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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이방인보다 못한 20대 북한이탈주민의 처연한 한국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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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믿을 수 있는 사람>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 포스터. ⓒ찬란

 

한영은 중국에서 머물며 배운 중국어를 바탕으로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하지만 외려 한국말이 어려워 보인다. 그녀는 힘겹게 서울살이 중인 20대 여성이지만 사실 북한이탈주민이다. 믿을 건 북한에서 함께 탈출해 온 남동생 인혁과 친구 정미뿐이다. 중국어를 가르쳐 줬던 리샤오가 찾아오기도 한다. 담당 경찰 태구, 동료 미선과 청하도 있다.

그런데 북한이탈주민이라는 꼬리표에 관해서는 누구도 도움을 주기는커녕 대신해 줄 수 없다. 그래서였을까, 동생 인혁은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태구한테 도움을 청해 보지만 한계가 있다. 알아 보긴 하지만 기다리면 돌아올 거라는 말을 되낼 뿐이다. 그런가 하면 친구 정미는 말도 없이 남자친구와 독일 이민을 준비 중이다. 곁에 더 이상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한영은 더 악착같이 가이드 일에 매달린다. 한국어, 중국어 공부는 기본이고 한국의 역사, 문화를 파고든다. 하지만 정녕 중요한 건 돈이다. 가이드 일을 하면서 돈을 남기려면 관광객에게 화장품을 팔아야 한다. 열심히 하려다가 어느 순간 선을 넘는다.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 말았다. 이후 그녀의 삶은 크게 요동친다. 이후 삶을 어떻게 영위할 수 있을까?

 

보통의 사람, 북한이탈주민의 삶

 

북한이탈주민은 한국에서의 삶이 여기(북한)보다는 훨씬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중국을 거쳐 어렵사리 한국에 왔을 테다. 정부의 감시 또는 보호를 꾸준히 받는 한편 실질적인(돈, 일자리, 집 등) 도움도 받는다. 하지만 살아가는 건 결국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직접 헤쳐 나가야 할 것들이 산더미일 테고,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일 것이다.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어느 평범한 북한이탈주민들의 몇 년을 차분히 따라가며 실상을 보여준다. 그들을 타자화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그리되, 문제점을 나열하고 자극적으로 소진시키는 데 도구로 사용하지도 않는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니, 북한이탈주민인 것처럼 말이다. 감독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한편 영화를 보다가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관광통역안내사로 일하는 것도 잘 알지 못하는데 북한이탈주민이라? 이런 경우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관광통역안내사는 한 해에만 천 명 이상이 뽑히고 북한이탈주민은 3만여 명이라고 하니 겹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한영의 이야기는 개별성을 갖는다.

 

여행 가이드로서 또는 한 사람으로서 믿을 수 있는 사람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의 영어 제목은 'A Tour Guide'다. 말그대로 한영의 직업이 여행 가이드 말이다. 여행 가이드는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절대적인 존재다. 여행 내내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여행 가이드뿐이다. 그가 가라는 곳으로 가고 먹어야 하는 걸 먹어야 하며 가르쳐 주는 게 뭐든 맞다고 믿어야 한다. 한국어 제목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인 게 이해된다.

그런데 영화에서 한영은 이방인 아닌 이방인, 이방인보다 못한 존재다. 대한민국 국적으로 한민족이거니와 한국어도 잘하지만 북한 출신이기 때문이다. 하여 여행 가이드로선 믿을 수 있는 사람일지 몰라도 한영이라는 사람으로선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는다. 그녀가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을 때, 급점이 필요해 가불을 요청했지만 '한영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월급의 반만 가불해 줄 수 있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녀가 줄 수 있는 믿음은 절반이 최대치인 것이다.

그런 와중에 그녀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그녀 곁을 떠나간다. 그들 또한 이방인 아닌 이방인, 이방인보다 못한 존재이기에 더 이상 버티기 힘든 것이다. 자유를 찾아 한국에 왔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을 견디기 힘들었고 다시 돌아가려 하거나 다른 나라로 가기로 한다. 한영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을 따라가야 할까, 꿋꿋이 버텨내며 살아가야 할까. 어느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지만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선택이다.

 

곧 우리의 이야기, 스스로 들여다보고 주위를 살펴야 한다

 

영화는 견고한 편이다. 주제, 이야기, 연기, 분위기 등에서 어느 것 하나 '멱살 잡고 캐리'하지 않고 각자의 이야기를 탄탄하게 전한다. 경계인으로서 북한이탈주민의 삶이 건네는 처연함이 인상적이고, 파편화된 삶의 궤적들이 안쓰럽다. 그렇다고 오직 그들만의 이야기라고 느끼진 않는 건, 즉 보편성도 띄는 건 영화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을 자극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감독의 영리한 선택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다.

사실 그들이 아닌 우리도 비슷한 또는 다를 바 없는 심정을 느낄 때가 많다. '여기가 어딘지' 안다고 해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어느 집단에 속하게 될 때면 스스로가 이방인 아닌 이방인, 이방인보다 못한 존재, 경계인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만인 공통의 심리가 아닐까 싶다. 이 영화의 확장성이 엿보이는 지점이다.

우린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주위도 살펴야 한다. 스스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하고 곁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두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주위를 살필 여유가 없다고 하겠지만, 주위를 살피는 게 결국 스스로를 살피는 것이다. 한영의 경우가 안타까웠던 지점이 바로 거기에 있다. 더 들여다보고 더 살폈으면… 그리고 우리네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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