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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특수와 보편이 만나 거장이 된 신카이 마코토 <스즈메의 문단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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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스즈메의 문단속>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 포스터. ⓒ미디어캐슬


이번에도 여지 없이 3년만에 신작 애니메이션을 들고 찾아온 ‘신카이 마코토’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 2000~2010년대 일본 극장 애니메이션을 호소다 마모루와 양분하다시피 하다가 최근 들어 비평과 흥행 면에서 모두 앞서가는 분위기다. 특히 화제성에선 비할 바가 신카이 마코토가 월등히 앞서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이야기에 사회적인 메시지를 입히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리라.

 

작년 2022년 11월에 일본 현지에서 개봉해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함계 일명 쌍끌이 흥행으로 화제를 뿌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이 4개월 만에 한국에 상륙했다. 후술하겠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비롯해 일본의 각종 재난이 영화의 주요 소재로 나오는 바, 우연인지 필연인지 한국 개봉일이 2023년 3월 8일로 불과 3일 후면 동일본 대지진 1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영화는 다분히 일본적이다. 주인공인 16세 소녀 스즈메가 모종의 이유로 일본 동쪽 해안선 지역들을 여행하는데, 모두 실제로 대재앙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재난이 닥쳤던 곳이다. 일본인이 아니라면 지역뿐만 아니라 재난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신카이 마코토는 일본적이라고, 즉 특수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재난’은 누구에게든 언제 들이닥쳐 삶을 송두리째 바꿔 버릴지 모르니 말이다. 지극히 보편적인 일이다.

 

얼결에 재앙을 막는 여정을 떠난 스즈메

 

일본 규슈의 미야자키, 16세 소녀 스즈메는 이모 타마키와 단둘이 산다. 12년 전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도호쿠 대지진으로 엄마를 잃고 홀로 된 스즈메를 타마키가 거둔 것이다. 어느 날 학교 가는 날 아침, 소타와 조우하는 스즈메는 근처에 폐허가 있냐고 물어보는 그에게 근처의 온천 폐허를 알려준다. 학교에 있다가 어느 순간 그녀의 눈에 폐허 쪽에서 솟아 오르는 불길이 보인다. 불길한 느낌에 폐허로 향하는 스즈메, 그곳에서 소타가 문을 닫으려 하고 있었다. 그 사이로 불길 같은 것이 삐져 나오려 하고 있었다.

 

함께 문을 닫은 소타와 스즈메, 알고 보니 소타는 가문 대대로 문 너머의 재앙을 봉인하는 토지시였고 스즈메가 아무것도 모른 채 뽑아 버린 석상은 문 너머 재앙을 봉인하던 요석이었다. 미미즈라고 불리는 문 너머 저세상의 재앙이 이 세상으로 와 땅에 닿으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재난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스즈메가 요석을 뽑아 버렸고 고양이 다이진으로 변한 요석은 도망 다니기 바쁘니 재난의 위기가 계속 들이닥칠 것이다.

 

다이진의 저주로 스즈메의 어릴 적 유아 의자로 변해 버린 소타와 함께 다이진을 찾아, 미미즈를 막을 요량으로 여정을 떠나게 된 스즈메. 스즈메가 이모와 함께 살고 있는 미야자키에서 에히메, 에히메에서 고베, 고베에서 도쿄, 그리고 도쿄에서 스즈메의 고향 이와테까지 여정은 계속된다. 스즈메와 소타는 가는 곳마다 뭇 사람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다이진을 쫒는 한편 폐허에서 여지 없이 문을 열고 나오려는 미미즈를 막아야 한다. 과연 이 여정의 끝은?

 

지극히 개인적인 통과의례의 여정

 

주자했듯 스즈메가 소타와 함께 단속하려는 문 너머는 저세상이다. 스즈메에게 그곳이 보이는 건 스즈메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이유, 12년 전 대지진에서 죽음에 한 발 걸쳤을 만큼 처절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스즈메의 절반 정도는, 스즈메의 어린 시절은 그곳에 머물러 돌아오지 못할 엄마를 애타게 찾으며 울고 있다.

16세 소녀 스즈메로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른이 되기 위해 통과의례를 치러야 한다. 울고 있는 어린시절의 자신과 대면해 다독여야 하는 것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에 신카이 마코토 필모 최초로 주인공의 이름이 들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일 수 있으나 누가 봐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다.

스즈메가 얼떨결에 떠난 여행의 양상도 같은 결이다. 누구에게도 말 못하지만 반드시 실행에 옮겨 성공시켜야 누구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비밀을 간직한 채 다분히 이타적인 마음으로 고군분투를 이어 가니, 통과의례를 훌륭하게 치러 어른이 되고 또 진정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작품이 대단한 건, 신카이 마코토가 진정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스즈메의 여정이 그녀 자신의 변화에만 국한되지 않고 세상에도 크나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전지구적이고 보편적인 메시지

 

스즈메가 소타와 함께 얼결에 떠난 여정에서 그들은 미미즈라는 재앙이 저세상의 문을 열고 이세상으로 나오지 않게 막는다. 미야자키, 에히메, 고베, 도쿄, 이와테까지 들여다보면 일본 역사에 남을 만한 크나큰 재난이 들이닥쳤던 지역들이다. 차례대로 2016년 구마모토 지진, 2020년 일본 서남부 폭우, 1995년 고베 대지진, 1923년 관동 대지진, 2011년 동일본 대지진까지 다분히 의도적으로 배치했다.

일본인에게 재난은, 지진은 일상이다. 작품에도 나오듯 우리에겐 자못 심각한 진도 3~4의 지진은 수시로 일어나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넘어간다. 그러다 보니 일본인은 극중 소타의 말처럼 죽음을 등한시하지 않고 곁에 두고 살아간다.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살아가기 위한 간절함을 갖추기 힘든 성향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작품을 통해 일본인 신카이 마코토가 말한다. 살고 싶다고,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말이다.

불과 얼마 전 일어난 튀르키예 시리아 대지진을 보고 있노라면, 재난은 비단 일본을 비롯한 몇몇 나라와 지역의 특수적인 일만은 아니다. 전 지구적인 일, 보편적인 일이라고 해야 맞다. 신카이 마코토는 일본인에 머무르지 않고 지구인으로서 말한다. 잠시 멈추고 주위를 둘러봐야 한다고, 일상적 재난을 대하는 자세를 다시 잡아야 할 때라고 말이다.

재미와 감동에 전 지구적인 메시지까지 탑재한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은 단연 소장각이다. 소장해서 두고두고 다시 돌려보며 메시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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