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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이 시대 공동체에 진정한 어른이 필요하다 <오토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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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오토라는 남자>

 

영화 <오토라는 남자> 포스터. ⓒ소니 픽처스 코리아

 

아내 소냐와 사별한 지 6개월, 회사에서도 등 떠밀려 퇴임한 중년 남자 오토(OTTO)는 동네에서 꼬장꼬장하고 까칠하기로 유명하다. 그의 눈엔 동네 모든 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아니 매일같이 말해도 도무지 들어먹질 않으니 말이다. 그것도 똑같은 말을. 그건 그거고 그가 무심하게 실행에 옮기려 하는 일이 있다.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다.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갈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그의 모든 것이었던 소냐가 세상을 등진 게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할 때마다 그를 방해하는 이가 있다. 얼마 전 맞은편에 이사를 왔다는 마리솔과 지미 가족, 특히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한 멕시코 태생 마리솔이 결정적인 방해꾼이다. 쉴 새 없이 말하며 오토의 꼬장꼬장함과 까칠함을 받아치니 오토로선 생전 대면해 보지 못한 유형이다.

조금씩 조금씩 알게 모르게, 오토와 마리솔네는 친밀감을 형성한다. 오토가 마리솔네를 도와주고 마리솔네도 오토를 도와준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되어 가는 모습일까? 단순히 까칠한 오토와 다정다감한 마리솔네가 우연에 우연이 겹쳐 친해지게 된 걸까? 앞으로 무슨 일들이 벌어질까? 둘다 변하지 않은 채 서로를 인정하고 의지하게 되는 과정이 아름답다.

 

베스트셀러 원작과 톰 행크스

 

프레드릭 배크만 작가는 2012년 장편소설 <오베라는 남자>로 혜성같이 나타나 자국 스웨덴은 물론 전 세계 출판계를 그야말로 씹어먹으며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도 50만 부 넘게 팔렸다고 한다. 이후 당연한듯 빠르게 영화화되어 2015년에 동명의 영화가 개봉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호평 받았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의 시간이 지나 미국판이 만들어졌다.

미국판 제목은 <오토라는 남자>, 감독은 마크 포스터로 <몬스터 볼> <007 퀸텀 오브 솔러스> <월드워Z> 같은 굵직한 작품부터 <연을 쫓는 아이> <곰돌이 푸 다시 만나서 행복해> 같은 작품도 내놓았다. <오토라는 남자>는 후자의 작품들과 결이 비슷해 보인다. 한편, 오토 역을 맡은 이는 '미국의 얼굴'이라는 표현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톰 행크스다. 너무나도 적절한 캐스팅이다.

아무래도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원작이고 또 영화화도 성공적이었기에 <오토라는 남자>는 부담감이 굉장히 컸을 것이다. 감독도 감독이지만 '톰 행크스'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영화가 만들어졌을지도 의문이다. 그럼에도 누구나 좋아할 만한 기본 틀이 있기에 부담 없이 즐길 만하다. 오토의 일상을 따라, 동네 사람들의 일상을 따라 마음 편하게 감상하면 될 터다.

 

진정한 어른이 필요하다

 

오토의 일상은 정확하고 명확하다. 이건 이것이고 저건 저것이며, 여기에 있어야 할 건 여기에 있어야 하고 저기에 있어야 할 건 저기에 있어야 한다. 예외가 없다. 집 안의 일상은 집 밖의 일상으로 확대된다. 그는 그 스스로에게 피해를 줄 만한 일을 하지 않는데, 집 밖의 일이 집 안의 그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순간에도 집 밖의 일에 눈을 돌린다. 그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집 밖으로 나온 그는 사람들에게 전형적인 '꼰대'로 비춘다. 나이 든 어른이 이러고 저러해서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니니, 나이 많은 걸로 유세 떠는 거야 또는 자기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하고 생각하기 일쑤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토는 꼰대가 아니라 꼬장꼬장할 뿐이다. 상대적으로 많은 나이 혹은 권위를 앞세워 자신의 사고방식을 남에게 강요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맞는 얘기만 할 뿐이다.

한창 유행 중인 MBTI 성격유형에서 의사결정 영역의 T(논리적이고 분석적)와 생활방식 영역의 J(계획적이고 절차적)가 발달되어 있을 뿐인 오토인 바, 사람을 싫어 하거나 자신이 최고인 양 으스대는 게 아니다. 그도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성격 또는 성향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그에게 그보다 중요한 건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는 것이다.

요즘 들어 찾아보기 힘든 게 '어른'이다. 그 누구에게라도 옳은 말을 해 줄 수 있는 '진정한' 어른 말이다. 오토야말로 공동체가 제대로 유지될 수 있게 하는 윤활유가 아닐까. 나이 든 모든 어른이 옳은 일을 하려 하고 옳은 말을 전하려 하는 게 아니다. 나이 좀 먹었다고 더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이들도 많다는 걸 보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공동체에서 우리는

 

공동체라는 게 혼자만의 힘으로 오롯이 끌고 나가기는 힘들다.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다양성을 충분히 존중 받고, 구성원들 간에 피해를 주지 않으며, 따로 또 같이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솔선수범해야 한다. 오토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홀로 고군분투해 온 것이다. 사람이라면 공동체의 일원이 아닐 수 없을진대 이기주의가 개인주의를 대체해 가고 있는 지금, 공동체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오토는 성향상 자신이 공동체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테고 인지하고 있다고 해도 공동체에 속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테다. 그러던 찰나 건넛집에 이사 온 마리솔의 감성 충만한 '애정'과 맞닥뜨리며 달라진다. 나이가 들면 바뀌기 쉽지 않은데 오토는 달라진다. 꼰대스러운 느낌으로 꼬장꼬장함을 밀어 붙이는 게 아니라 얘기를 먼저 들어보고 난 후 차근차근 생각을 전한다. 이전에는 뱉어낸 후 듣던 말던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상대의 행동이 계속 반복되었는데, 이젠 관심을 두는 게 먼저이기에 차원이 달라졌다. 

 

어느덧 오토를 응원하고 있다. 그의 고군분투가 안타깝다. 세상이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조차 방해한다. 그가 변해야 하는가, 세상이 변해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와 세상이 서로를 향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서로를 피상적으로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제대로 알고 나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토뿐만 아니다. 우린 서로를, 세상을 너무 모른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물론 서로가, 세상이 부당하게 다양한 폭력을 휘둘러 관심을 끊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럴수록 더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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