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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딸들을 버린 엄마에 대하여 <로스트 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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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로스트 도터>

 

영화 <로스트 도터>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그리스의 멋진 섬으로 홀로 휴가를 온 레다, 그녀는 40세 정도로 보이는 48세 비교문학 교수로 매일같이 해변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낸다. 가만히 있어도 원하는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하는 이들이 있으니 한없이 편하다. 그러던 차 한 무리의 가족이 해변으로 몰려왔다. 족히 십수 명은 되어 보이는 대가족이었다. 거기에 십수 명의 일원이 더 오더니 초거대가족을 이뤘다. 

 

그들 중 어린 여자아이와 하루종일 찰싹 달라붙어 다니는 젊은 엄마가 레다의 눈에 띄었다. 레다는 옛 생각이 나며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긴 듯했다. 딸과 관련해서 그녀에게 뭔가 사연이 있는 걸까. 한가로운 낮에 해변에서 젊은 엄마 니나가 딸 엘레나를 잃어 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다행히 레다가 엘레나를 무사히 찾아 주지만 엘레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인형이 사라진다. 여하튼 젊은 엄마네 가족과 안면을 튼 레다, 알고 보니 엘레나의 인형을 그녀가 가지고 있었다. 

 

이후, 레다와 니나는 서로를 의식한다. 레다로서는 니나가 예전의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을 테고, 니나로서는 엄마이지만 자유로워 보이는 레다를 롤모델처럼 생각했을 테다. 한편, 레다는 20여 년 전을 회고하는데 두 딸 비앙카와 마사를 키우면서도 비교문학 교수라는 타이틀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다. 일과 육아, 양립하기 불가능에 가까운 두 과정에서 레다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어떤 선택을 했기에 니나를 보며 옛 생각이 나고 때론 몸이 갑자기 이상해진 걸까?

 

매기 질렌할의 연출 데뷔작

 

지난 몇 년간 '여성'은 문화계의 주요 테마이자 화두로 활발하게 작동했다. 그중에서도 영화계는 특히 강렬했는데, 여성의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영화들이 여성 서사를 표방하며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이토록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며 또 성과도 내는 걸 보면 단순히 한때의 유행이나 현상이 아닌 주류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익숙한 이름의 배우 매기 질렌할의 연출 데뷔작이자 베니스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고 미국·영국 아카데미를 비롯 유수의 영화제에서 각본·각색상 후보에 올라 수상하기까지 한 <로스트 도터>는 지금 이 순간 여성 서사를 표방한 영화의 새로운 금자탑이다. 매기 질렌할은 제작·연출·각색을 도맡아 사실상 <로스트 도터>의 모든 걸 책임지다시피 했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원작자 엘레나 페란테가 원작 '잃어버린 사랑'의 영화화 조건으로 '매기 질렌할이 직접 연출할 것'을 내걸었다고 한다. 

 

여성이 지은 여성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의 모든 걸 여성이 책임졌고 영화의 주연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 생소한 듯 생소하지만은 않다. 그만큼 꾸준히 여성의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영화들이 우리를 찾아왔던 것이리라. 그리고 그런 영화들을 향한 관심이 비단 여성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점점 전방위적으로 넓혀지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딸을 버린 엄마에 대하여

 

원작을 영화화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게 일반적으로 '원작을 얼마나 잘 구현해 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각색을 잘했다는 건 원작을 최대한 구현하면서도 원작에 없지만 원작과 영화 모두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들을 마련하는 것일 테다. 매기 질렌할이 <로스트 도터>로 기가 막히게 마련해 구현한 게 바로 그것들이다. 

 

이탈리아 배경을 그리스 배경으로 바꿨고 일상의 사소함에서 의외의 긴장감을 부여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쓴 듯하다. 갑자기 들이닥친 등대 빛에 놀라고, 탐스러워 보이는 과일 아랫 면이 썩어 있는 모습에 놀라고, 자고 일어 났더니 눈앞에 보이는 매미에 놀라고, 뱀 모양으로 잘린 오렌지 껍질에 놀라고, 인형 배 속에서 나온 진흙과 벌레에 놀란다. 그녀, 즉 레다가 평온해 보이는 외면과 달리 내면은 상당히 불안에 떨고 있구나 하는 바를 알 수 있는 대목들이다. 그건 레다의 20여 년 전 선택 때문이겠다. 

 

제목에서도 암시하듯 레다는 딸(들)을 잃었다. 아니, 정확히는 딸들을 버렸다. 자신의 일을 찾아, 꿈을 찾아, 삶을 찾아 집을 나와 버렸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녀는 3년이 지나 다시 돌아갔다. 레다는 그 3년 동안 행복했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이 이기적인 엄마라고 말한다. 복합적으로 소용돌이치는 감정 앞에서 힘들어하는 레다를 스크린 밖에서 보는 모든 이 역시 여러 가지 감정이 다층적으로 쌓이고 쌓이며 얹히고 얹히지 않을까 싶다. 

 

여자, 엄마 그리고 모성이라는 단어들은 퇴적물이 층층이 두껍고도 두껍게 쌓인 것처럼 그 본질을 들여다보기가 힘들다. 본질에 가닿고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끊임없이 투쟁해 왔지만 여전히 논란거리의 일종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한 번만 다르게 생각해 보자. 영화에서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딸들을 떠났다면 이야기 자체가 성립될까? 그냥 진짜 나쁜놈이구나 하고 말았을 것이다. 

 

함의가 큰 작품

 

레다의 행동은 부모로서 몰지각하고 파렴치했다. 부모라면 자식을 세상에 내놓고 자식이 세상으로 나갈 때까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 못할 바엔 자식을 세상에 내놓으면 안 되는 게 아닌가? 자식을 책임질 수 없다면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라도 해야 하지 않는가? 제아무리 영화적 장치였다고 하지만 그런 식으로 딸들을 버리고 집을 나와 버린 행위 자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게끔 하는 힘이 이 영화에 있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아무리 소설과 영화 등의 콘텐츠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한편 삶을 적확하게 구현해 내는 가장 적절한 방식이기도 하지만, 가끔 '소설은 소설일 뿐,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로스트 도터>는 영화일 뿐이기도 하거니와 영화이기에 이런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풀어 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엄마라면 누구나 레다와 같은 생각을 했을 테고 욕망했을 테며 행동에 옮기고 싶어 했을 테니 말이다. 

 

이런 작품은 작품 자체가 같은 함의가 크다. 캐릭터의 표정, 행동, 생각, 말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고 나아가 영화의 거의 모든 것에도 철저하게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영화이지만 의외로 일차원적이라 있는 그대로의 텍스트만 읽어 내면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을 없을 것이다. 또 하나의 베스트 여성 영화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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