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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흔한 갱스터 범죄 영화, 알고 보니 고품격 심리 스릴러 <아웃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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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아웃핏>

 

영화 <아웃핏> 포스터. ⓒ넷플릭스

 

1956년, 미국 시카고의 어느 골목길에 위치한 수제 양복점. 영국에서 건너온 재단사 레오나르드는 비서 메이블에게 양복점의 전체적인 관리를 맡기고 자신은 조용, 차분, 꼼꼼하게 양복을 만들 뿐이다. 지역 마피아 범죄조직이 양복점을 수시로 드나들며 박스로 서신을 전하는 걸 보면, 그가 굉장히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점과 범죄조직과 접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조직 보스 보일의 아들 리치와 핵심 부하 프랜시스가 '아웃핏'(모든 마피아를 관리하고 감시하는 조직)으로부터 녹음 테이프를 전달받는데 조직 내 밀고자가 FBI에 협력하고 있다는 결정적 증거라는 것이었다. 거기에 FBI 내 밀고자가 존재하고 또 조직 내 밀고자는 지역 내 라이벌 조직인 라퐁텐에 정보를 넘기려 하고 있다. 리치와 프랜시스가 테이프를 재생시키고자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레오나르드가 둘 사이를 이간질한다.

 

평소 조직의 2인자 자리를 두고 사이가 좋지 않았던 둘은 빠르게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눴다. 그러다가 결국 사달이 나고 만다. 한 명이 다른 한 명의 총에 맞아 죽고 만 것이다. 그 와중에도 레오나르드는 한 발짝 떨어져 관망하는 듯하지만, 결정적일 때는 나서서 물꼬를 완전히 틀어 버린다. 급기야 조직 보스 보일이 양복점에 들이닥치는데... 

 

흔히 볼 수 없는 종류의 갱스터 영화

 

범죄조직이 나오고, FBI와 조직 내 밀고자도 나오고, 라이벌 조직의 존재도 보이며, 조직원 간의 알력 다툼으로 살인까지 일어난다. 갱스터 장르 영화인 듯하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배경이 레오나르드 양복점뿐이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직접적으로 볼 수 없다. 그러니 갱스터 장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비린내의 액션 장면 하나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영화일까?

 

희소성 있는 갱스터 영화 <아웃핏>은 2014년 최고의 영화로 손꼽히는 <이미테이션 게임>의 각본가로 유명한 '그레이엄 무어'의 장편 연출 데뷔작이다. 그는 명문 컬럼비아대학교를 졸업하고 소설 <셜로키언>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가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시나리오를 써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후 소설 <밤의 마지막 날들>로 다시 한 번 베스트셀러 작가 타이틀을 얻었다. 이후 다시 영화로 선회해 <아웃핏>을 연출했다. 다재다능의 표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레오나르드 양복점 밖을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지만 답답하거나 지루하긴커녕 오히려 심리적 긴장감이 배가되는 듯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고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 보게 된다. 그 중심엔 단연 재단사 레오나르드가 있는데,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을 조용히 차분하게 관망하는 듯하지만 돌연 자신만의 방식으로 타개하는 것도 모자라 뒤집어 버리니 말이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데서 한 번, 레오나르드가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는 데서 또 한 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누구인가?

 

알고 보니 반전 심리 스릴러

 

<아웃핏>의 외향은 갱스터 범죄이지만, 들여다보면 완벽에 가까운 반전 심리 스릴러다. 역동적인 액션이 전무한 가운데 말과 말이 오가고 표정과 표정이 맞부딪히며 분위기와 분위기가 상황과 생명을 좌우한다. 이 모든 건 치밀하게 직조된 시나리오에 철저하게 발맞춘 밀실 양복점에서 벌어진다. 영화라기보다 스크린으로 옮긴 연극 같다. 

 

좁디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치열하디 치열한 심리 전쟁의 당사자들은 항상 범죄조직원들이다. 양복점 주인 레오나르드는 한 발 뒤에서 상황을 관망하듯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관객은 레오나르드를 향해 있지 않고 레오나르드와 함께 그의 시선을 따르고 있다. 연극 안의 연극이라고 할까. 자못 흥미로운 지점이다. 

 

하지만, 일련의 상황을 그러니까 연극의 장과 막을 마무리하는 건 언제나 레오나르드다. 그리고 다음 장과 막으로 매끄럽게 이어 주는 것도 당연히 레오나르드의 몫이다. 그는 마치 연극의 연출자처럼 출연자들을 싸움을 붙이고 화해시키며 죽이고 살린다. 아무것도 아닌 천쪼가리로 한 사람을 완성시키는 완벽한 양복을 만드는 '재단사'라는 직업을 특성을 아주 잘 보여 주고 또 이용했다. 

 

그런데 레오나르드가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간절하게 상황을 타개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과연 그는 재단사처럼 상황을 치밀하게 직조한 걸까, 그저 뛰어난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타개하고자 한 걸까.

 

휘두르던가 휘둘리지 않으려 하던가

 

이 영화가 대단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레오나르드가 재단사라는 점을 통해 철저히 자신에게 유리하게 상황을 이리저리 '휘둘렀다'고 봐도 재밌다. 레오나르드를 위협하는 한편 자기네들끼리 살리네 죽이네 하는 범죄조직원들은 그저 꼭두각시일 뿐이다, 혹은 재료에 불과하다. 레오나르드는 모든 걸 알고 있는 조물주이니 말이다. 

 

영화를 두 번 보면 확실히 구분하며 즐길 수 있을 텐데, 레오나르드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와중에 살아남고자 그때그때 대응하며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자' 최선을 다한다고 봐도 재밌다. 레오나르드는 그저 양복점에서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일이 일어나면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하게 가져가려 할 뿐이다. 조마조마하다. 

 

레오나르드를 두고 어떤 시선으로 보는 것에 따라 영화 자체가 달라져 버리는 신기한 경험을 할 것이다. 오직 시나리오의 힘 그리고 레오나르드로 분한 마크 라이런스의 연기의 힘이다. 별다른 액션 없이 오직 심리전으로만 좁은 밀실 공간의 이야기를 지루하기는커녕 흥미진진하게 다뤘고, 하나의 연기로 두 가지 상반된 상황을 완벽히 설명했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아니 일찍이 만나 보지 못한 성격의 고품격 심리 스릴러 한 편을 만나 즐거웠다. '그레이엄 무어'라는 이름을 기억해 둬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 이름 하나로도 충분히 시청 또는 관람 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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