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유령>
이해영 감독은 2006년 <천하장사 마돈나>로 화려하게 상업영화 연출 데뷔에 성공했다. 청룡, 백상에서 각본상을 수상하고 류덕환 배우는 청룡, 대종에서 신인남우상을 거머쥐며 일약 유망주 타이틀을 얻었다. 연출 데뷔 전에 <품행제로> <아라한 장풍대작전> 등의 각본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는데, 연출 데뷔 후 모든 작품의 각본도 책임지고 있는 이해영 감독이다.
<천하장사 마돈나> 이후 두 작품에서 실패하고 2018년작 중국 영화 리메이크 <독전>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이해영 감독은 5년 후 이번엔 중국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유령>을 들고 왔다. 이번에도 액션 스릴러 느와르 장르로 설경구, 박해수, 이하늬, 박소담 등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1933년 일제강점기 한복판의 경성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는 점이 궁금증을 자아내는 한편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하는데, 식상하지 않게 스타일리시하게 그려냈을 거라 직잠된다. 이해영 감독의 미장센은 정평이 나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감동하고 싶은 바람이다.
누가 항일 스파이 '유령'인가?
1933년 일제강점기 조선의 경성, 상해에서 활동하다가 일망타진 당했다는 항일조직 ‘흑색단’의 일원, 일명 ‘유령’이 새로 부임할 예정인 다케우치 총독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한다. 총독 경호대장 다카하라 카이토는 조선총독부 내에 유령이 있다고 확신하고 덫을 친다. 5명의 유력 용의자를 색출해 도망 갈 곳 없는 벼랑 끝 호텔에 불러들인 것이다.
통신과 감독관 무라야마 쥰지, 통신과 암호 기록 담당 박차경, 정무총감 비서 요시나가 유리코 그리고 통신과 암호 해독 담당 천계장, 통신부 직원 이백호까지 다섯 명. 카이토는 이들에게 하루의 시간을 준다. 반드시 살아 나가 함정에 빠진 동지들을 구하고 총독을 암살시켜야 하는 유령, 그저 살아서 나가고 싶은 선량한(?) 직원 사이에서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결국 죽고 마는 누군가와 탈출에 성공하는 누군가, 그들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고 또 어떻게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탈출에 성공한 이들에겐 어떤 앞날이 기다리고 있을까? 유령은 죽었을까 탈출했을까? 탈출했다면 동지들을 구하고 총독을 암살하는 데까지 성공할까?
과유불급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영화 <유령>은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호'의 쪽보다 '불호'의 쪽이 압도적이지 않을까 싶은 슬픈 예감이 든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한 가지만 들자면 '과유불급'이 떠오른다. 이 영화는 주지했듯 '액션 스릴러 느와르'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 그런데 시작점이랄 수 있는 곳이 호텔이다. 호텔 안에서 항일 스파이 '유령'을 찾으려는 공작이 펼쳐지며 영화가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팽팽한 긴장감이 일품이어야 할 밀실 미스터리의 일환이라고 할까. 그런데 긴장감이 팽팽하지 않고 느슨한 편이다. 뒤에 펼쳐질, 펼쳐져야 할 액션을 위한 빌드업 차원인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분량이 상당하고 주요 캐릭터를 설명한다는 중요한 명분이 있기에 단순 빌드업 차원이라고 할 수도 없다. 더군다나 이해영 감독의 미장센이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유령>의 1부에 해당하는 것이다. 참으로 애매하다. 그렇다면 2부에 기대를 걸어 볼 수밖에 없다. 1부와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 완전히 다른 장르로 펼쳐지는 2부.
문제는 1부나 2부 격에 해당하는 부분이 '따로 또 같이'가 되지 못하고 '따로'에서 그친다는 것이다. 콤마가 아니라 마침표를 찍고 넘어가는 느낌이라 서로 유기적이지 못한다. 모든 면에서 너무나도 확연히 다르다 보니, 옴니버스도 아닐진대 두 중편 영화를 붙여 놓은 것 같다. 감독이 신인이라 말하고 싶은 것도 많이 보여 주고 싶은 것도 많은 느낌이랄까. 이해영 감독은 어느덧 중견에 접어들었는데...
1부와 2부의 존재를 알아야 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 영화를 재밌게 즐기는 법을 말해 보려 한다. 호불호가 확연히 갈린다는 건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단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으나 애초에 이 영화의 특장점, 즉 1부와 2부 격이 존재하고 거의 모든 면에서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인지하고 봤으면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못 황당하고 어리둥절해져 부정적인 감정으로 빨려들어갈지도 모른다.
긴 러닝타임을 블록버스터급 규모의 영화에 맞지 않게 주인공급 배우 몇몇으로만 거의 채우는 만큼, 주옥같은 카리스마와 카멜레온같은 변신의 맛을 지닌 연기를 감상하는 게 핵심 포인트일 것이다. 설경구, 박해수, 이하늬, 박소담 등이 따로 또 같이 맞물리는 와중에 스토리와 메시지의 불충분함과 식상함이 채워진다.
솔직히 말하면, <유령>을 보느니 이해영 감독의 전작 <경성학교>와 김지운 감독의 <밀정> 그리고 최동훈 감독의 <암살>을 보는 게 좋을 것이다. <유령>을 해체해서 확대하면 이 세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괜찮은 영화들에서 괜찮은 부분만 빼 만들었으니 괜찮은 영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판단은 영화를 본 여러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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