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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평범한 시골 마을 대가족에게 생긴 일들 <알카라스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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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알카라스의 여름>

 

영화 <알카라스의 여름> 포스터. ⓒ영화사 진진

 

2018년 <프리다의 그해 여름>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카를라 시몬' 감독, 그녀는 이 작품으로 전 세계 수많은 영화제에서 수십 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일일이 세기도 힘든 만큼 많은 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아이의 시선을 따르며 정제되지 않은 가운데 최선·최고의 결과물을 도출해 냈으니, 대단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을 정도다. 그야말로 연출력의 승리겠다. 

 

4년 후 카를라 시몬 감독은 정제되지 않았지만 최선·최고의 결과물을 또 하나 들고 돌아왔다. 제72회 베를린 영화제 황금공상(최고상)에 빛나는 <알카라스의 여름>이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점과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마을에서 촬영되었다는 점이 <프리다의 그해 여름>과 동일하다. 주연 배우를 <프리다의 그해 여름>의 경우 오디션으로 뽑았고 <알카라스의 여름>의 경우 감독이 직접 물색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완전히 생소한 얼굴에 날것의 연기가 빛을 발한 것이다. 

 

영화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작은 마을 알카라스에서 복숭아밭을 일구는 3대의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일상을 보여 준다. 그런데 이 조용한 마을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태양광 발전판이 들어오질 않나, 대기업이 과일 가격을 반값으로 후려치질 않나, 마을 주민들이 땅을 헐값도 안 되게 팔아 넘기질 않나. 이 변화의 속도에 3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시골 마을에서 복숭아밭을 일구는 대가족

 

어느 여름날,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작은 마을 알카라스에 3대가 모여 복숭아밭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사촌지간의 아이들은 천방지축 떠들고 방방 뛰면서 노는 데 바빠 전혀 모르지만, 어른들이 싸우는 모습에서 심각한 무슨 일이 생긴 거라는 것쯤은 느낄 수 있다. 할아버지 로헬리오가 전쟁 때 지주의 가족을 숨겨 줬는데 그 덕분에 복숭아밭을 받아 지금까지 일궈 왔는데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그 아들이 태양광 발전판 사업가가 되어 정식으로 계약되지 않은 복숭아밭을 밀어 버리려 한 것이다. 

 

로헬리오가 실의에 빠진 사이 그의 아들 키메트와 손자 로제르를 중심으로 복숭아밭을 계속 일구고 있다. 다들 심각성을 잘 알지만 쉬쉬 하는 분위기, 키메트는 뭐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절대로 복숭아밭을 넘겨 줄 수 없다는 입장이고 키메트의 여동생과 그녀의 남편은 이대로 가면 대가족이 폭삭 주저앉게 생겼으니 지주의 아들에게 복숭아밭을 넘기고 태양광 발전판 사업에 뛰어드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가 하면, 손자 로제르는 열심히 밭일을 돕지만 키메트는 공부는 안 하고 밭일을 하는 아들이 못마땅하고 며느리는 남편이 막무가내로 자신만의 입장을 고수하는 게 못마땅하며 손녀는 할아버지 뒤에서 가족들이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게 못마땅하다. 바르셀로나에서 막내여동생이 놀러오는데, 그녀와의 사이도 좋은 듯 좋지 않아 보이는 키메트다. 이 대가족의 가장 키메트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인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이 보이질 않는다. 살 길은 보이지만 그 길로 가기가 여의치 않다. 

 

꾸밈없고 자연스럽다

 

<알카라스의 여름>은 영화 안팎으로 꾸밈이 없고 또 자연스럽다. 앞서 주지했듯 전작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주연 배우를 감독이 직접 물색해 오디션으로 뽑은 만큼 만들어진 느낌이 없을 텐데, 그 가운데 아마추어에 가까운 배우들이 어색해하지 않고 부담을 갖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한 것 같다. 영화 속 대가족이 마치 구성원 그대로 실제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마냥 사이가 좋거나 마냥 사이가 나쁜 게 아니라 웃고 울면서도 티격태격 싸우고 심각해지는 게 반복되는 사이가 가족 아닌가. 

 

<프리다의 그해 여름>에서도 빛을 발한 '아이들'의 연기가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상황을 설정하곤 끝모를 에너지로 여기저기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보다 꾸밈 없고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이 아이들의 연기를 '연기'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는 없는 게 감독의 디렉션에 의해 최소한으로나마 만들어진 동작, 표정, 대사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연기야말로 <알카라스의 여름>의 핵심 중 하나라고 하겠다. 

 

한편, 아이들과 할아버지가 이어지는 부분이 이 작품의 또 하나의 핵심이자 백미다. 복숭아밭을 일구며 대가족을 꾸리는 데 평생을 바친 할아버지 로헬리오, 그의 아들딸들은 소싯적 실수로 아버지를 몰아부치지만 손자손녀들은 의식적이지 않게 불현듯 할아버지를 위해 찬가를 부른다. 아니, 할아버지를 향한 손자손녀들의 일방적인 찬가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연결이자 이어짐이라고 하겠다. 1대와 3대가 이어지기에 자연스럽게 2대 또한 1대와 3대 양쪽을 연결하는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카탈루냐 지역 그리고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영화는 자못 별다른 게 없어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할 얘기가 많다. 우선 알카라스가 있는 '카탈루냐'라는 지역을 볼 필요가 있다. 역사, 언어,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바, 과실나무 농업지대로 산업의 대부분을 농업이 차지하고 있지만 그 와중에 농업인구가 고령화되고 거대 자본이 잠식해 들어오고 있는 등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할아버지 로헬리오가 농업인구의 고령화를, 지주의 아들이 들여오려는 태양광 발전판이 거대 자본의 잠식화를 상징한다 하겠다. 

 

그런가 하면, 아들 키메트와 손자 로제르가 동료들과 함께 대기업의 복숭아값 후려치기에 대항해 시위하는 모습을 보면 카탈루냐 분리독립 운동의 뿌리가 보이는 듯하다. 그렇게 열심히 복숭아를 수확해 가져다줘봤자 돌아오는 건 적으니 시위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테다. 다른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스페인 경제의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카탈루냐이건만 정작 그들에게 돌아오는 게 적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한다. 카탈루냐 그리고 바르셀로나는 언제나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밀려 있지 않나. 

 

여러 제반 사항이 산적해 있는 와중에 키메트가 어떤 선택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복숭아밭을 사수할 의무가 있지만(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대가족을 책임질 의무도 있다. 복숭아밭을 이어받은 자로서 복숭아밭을 저버리고 태양광 발전판을 받아들이는 게 자신의 목숨을 저버리는 것보다 싫은 또는 믿을 수 없는 또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의무 또는 신의 또는 신념을 버리면 모두가 잘 먹고 잘살 수 있을 것이다. 

 

키메트의 선택이 지극히 현실적이길 바라는 한편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슬픔과 애환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바, 끝까지 감상하는 데 고삐를 늦춰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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