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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12.12 군사반란 영화 <서울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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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서울의 봄>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플러스엠

 

얼마전 전두환과 노태우의 2주기였다. 그들은 불과 한 달여를 앞뒤로 죽었다. 하지만 1979년에 발발했던 12.12 군사반란 주동자들 중 전두환, 노태우 등을 제외하곤 상당수가 살아 있다. 당사자들이 살아 있으니, 비록 오래 되었으나 마냥 지나간 역사라고 보기 힘들다. 그래서일까? 12.12 군사반란을 주제로 삼은 영화는 단 한 편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교양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는 보고 듣고 씹고 맛보고 하며 수없이 접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그러다 보니 속속들이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저 '전두환,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하나회가 주축이 된 세력이 군사반란을 일으켜 성공해 정권을 잡았다' 정도랄까. 상업영화로 만들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소재가 아닐까 싶다.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이기에 누구나 최소한은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김성수 감독이 영화 <서울의 봄>으로 해냈다. 12.12 군사반란의 상세한 내용과 관련 인물을 모티브로 거의 그대로 가져와 극화시켰다. 핵심 중 핵심 전두환, 노태우가 죽었으니 어느 정도 지나간 역사가 되었기에 사람들 머리에서 조금씩 흐릿해져 가고 있는 시점이기에 되새길 때가 되기도 했거니와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 등 쟁쟁한 네임벨류 배우들과 함께해 상업영화로서의 가치를 완성시켰다. 2000년대 들어 꾸준히 생산되고 있는 한국 현대사 영화의 계보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10.26 사건부터 12.12 군사반란까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동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시해된 후 최한규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고 비상계엄을 선포 후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에 앉힌다. 한편 유일한 정보기관의 수장이자 10.26 사건의 수사를 도맡은 보안사령관 및 합동수사본부장 전두광이 실력자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정상호는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에 이태신을 앉히는 한편 전두광을 동해안으로 좌천시키려 벼르고 있었다. 그가 속한 하나회 멤버들의 운명도 별다를 게 없었다.

전두광, 그리고 하나회로선 뭐라도 해야만 하는 상황, 그들은 10.26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구실로 정상호를 체포해 군부를 장악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당시 군부 장악은 곧 정권 장악이었다. 12월 12일을 디데이로 잡고, 정상호를 강제로라도 체포해 오는 한편 대통령한테서 정상호 체포수사 재가를 받아오기로 했다. 그러면서 친 정상호 계열의 핵심들인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육군본부 헌병감 김준엽, 육군특수전사령관 공수혁을 따로 불러내 시간을 끌고 있게끔 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 오국상의 재가를 먼저 받아 오라며 재가를 해 주지 않고 오국상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전두광, 노태건 등에 의해 정상호가 강제 납치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니 이태신, 김준엽, 공수혁은 즉시 출동한다. 육군참모차장이 전두광, 노태건 등의 세력이 행한 짓을 명백한 군사반란으로 규정하며 본격적으로 대치 상황이 펼쳐진다. 수많은 부대가 각기 다른 이유로 서울로 진격해 들어온다. 과연 전두광 등은 군사반란을 성공시킬 것인가, 이태신 등은 반란을 막아낼 것인가.

무법과 야만의 시대

<서울의 봄>은 실제 이야기에 대해 잘 알면 잘 알수록 역겨움을 참고 봐야 한다. 영화는 당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극사실주의로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겉으론 하찮기 이를 데 없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속으론 100% 사리사욕 때문이었고 수많은 지휘관이 힘의 논리와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중립조차 지키지 않고 반란군에 넘어갔다. 무법과 야만의 시대였다.

영화를 보면 100 중에 90 이상이 군인임을 포기했다. 단순히 군사반란에 동조했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대통령 재가도 받지 않고 계엄사령관을 납치했고 최전방 정예부대를 서울로 잡입시켰다. 존재 이유가 나라를 지키는 데 있는 군인으로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것이다. 그런데 더 황당한 건, 실제 군사반란에 동조한 이들이 더 많았다는 점이다. 1979년 12월 12일 대한민국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다.

김성수 감독도 인터뷰에서 말했듯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하나회가 조직폭력배와 다를 게 뭔가 싶다. 무법 시대를 꿈꾸며 본인이 법 위에 군림하고 오로지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행동하고 '의리'를 외치지만 사실 사람을 하찮게 여긴다. 그러니 우린 군인 집단이 아닌 조직폭력배 집단에게 국가가 유린당한 것이었다. 정부는 물론 국민 전체가 말이다. 서울에 봄이 찾아오긴커녕 다시 기나긴 겨울이 찾아왔다.

탁월하고 반갑고 고맙다

영화 엔딩곡으로 깜짝 군가가 등장한다. 다름 아닌 <전선을 간다>로 전선에서 죽어간 젊은이들의 넋을 되새기는 내용이다. 너무나도 적절한 OST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12.12 군사반란 때문에 젊은이들이 속절없이 죽었기 때문이다. 당시 군인들 간의 전투에서, 이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 6.10 민주항쟁에서… 군인임을 포기한 이들이 저지른 반란을 소재로 삼은 영화의 아이러니한 엔딩곡으로 탁월하다.

한편 <서울의 봄>은 한국 현대사를 다룬 영화들의 타임라인을 채웠다. 그동안에는 10.26 사건을 다룬 <그때 그 사람들> <남산의 부장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화려한 휴가>, 6.10 민주항쟁을 다룬 <1987>이 있었다. 그 사이에 12.12 군사반란이 빠지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이 영화가 반가운 이유다.

최악이 최악인 이유에는 최악에 가깝거나 사실상 최악인 다른 것들을 가리는 것도 있다. 12.12 군사반란은 참으로 많은 당대 또는 근래 최악들을 가렸다. 더군다나 무력에 의한 정권 탈취 사건이었기에 그 여파가 너무나도 커서 누구도 관련된 얘기를 자세히 할 수 없었다. 44년이 지난 이제 비로소, 핵심 당사자들이 죽은 지 2년이 지난 이제 비로소 만천하에 철저하게 드러났다. 실화를 거의 그대로 가져온 이 영화의 선택이 고마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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