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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모든 영화팬의 성전이 드디어 우리를 찾아왔다 <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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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큐어>

 

영화 <큐어> 포스터. ⓒM&M

 

경시청에서 근무하는 다카베는 연이어 3건이나 벌어진 기이하고 엽기적인 사건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나같이 목에서 가슴에 이르는 부분까지 X자 모양의 자상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피의자들이 하나같이 평범하기 이를 데 없거니와 범죄 행각은 인정하지만 범죄 당시를 뚜렷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홀린 것처럼 말이다. 그런 와중에도 동일한 수법의 살인 사건이 계속 일어난다.

다카베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아내 때문에 인간의 심리에 나름 깊이 있게 파고들고 있어서, 감식과 동료이자 정신과 전문의이기도 한 사쿠마에게 이런저런 가능성을 던지는데 '최면암시' 수법도 나온다. 사쿠마는 최면암시 수법의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다카베는 또 다른 피의자를 심문하던 중 마미야라는 정체불명의 인물 정보를 입수하고 그가 입원 중이던 병원을 급습해 체포한다.

일련의 살인 사건들 중요참고인으로 마미야를 심문하는 다카베, 하지만 오히려 마미야의 술수에 걸려들고 있었다. 마미야는 다카베에게도 다른 사람들, 즉 피의자들에게 한 것처럼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다카베는 금방 빠져 나오지만, 수사를 이어가던 도중 조금씩 정신이 혼란스러워지는 걸 느낀다. 한편 다카베는 마미야가 살던 집에 찾아가 그가 의대 정신과 학생이었고 또 최면암시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아낸다. 마미야는 왜 그런 짓을 벌인 걸까? 다카베는 무사히 수사를 마칠 수 있을까?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로망 포르노로 이력을 시작한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영화 마니아들의 절대적인 지지에 힘입어 작품 활동을 이어 가다가 1997년에 나온 <큐어>를 기점으로 일본을 넘어 국제적인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선 봉준호, 연상호 감독의 열광적인 지지, 아니 추앙을 받았고 미국에선 마틴 스콜세지가 거장으로 추켜 올렸다.

<큐어>는 장르적 상상력을 독보적 문법으로 결합시키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대표작이자 자타공인 최고작이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말마따라 영화 자체가 재밌기도 하지만, 당대 일본의 공포스러운 사회적 함의를 한껏 담아 공포 어린 범죄 스릴러로서의 장점을 최대치로 끌어 올릴 수 있었다. 하여, 여러 가지 해석도 가능하다.

때론 의도하지 않은 부분이 모두가 공감시키거나 모두를 끌어 당기기도 하는데, 거기에서 바로 진짜 감정이 도출되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행운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의미나 메시지에 경도되지 않고 이야기에 천착했기에 자연스럽게 의도하지 않은 부분이 도출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행운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큐어>는 정녕 모든 영화팬의 성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블 붕괴 시기 일본의 사회병리

 

1990년대 중반, 일본은 1980년대의 짧고 굵은 거품경제 시기가 지나가고 '버블 붕괴' 시기가 도래한다. 선을 넘어서 과도하게 부풀던 거품이 터져 버렸으니 여파는 대단했다. 세계 1위를 위협하던 경제대국의 경제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 유명한 '잃어버린 10년'의 시작인데, 현재까지 30년여 동안 이어지고 있다. 

 

<큐어>는 나라 전체가 패닉에 빠졌던 1990년대 중후반 일본의 사회병리를 핀셋으로 콕 짚듯 포착했다. 사회병리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 범사회적이라 개개인으로 봤을 때 불안·불만·불쾌 등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고 무의식 깊이 숨어 있다. 그 감정의 대상도 특정하기 힘들고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지점을 노린다면? 아주 쉽게 무너질 요량이 크다. 마미야가 계속 "당신은 누구인가?"를 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미야가 물으면 대체로 이렇게 대답한다. "난 초등학교 교사 하나오카 토루다" "난 경관 오이다다" "난 경시청 다카베다" "난 의사 미야지마다" 하는 식으로 말이다. '직업'과 '나'라는 존재를 떼려야 뗄 수 없으니 그 안에서 관계 형성이 될 테고, 모든 관계는 완벽할 수 없다. 아주 사소하고 소소한 부분이나마 마찰이 있기 마련이다. 마미야가 최면암시로 노린 지점이 바로 그 지점이다. 사소하고 소소하게 지나가고 묻어두고 감출 수 있는 부분을 아주 크게 부풀리고 그게 전부인 듯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굉장히 무섭고 소름 끼친다. 기본적인 윤리관의 정반대에 있는 '살인'이라는 범죄를 실행에 옮길 정도라면 특별한 사연 또는 굉장한 우연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텐데, 이 영화에서의 살인은 '누구나' 가능하다는 게 아닌가. 마미야의 강력한 술수에 걸려들면 그 누구도 빠져 나갈 수 없는데, 그 대상은 사실상 모두이고 살인 대상도 사실상 모두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

 

1995년 3월 일본 도쿄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옴진리교라는 단체가 세뇌된 광신도들로 하여금 도쿄 지하철에 사린(독극물)이 살포하게 한 것이다. 14명이 죽고 6,3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세기말이 도래하며 혼란에 빠지고 경제도 처참하게 붕괴되고 있던 시점에 일어났던 인류 최악의 테러 사건이다. 한편 누구나 광신도가 되어 평범한 이도 살인을 저지를 수 있고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이다. 

 

영화의 끝에 다다르면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하고 말이다. 지금으로선 다른 대답을 찾기가 힘들다. "난 무슨 일을 하는 김형욱이다" "난 누구의 남편 김형욱이다" "난 누구의 아들 김형욱이다"... 다른 말을 찾지 못하면 마미야의 술수에 넘어갈 것만 같은 오싹함이 전신에 퍼진다. 

 

<큐어>가 만들어 진지 25년만에 정식 개봉으로 우리를 찾아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25년 전 이 영화가 나왔을 땐 일본의 버블 붕괴가 있었고 한국과 태국을 비롯한 아시아 금융 위기가 있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공교롭게도 범 세계적인 위기가 들이닥칠 때였던 것이다. 그런 위기가 주는 불안·불만·불쾌 등이 모든 이는 물론 감독 안에도 내재되어 있었을 테다.

 

현재는 어떤가? 포스트 코로나의 입구에서 물가와 금리는 치솟고 증시는 한없이 내려가고 있다. 믿기 힘든 전쟁이 벌어지며 이권 다툼이 가속화되고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정치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사회병리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그런 와중에 <큐어>의 등장은 의미심장하다. 25년 전 <큐어>의 등장이 사회병리의 반영이었다면, 현재는 사회병리가 <큐어>를 불러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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