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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그는 왜 아버지를 죽일 수밖에 없었나? <나는 아버지를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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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나는 아버지를 죽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는 아버지를 죽였다> 포스터.

 

2019년 6월 3일 새벽 미국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지의 어느 주택가, 911로 신고 전화가 들어오더니 자기가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였다는 게 아닌가. 이름은 앤서니 템플릿이고 남자이며 17살이라고 했고, 아버지는 53세의 버트 템플릿이라고 했다. 곧바로 경찰이 충돌했고 집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앤서니는 무덤덤하게 잡혀 갔다. 

 

본격적으로 앤서니를 신문하기 시작한 경찰,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차분했다. (아버지를 제 손으로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으니 하루이틀 뒤면 풀려날 줄 알았다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이 사건 뒤에 뭔가 큰 게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이 자못 들지만, 앤서니라는 애가 사이코패스 아니면 잘사는 집 아들내미가 미친 거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나는 아버지를 죽였다>는 존속 살해를 하고서도 무덤덤하고 차분하게 대응했던 앤서니 템플릿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는 도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였던 걸까? 사건의 진상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겨 내다 보면 곧 끔찍한 내막이 밝혀진다. 앤서니는 아버지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걸까?

 

앤서니가 아버지를 죽인 진짜 이유

 

앤서니 템플릿이 아버지를 죽인 현장적 원인, 그러니까 사건 당시의 직접적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아버지한테서 자신을 보호하고자, 아버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고 생각했기에 아버지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뭔가 석연치 않다.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런 이유로 '살인'까지 저질러야 했을까? 뭔가 다른 게 있을 것이었다. 

 

우연히 앤서니의 존속 살인 보도를 본 어느 DNA 전문가가 의아함을 느끼고 조사를 시작한다. 그녀는 버트가 살아생전 앤서니를 소개해 일을 시킨 고용주의 지인이었는데, 그 고용주도 버트와 앤서니를 보고 의아함을 느꼈다. DNA 전문가는 오래지 않아 전말을 알게 되는데, 앤서니에게 엄마 테리사와 누나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앤서니는 버트와 단 둘이 살고 있을 뿐 다른 가족은 없었다.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싶고 존속 살인 사건과 무슨 상관인가 싶은데, 절대적으로 상관이 있는 일이라는 걸 곧 알게 된다. '버트는 앤서니의 친부다' '앤서니는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앤서니에겐 엄마와 누나가 있지만 같이 살지 않았다' '앤서니의 엄마와 누나는 지난 10년 넘게 앤서니를 찾았다' '앤서니는 버트를 죽였다' 석연치 않은 일련의 사실들, 알고 보니 앤서니가 5살 때 버트가 앤서니를 납치했고 테리사를 비롯해 다른 가족들은 10년 넘게 앤서니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버트가 아들에게 저지른 용서받지 못할 학대

 

사건의 쟁점은 점점 명확해졌다. 앤서니가 버트를 총으로 쏴 죽였을 당시, 앤서니가 버트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할 만한 직접적이고 신체적인 위협이 있었는지 말이다. 그런가 하면, 앤서니는 총을 두 자루나 준비해 장전을 해 뒀으니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버트를 죽이려 했다는 게 확실했다. 앤서니가 2급 살인죄로 종신형을 살게 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이에 앤서니의 사연을 듣고 무료로 변호를 맡은 변호사 재럿은 사건을 보다 거시적으로 그리고 전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사건 당시의 직접적이고 신체적인 위협도 물론 중요한 요소이지만, 사건이 있기까지 앤서니의 상황과 버트의 앤서니를 향한 신체적·정신적 학대 정황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봤다. 

 

앤서니는 학교를 다니긴커녕 홈스쿨링도 한 적이 없어 그 어떤 교육도 받지 못했다.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새엄마 수잔이 버트의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학대를 이기지 못하고 집을 떠나곤 앤서니는 버트와 단 둘이 집에 감금당하다시피 살게 되었기에 세상 그 누구한테도 도움을 청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경찰과 수잔네 가족이 매일같이 와서 버트가 법원에 출석할 것을 요구했지만 달라진 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버트의 학대는 더 심해졌고 앤서니가 할 수 있는 일은 버트를 죽이는 것이었다. 

 

교육을 받지 못했어도 뭔가 이상하다는 점은 충분히 눈치 챘던 앤서니, 그는 버트에게서 즉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벗어날 방법을 몰랐다. 더군다나 버트는 집 안팎으로 CCTV를 설치해 집 전체를 철저히 감시했으니 물리적으로도 벗어날 수 없었다. 앤서니가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 이 자극적인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던지는 핵심 질문이다. 

 

정의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앤서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재럿의 헌신적인 노력과 많은 이의 도움, 지원으로 보호 관찰 처분을 받을 수 있었다. 완전한 자유를 얻진 못했지만 감옥이 아닌 세상에서 살아가며 새로운 인생을 설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군가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이게 바로 정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례다. 앤서니가 친부를 의도적으로 죽였지만 그가 살인죄로 감옥에 갔다면 그건 정의가 아니었을 테다. 

 

이 사건이 일어난 건 2019년으로, 불과 3년 전이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사건, 그러니까 앤서니가 버트를 죽인 사건이 아니라 버트가 앤서니를 그 어떤 교육도 시키지 않은 채 감금하고 신체적·정신적 학대를 일삼은 사건이 일어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어찌 세상은 버트를 가만히 놔뒀는가, 앤서니를 들여다보지 않았는가. 앤서니는 왜 그런 어린 시절을 겪어야 했는가.

 

세상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지만 가정폭력(신체적·정신적)은 여전히 가정의 일, 가정이 해야 할 일이라고 치부되곤 한다. 남의 제상(가정사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다는 말이 비단 우리나라에만 통용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할까? 결코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앤서니는 제대로 된 삶을 살아야 한다. 아이들은 누구나 제대로 된 삶을 살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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