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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잘 지내?" "응, 잘 지내"의 대화에서 빚어지는 인생 <컨버세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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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컨버세이션>

 

영화 <컨버세이션> 포스터. ⓒ필름다빈

 

은영, 명숙, 다혜가 오랜만에 은영네 모였다. 이런저런 말이 오가는 와중 대화의 주제는 프랑스 파리 유학 시절이다. 그들은 예전 파리에서 함께 유학을 했더랬다. 지금은 은영만 결혼해 아기를 낳았고 명숙과 다혜는 솔로다. 그럼에도 대화는 구심점 없이 겉도는 것 같다. 이후 시공간이 달라져, 은영이 파리로 떠날 때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 안의 대화, 파리에서 은영과 다혜의 대화가 등이 이어진다.

 

승진, 필재, 대명이 대명네 모여 놀고 먹고 마시고 있다. 승진과 필재는 대명의 친한 동생들로 처음 만났다. 서로를 향해 위세를 부리는 건지, 재밌어 하는 건지, 관심이 많은 건지, 티격태격하는 듯 티키타카가 잘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전에 결혼하고 아이도 낳은 승진과 필재의 대화가 있고, 이후 승진과 필재가 각각 혼자 나와 온몸으로 서로를 향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기에 그들의 관계가 예측 가능하다.

은영과 승진의 대화가 이어진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커피숍에서 극장 안에서 산에서 오랜만에 만났다는 그들이 대화를 한다. 그 어느 대화보다 의미가 없은 것 같은데, 그 어느 대화보다 실속이 많고 중요한 대화인 게 분명하다. 정황상 그들은 이후 결혼해 아이를 낳으니 말이다. 따로 또 같이 한 명, 두 명, 세 명이 나누는 대화의 파편을 따라가 보자.

 

대화로 관계를 이야기한다

 

김덕중 감독은 데뷔작 <에듀케이션>을 통해 대화조차 어려워 관계를 진척시키기 힘든 이 시대 청춘의 답답한 현실을 그리며 주목 받았다. 얼마나 제대로 보여줬으면, 상당수 관객이 “대사를 알아듣기 힘들다“는 후기를 남겼을까. 감독이 영화로 하고 싶은 말을 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에듀케이션>은 일종의 도구였지 않나 싶다.

 

김덕중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은 <컨버세이션>이다. 이번에도 연출, 각본, 편집을 도맡아 했을 뿐만 아니라 스페셜영상과 제작까지 했다. 데뷔작과 제목 느낌도 비슷하지만 ‘대화’라는 소재와 ‘관계’라는 주제가 이어진다. 제목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듯 대놓고 대화를 통해 관계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같다.

40대 여자 셋과 남자 셋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바, 한데 모여 대화를 나누면서 일이 벌어지는 서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여배우들>이라든지 <완벽한 타인> 같은 느낌 말이다. 그런데 무대인사에서 주연배우들이 신신당부(?)했듯 영화는 그런 소소한 기대를 무참히 저버린다. 생각지도 못한 형태 그리고 시공간으로 이어지며 대화의 텍스트(text) 아닌 콘텍스트(context)에 집중하게 한다.

 

텍스트보다 콘텍스트를 들여다본다

 

<컨버세이션>은 제목에 충실한 영화다. 시종일관 1인, 2인, 3인의 대화가 따로 또 같이 이어진다. 처음엔 대화의 텍스트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의도인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말이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집중하기가 힘들어진다. 그 자체로 별 의미를 갖지 않는 대화가 부지기수이기도 하지만, 대화의 이면을 들여다봐야만 오히려 대화를 제대로 아는 겅우가 있기 때문이다.

 

대화들은 하나같이 시기콜콜하다. 여자 셋이 모이면 옛날 파리 유학 시절을 얘기하고 오랜만에 만났으니 근황 토크도 한다. 남자 셋이 모이니 형님을 놔두고 동생 둘이서 묘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고 둘이 친해지기도 한다. 둘이 만날 땐 자못 하찮은 얘기를 나누고 혼자가 되면 말로 하지 않고 몸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무슨 대화인지보다 왜 그런 대화를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그들이 각자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서로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역설적으로 대화의 콘텍스트를 예측해 보고 짚어가면 대화의 텍스트에 집중하게 된다. 전체를 파악하는 데는 텍스트보다 콘텍스트를 우선적으로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다.

 

영화 속 대화가 끊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컨버세이션>은 굉장히 파편화된 대화 그리고 관계들이 비선형으로 뻗어 나가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더군다나 롱테이크 대화씬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여 연출이나 각본이 아닌 연기와 편집에 힘이 쏠렸을 것 같은데,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이를테면 애드리브는 없다시피 하고 각본대로 충실히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철저히 연출된 상황에 맞게 연기를 했다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와 관계를 형성하고 이어 나가고 끝맺을 때 어떤 식으로든 '대화'가 아닌 적이 있나 싶다. 삶의 모든 순간이 대화로 이뤄진다. 심지어 누군가와 말을 나누지 않고 몸짓으로 표현하거나 분위기를 타는 것도 대화의 일종이다. 그러니 이 영화 속 대화들이 감독의 철저한 의도로 만들어졌다는 게 우리 일상 속 대화들이 그 자체로 분명한 의도를 가진 채 이어 나가고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런가 하면 대화는 언젠가 반드시 끝난다는, 명확한 선이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영화 속 대화가 끝나지 않고 계속되길 바랐다, 아니 바라게 되었다. 대화가 너무 재밌어서가 아니라 대화가 계속된다는 건 관계가 지속된다는 것이고, 관계가 지속된다는 건 삶이 계속된다는 것이고, 삶이 계속되면 외로울 틈이 없으니 말이다. 대화의 기술도 중요한 것 같다. 기술이 있어야 자신감을 얻고 자신감을 얻어야 대화를 시작해 이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컨버세이션>은 대화하고 싶어지게 하는, 그러니까 계속 살아가고 싶어지게 하는 영화였다. 대화는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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