었다고 말이다. 황준철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과연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까?

 

영화보다 영화 같은 실화의 힘에 압도당하다

 

실화가 갖는 힘은 세다. '영화보다 현실이 더 영화 같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그런 면에서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은 이미 정교하게 직조된 각본과 다름 아니다. 외딴 지방의 강도 살인-발 빠르게 체포된 동네 소년들-석연치 않은 점들-피해자이자 유족 그리고 진범이 나서 구명 활동-경찰 당국의 조작으로 밝혀짐-가짜 범인의 억울함 소명. 일별해 보면 그 자체로 영화다.

하여 영화로 만들기에 탐나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사건 자체가 평면적이지 않고 이중 삼중으로 덧이 놓아진 것 같거니와 메시지도 다층적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실화 자체가 너무나도 정형화된 것 같아 역효과도 감내해야 했을 테다. 이 사건을 영화화한다면 모티브만 따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건네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소년들>은 그 함정에 빠졌다. 영화를 너무 쉽게 만들려고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물론 상상력을 가미해 완전히 다른 작품을 내놓았겠지만, 잔재미+묵직한 메시지+신파의 전형적인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과 사건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누구나 예상할 만한 범위 내에 있었다. '이런 황당무계한 사건이 있었구나' 정도를 확인하는 정도랄까. 차라리 이 사건을 제대로 파헤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게 훨씬 더 좋지 않을까.

 

제대로 된 범죄 누아르로 사건 자체를 파고들었으면...

 

삼례 나라슈퍼 사건이 있었던 게 1999년, 민주화를 이룩하고 IMF 시대도 지나 이른바 개혁개방 시대의 한가운데다. 그런 와중에도 외딴 지방 어딘가에선 강도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도 모자라 조직적이고도 치밀한 조작으로 애먼 이들의 청춘이 사라지고 만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우리는 어떤 식으로 바라봐야 할까. 당시 아직 남아 있는 독재 시대의 악습 때문일까, 정권과 상관없이 어디에든 있는 부패한 조직의 일면일까.

의심쩍은 사건을 파고든 황준철은 오랫동안 섬을 떠돌고 사건을 속전속결로 해결한 최우성은 진급을 거듭한다. 황준철이 계속 파고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거슬 수라고 한 거야? 이것이 무슨 수사여? 똥이제!"라는 한마디에 압축되어 있다. 그는 같은 경찰로서 이딴 식으로 수사해 범인이랍시고 죄 없는 아무나를 체포한 게 쪽팔리다. 한편 황준철에게 최우성이 한마디 건넨다. "이 사건에 연관된 경찰 전부하고 전쟁이라도 하실 겁니까?" 그의 안중엔 아무도 없다. 오로지 진급해서 더 높이 올라가는 것밖에는.

하지만 영화는 황준철과 최우성의 대립 구도가 중심이 되지 않는다. 다분히 휴머니즘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황준철과 피해자이자 유족 윤미숙 그리고 또 다른 피해자들이자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소년들, 진범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자연스레 신파로 흐를 수밖에 없는 구도다. 제대로 된 범죄 누아르로 이끌어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하다 못해 사건 자체를 더 깊이 있게 파고들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이런 류의 사건에선 도무지 휴머니즘이 발휘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사건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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