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가재가 노래하는 곳>
1969년 10월 30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바클리 코브에서 아이들에 의해 젊은 남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경찰이 출동해 감식해 본 결과 소방용 망루에서 떨어진 걸로 죽은 걸 보였는데, 누군가가 밀친 것 같았다. 아무런 흔적이 없는 게 이상했지만 곧 ‘습지 여자’ 카야 클라크를 유력한 용의자로 점찍어 체포해 구금한다. 모두가 그녀를 범인으로 확인하는 가운데 국선변호사 톰 밀턴맘이 그녀의 편에 선다.
카야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습지에서 홀로 살고 있는 여자로, 어렸을 때 아버지의 폭력으로 다른 가족이 모두 도망갔는데도 홀로 그곳을 지켰고 곧 아버지마저 도망갔지만 그곳을 지켰다. 완전히 혼자가 되어 자연과 맞닥뜨린 어린 카야는 홍합을 따서 도심으로 가 친절한 흑인 부부의 상점에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며 자연의 생태를 관찰하고 그림으로 그렸다.
우연히 도심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데, 테이트 워커는 그녀에게 알파벳을 가르쳐 주고 도심의 최신 물품도 가져다 주며 사랑의 감정이 뭔지도 함께한다. 그야말로 신이자 구원자이자 선생님이자 연인이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사랑이 떠나고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는데, 어딘지 모르게 위험해 보이는 체이스 앤드류스가 그였다. 바로 1969년 10월 30일에 망루에서 떨어져 죽은 그 말이다. 카야의 또 다른 이야기들은 뭘까, 카야는 정말 체이스를 죽였을까.
굴지의 베스트셀러 원작
평생 야생돌물을 관찰하고 연구해 온 생태학자 델리아 오언스가 2018년 어느 날 일흔 가까운 나이에 느닷없이 첫 소설을 발표한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는 제목의 소설은 잔잔하게 주목을 받다가 리즈 위더스푼이 운영하는 굴지의 ‘헬로 선샤인 북클럽’에 의해 발굴된 후 초유의 베스트셀러로 우뚝 선다. 지금까지 1,5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고 하니 흥행에 대한 첨언은 필요 없을 듯하다.
그리고 2022년 7월 리즈 위더스푼이 제작에 참여한 동명의 영화가 개봉해 북미에서만 제작비 대비 몇 배에 달하는 흥행 수익을 올렸다. 코로나 시대를 감안해서라도 꽤 괜찮은 성적이다. 4개월만에 한국에도 상륙했는데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범죄 미스터리인지 성장과 사랑의 이야기인지 야생의 자연에서 생존하는 이야기인지 다양하고 다층적인 면이 소설에서는 큰 호응을 얻었지만 영화에선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개인적으론 그런 면모가 마음에 들었다. 이도 저도 아닌 게 아니라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 볼 수도 있기에 단편적이지 않고 입체적이었으니 말이다. 체이스는 어떻게 왜 죽었는지 궁금하고 그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찾는 와중에, 카야가 홀로 강인하게 생존해 온 과정이 신묘하면서도 대견하고, 그녀가 사랑하며 성장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그녀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완벽과는 거리가 멀어 보여도 사랑스러운 것이다. 너무나도 가슴 벅차게 하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고 있노라면 더더욱.
생존과 성장과 사랑으로 홀로선 여성
그렇다, 이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최대 장점은 자연 그 자체다. 카야가 평생 홀로 힘들게 살아오며 ‘습지 여자’라는 별명까지 남겼지만 사랑해 마지않는 ‘습지’가 이토록 아름다울 줄은 일찍이 몰랐다. 그곳은 어둡고 감추고 싶고 숨겨진 이미지가 아니라 환하게 탁 트이고 누구에게나 보여 주고 싶은 이미지다. 생태라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그곳으로 가야 하겠다. 카야가 그리도 동식물을 잘 알고 또 잘 그리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즐기는 또 즐겨야 하는 이유가 황홀한 자연만이라면 매우 부족하다. 카야가 평생 외롭고 고독하게 생존하는 가운데 자립심으로 똘똘 뭉쳐 꿋꿋하게 성장하는 배경으로 더할 나위 없을 뿐이다. 누구도 섣불리 접근할 수 없고 그녀 또한 쉽게 허락하지 않으니 습지의 안팎 간의 소통 또는 연결이 어렵다. 그런 와중에 ‘사랑’을 통해 배우며 살아갈 힘을 얻는 모습이 이채로우면서도 사랑스럽다.
그러니 영화는 생존과 성장과 사랑으로 홀로선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같은 듯 다르고 따로이면서도 같이 하며 반목할 듯하면서 어울리는 인생의 주요 키워드들이 영화를 씨줄과 날줄처럼 직조한다. 거기에 범죄 미스터리 장르를 한 스푼 넣으니 더 단단하고 꽉 찬 듯하다. 물론 지극히 통속적인 면이 있다, 여러 면에서 그리 새롭진 않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영화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심금을 울리는 종류의 마지막 반전이 주는 여운일까, 평생 가 보지 못할 습지에서의 삶이 주는 여운일까,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온갖 것을 최대치로 경험한 카야의 삶 자체가 주는 여운일까. 그 모든 게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데, 이 정도면 <가재가 노래하는 곳>는 충분히 즐길 만한 영화이지 않은가? 누군가에겐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손꼽을 수 있겠다.
영화가 성에 차지 않는다면 원작을 읽어야 할 시간이다. 원작의 미덕은 가히 압도적일 것이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마음을 울리며 미스터리 해결 본능까지 꿈틀거리게 할 것이다. 반면 영화로 충분했다면 굳이 원작을 찾아보지 않아도 된다. 상상력이 반감되고 마음이 덜 울리며 미스터리 해결 본능이 충분히 자극되지 않을지 모른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도대체 어디인지 또 무슨 뜻인지 궁금하지 않는가?
결국 돌아갈 곳은 다시 습지다. 우리가 태어난 곳, 자란 곳, 살아온 곳을 잊지 않고 고히 품고 있듯이 말이다. 그곳은 꼭 물리적인 공간, 태어나 자라고 살아온 그곳만을 뜻하지 않는다.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까,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는 그곳. 다시 돌아가 살아가다가 끝을 맞이하고 싶은 그곳.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바로 그곳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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