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작 열전/신작 영화

가족을 지킬 건가 인류를 살릴 건가, 그것이 문제로다 <똑똑똑>

반응형

 
[신작 영화 리뷰] <똑똑똑>

 

영화 <똑똑똑> 포스터. ⓒUPI 코리아

 

어느 외딴 숲의 오두막으로 휴가를 온 가족, 동양계 소녀 웬은 메뚜기를 잡아 일일이 기록하며 연구하고 있다. 그녀에게 덩치 큰 중년 남성이 다가와 자신을 레너드라고 소개하며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더니 곧 부모님을 찾아갈 거라고 말한다. 그녀의 눈에 레너드 말고 무기를 든 세 명의 남녀가 보인다. 곧 오두막으로 뛰쳐 들어가 두 아빠한테 알리는 웬이다.

곧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는 웬의 두 아빠 앤드류와 에릭, 이내 '똑똑똑' 하고 누군가 찾아와 문을 열어 달라는 것이었다. 열지 않으면 강제로 열 수밖에 없다면서 말이다. 결국 강제로 열리는 문, 네 남녀 레너드, 레드몬드, 애드리안, 에이드리엔이 무기 같이 보이는 것들을 들고 있다. 웬의 아빠들을 의자에 앉혀 묶어 놓고 자신들이 지극히 평범하다고 소개하는 침입자들이다.

그들은 똑같은 환영을 본 후 이곳으로 모이게 되었다는데, 세상이 끔찍하게 멸망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의 종말을 막을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웬의 세 가족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직접 죽이는 것. 당연히 이 상황을 믿지 않는 앤드류와 에릭, 그런데 자신들의 말을 증명하려는 듯 한 명이 다른 세 명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TV를 켜 보니 종말의 징후가 방송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광신도 집단의 미친 짓 같다. 과연, 오두막에서 벌어지는 종말 사건의 끝은?

 

나이트 샤말란 감독 특유의 스타일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세기말 <식스센스>로 전 세계적 신드롬의 한가운데 서면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후 내놓는 작품들마다 화제를 뿌리고 흥행에도 성공한다. 이른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의 반열에 우뚝 선 것. 물론 그에게도 암흑기가 있었으나, 2010년대 들어 초심으로 돌아간 듯 저예산이면서도 작가주의적인 작품들을 내놓아 반등에 성공해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2013년 이후 2년에 한 편씩 꾸준히 작품을 내놓은 샤말란 감독, 2023년에도 어김없이 영화를 들고 찾아왔다. 소설 <세상 끝의 오두막>을 원작으로 하는 <똑똑똑>, 그의 필모 중 <올드>(그래픽노블 <모래성>)에 이어 두 번째로 원작이 따로 있는 작품이다. 스타일상 호불호가 갈리는 샤말란 감독의 작품들 중에서도 <올드>가 가장 심하게 호불호가 갈렸는데, <똑똑똑>은 어떨지 기대 반 의심 반의 시선일 수밖에 없다.

결론부터 말해, <똑똑똑>은 초자연적인 소재와 미스터리한 분위기 그리고 철학적인 주제가 맞물리는 샤말란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제대로 발현된 영화로 매우 깔끔하고 정갈하게 잘 나왔다.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한 채 생각하면 할수록 무섭고 또 슬프게 하니, 재미와 감동을 전례 없이 융합시켰다. 샤말란의 팬을 자처하는 이들부터 샤말란을 잘 모르는 이들까지 납득이 갈 만한 작품이다.

 

가족을 지킬 것인가, 인류를 살릴 것인가

 

영화 <똑똑똑>은 신선하고 흥미로운 설정으로 우리를 반긴다. 가족을 포기하면 전 인류를 살리고, 가족을 지키면 전 인류가 멸망한다니 말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가족인지? 에릭과 앤드류 두 남자가 구순구개열이 있는 동양계 여아를 입양해 한 가족을 이룬 흔치 않은 케이스. 이 가족이기 때문에 선택된 것인지, 우연에 우연이 겹쳐 이 가족이 선택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야말로 전 지구적인 딜레마에 빠진 가족이다.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가 생각날 정도다. 극과 극,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기로에 있다. 문제는 무엇을 선택하든 이후의 삶은, 세상은 완전히 다를 거라는 것이다. 앤드류와 에릭 두 남자는 세상은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자신들의 사랑)을 표적 삼아 괴롭혀 왔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을 지키겠다고 다짐한다.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는 완전한 선택.

하지만 일개 개인의 선택은, 자유의지는 전 인류적인 재앙 앞에서 아주 쉽게 흔들린다. 평소엔 인지하지 못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는 '세상'의 존재 위에서만 존재하고 있다고 인지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흔들리면 나도 흔들리고, 세상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근간이 흔들린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심지어 영화 속 설정처럼 세상이 끝나도 나와 우리 가족만 살아남아 영원히 떠돈다고 해도 말이다. 영화가 던지는 딜레마는 너무나도 강력하다.

 

다양하고 거대하며 근원적인 이야기

 

영화에서 레너드 일당이 말하는 종말의 양상은 지금 이 순간 지구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바이러스 창궐, 지진, 쓰나미, 화산 폭발, 사건 사고 등과 정확히 궤를 같이 한다. 그러니 더 실감 나는데, 영화를 총체적으로 볼 때 그런 양상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 같다. 자못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새다. 최소한 불감증으로 아무 생각 없이 대하는 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다행히(?) 종말에 대항하는 구원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일개 개인, 그것도 웬만한 세상이 증오하며 멀리하는 흔치 않은 모양새의 가족이 말이다. 세상을 살리려면 기어코 그들을 찢어야 하나? 영화는 종말이라는 심각한 상황에서 아이러니한 농담을 던지고 있다. 아주 짓궂고 악질적이기까지 한데, 너무나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상태이니 만큼 일차원적으로 보는 건 금물이다.

<똑똑똑>은 굉장히 간결하고 깔끔하지만 굉장히 다양하고 거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외딴 숲의 오두막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지만 전 지구와 전 인류가 지켜볼 만하다. 거창하다면 거창한 주제, 소소하다면 소소한 이야기, 들여다보면 볼수록 무서운 상황, 생각하면 할수록 슬픈 관계. 영화 자체로도 흥미롭고 재밌지만, 영화를 통해 인간과 세상의 근원을 생각하게 하는 철학의 세계로 한달음에 달려갈 수도 있겠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