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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연쇄 살인마 '찰스 컬런'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 냈을까 <그 남자, 좋은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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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그 남자, 좋은 간호사>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그 남자, 좋은 간호사> 포스터.

 

2003년 미국 뉴저지의 파크필드 기념병원에서 중환자실 간호사 에이미가 환자를 돌보고 있다. 규정을 어기고 보호자가 밤새 환자 옆에 머무를 수 있게 해 주는 걸 보니 좋은 간호사인 듯하다. 상사에게 들켜 꾸중을 듣지만 인력이 충원될 거라는 소식도 듣는다. 한편 에이미는 심근경증을 앓고 있어 자주 호흡곤란이 찾아오는데, 홀로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쉴 수도 없다. 계속 이런 식으로라면 수개월 내에 죽을 수도 있고 그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질 수도 있거니와 심장 이식 수술밖에 답이 없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던 어느 날, 인력 충원이 되어 남자 변호사 찰리가 출근한다. 그는 그동안 여러 병원에서 일했다고 했는데, 편안한 듯 싹싹해서 에이미와 금방 친해진다. 찰리는 에이미의 환자까지 대신 챙겨주는데,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다. 머지 않아 찰리는 에이미가 심근경증을 앓고 있어서 중환자를 힘겹게 돌보고 있다는 걸 안다. 그는 에이미의 비밀을 지켜 주고 또 도와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런데 에이미가 보살피던 310호 중환자가 갑자기 사망한다. 중환자니까 그럴 수 있겠으나 한편으론 그러기도 힘든 일이었다. 7주 후 병원의 요청에 따라 형사들이 와서 수사를 시작한다. 병원 측에선 문제될 게 없다고 판단했으나 보건부가 수사를 지시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310호 환자의 시신은 이미 화장되었고 보호자는 수사 진행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경찰들은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경찰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저 병원에 가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듣는 정도였다. 그러던 중 에이미를 만나 얘기를 듣는데, 찰리가 8년 전 펜실베이니아에서 불법 침입으로 고소되었다가 취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펜실베이니아 경찰에 문의해 보니 '디곡신'이라는 메모만을 전해 들을 뿐이었다. 경찰은 찰리 그리고 병원을 의심하기 시작하는데...

 

미국의 연쇄 살인마 '찰스 컬런'의 실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그 남자, 좋은 간호사>는 중환자실 간호사로 오랫동안 일하며 최소 수십 명(공식적)에서 최대 수백 명(비공식적)을 죽인 미국의 연쇄 살인마 '찰스 컬런'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동명의 논픽션 <그 남자, 좋은 간호사>가 원작으로, 연출은 토비아스 린드홀름이 맡았고 대런 애러노프스키가 제작에 참여했으며 제시카 차스테인과 에디 레드메인이 주연을 맡았다.

토비아스 린드홀름은 덴마크를 대표하는 명감독 토마스 빈터베르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더 헌트>와 <어나더 라운드>를 공동 집필한 걸로 유명하고, 대런 애러노프스키는 <레퀴엠> <더 레슬러> <블랙 스완> <마더!> 등으로 유명하며, 제시카 차스테인과 에디 레드메인은 둘다 아카데미, 골든 글로브를 석권한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할리우드 대표 배우들이다. 그야말로 화려하다.

한편, 연쇄 살인마 찰스 컬런에 시선이 가지 않을 수 없는데 1988년부터 2003년까지 병원을 옮겨 다니며 약물로 환자를 죽였다고 한다. 대부분 중환자이기에 찰스 컬런의 악마적 행위에 어떤 사연이 있겠거니 유추해 볼 수 있으나 그한테서 정확한 이유를 들을 수 없었다. 그는 29명에 대한 유죄를 인정했으나 그가 시인하지 않은 피해자의 수가 최대 400명까지 될 거라고 추정된다. 그야말로 최악의 연쇄 살인마다. 이 영화가 그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 냈을까 자못 궁금하다.

두 주연 배우의 압도적인 무게감

영화는 역대급 최악의 연쇄 살인마 실화를 기반으로 한 범죄 스릴러를 표방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드라마에 가깝다. 물론 시종일관 신경을 긁는 듯한 기분 나쁜 분위기가 연출되긴 하지만 말이다. 범죄 스릴러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액션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아마도 연출과 연기에 방점이 맞춰져 있어서인 것 같은데, 주연을 맡은 두 배우의 무게감이 영화 자체를 압도하는 경향이 있다.

하여 이 영화는 두 주연 배우의 연기를 따라가며 감상하는 것에 포인트를 맞추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연쇄 살인마라는 극악무도한 본 모습 위에 선하고 성격 간호사의 가면을 쓴 찰리, 자기 몸은 무너져 가지만 아이들 그리고 환자들을 생각하며 아무도 모르게 묵묵히 나아갈 뿐인 선하고 좋은 간호사 에이미가 우정을 나누는 모습이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영화 안에서만큼은 에이미와 찰리, 찰리와 에이미는 진정한 친구였을 것이다. 영화가 보다 다이내믹하게 그리고 디테일하게 찰리의 행각을 뒤쫓는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미에게만큼은 그러지 않았다는 걸 어필했다면 이런 감정을 불러 일으키진 못했을 테다. 하여, 우린 이 영화에서 찰리의 행각을 직접적으로 보지 못한다. 누구나 찾아보면 다 알 만한 사항을 다큐도 아닌 영화로 자세히 보여 주는 건 이 영화가 추구한 모양새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의도가 잘 맞아 떨어졌다. 찰리가 아닌 에이미의 감정선에 공감이 갔다.

찰스 컬런의 행각, 병원의 대응, 시스템의 부재

그럼에도 찰리, 그러니까 연쇄 살인마 찰스 컬런의 행각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영화가 포커스를 맞춘 건 주지했다시피 그의 행각 자체가 아니다. 행각 이후 병원 또는 병원들의 이상하고 미묘한 대응이다. 이 역시 실화에 기반한 문제 제기인데 찰스 컬런이 십수 년간 10여 군데 병원에서 약물 살인을 저지르고 다녔는데, 그때마다 병원에선 그를 의심했지만 해고하는 선에서 사건을 수습했을 뿐이다. 그의 행각이 사실로 밝혀지면 병원에 큰 타격으로 다가올 거라는 예측 때문이었다.

환자가 석연치 않게 사망했음에도 신고하지 않다가 보건당국의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7주 뒤 신고한 영화 속 파크필드 기념병원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말이다. 경찰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용의자를 지칭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병원 측에 항의할 수도 병원을 닦달할 수도 없다. 관련된 시스템의 부재로 모두가 대략이나마 알지만 쉬쉬 하는 이토록 큰 일이 계속 되어 오는 걸 방임한 것이다. 하여, 실제로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대부분의 주에서는 병원에서 의심스러운 죽음이 발생했을 시 무조건적으로 보건당국에 알려야 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고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그나마도 다행이라 하겠다.

넷플릭스는 11월 11일 찰스 컬런 다큐멘터리 <살인 간호사를 잡아라>를 오리지널로 공개한다. 영화로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를 전했다면 다큐멘터리로는 사건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넷플릭스가 간간이 사용하는 전략인데, 미국의 연쇄 살인마 '테드 번디'에 관한 영화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와 다큐멘터리 <테드 번디 테이프>를 비슷한 시기에 공개했었고 역시 미국의 연쇄 살인마 '제프리 다머'에 관한 드라마 <다머>와 다큐멘터리 <제프리 다머 테이프>를 비슷한 시기에 공개한 바 있다. 시대를 규정할 만한 사건이라면 이런저런 시선과 관점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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