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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아름다움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니?" <베르네 부인의 장미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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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베르네 부인의 장미정원>

 

영화 <베르네 부인의 장미정원> 포스터. ⓒ찬란

 

에브 베르네는 아버지 작고 후 15년 간 장미정원을 운영하는 원예사이다. 명성과 실력은 프랑스 최고의 속하지만, 날이 갈수록 장미가 팔리지 않아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돈이 없어서 직원을 늘릴 수도 없고 장미 콩쿠르에선 제대로 된 부스도 차릴 수 없다. 여러 모로 힘든 와중에도 장미를 향한 관심과 사랑은 변치 않은 베르네 부인이다. 

 

그녀에게 업계의 대기업 라마르젤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데,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소규모 정원들을 사들이며 온갖 희귀 장미 품종들을 독점해 장미 콩쿠르에서 8년 연속으로 황금장미상을 거머쥐었다. 그녀에게도 어김없이 유혹의 손길을 던지지만 아직까지는 버티고 있다. 그렇게 망해 가는 게 확실한 정원을 위해 하나뿐인 직원 베라가 아이디어를 내 신규 직원들을 채용한다. 보호관찰 중인 이들을 저비용으로 고용하는 것이었다. 

 

경력은커녕 관련 지식도 없는 신입 3명을 얼떨결에 뽑았지만 사고나 안 치면 다행,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신입들과 함께한다고 장미가 더 팔리는 것도 아니기에 직원들 월급까지 맞춰 주려니 정원 운영이 더 힘들어진다. 그래도 언제나 희망은 있는 법, 다가올 장미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베르네 장미정원과 함께하는 일원들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아름다운 꽃'

 

<베르네 부인의 장미정원>은 프랑스에서 건너온 영화로, 프랑스 영화 특유의 겉멋이 쏙 빠진 단백한 코미디 드라마 영화다. 감독과 타 주연 배우들은 잘 모르는 게 당연한 바, 에브 베르네 역의 '카트린 프로'가 형형하게 빛난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1970년대부터 연기 생활을 한 프랑스 국민 여배우로 주로 프랑스 국내에서 활동을 해 국제적으론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진 않다. 이자벨 위페르, 카트린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마리옹 꼬띠아르 등이 국제적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국민 여배우들이다. 

 

제목의 원제와 영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한국어 제목은 '베르네 부인의 장미정원'이라는 평범하지만 직관적인 느낌을 취했다면, 원제는 '아름다운 꽃'이라는 뜻의 'La Fine Fleur'이고 영제는 '원예사'라는 뜻의 'The Rose Maker'이다. 원제가 이 영화를 가장 잘 표현해 냈다면 한국어 제목은 그나마 영화를 보고 싶게 한다. 

 

영화 스토리의 기본 골자는 평범하다 못해 식상한 수준이다. 대기업의 횡포에 못 이겨 무너져 가는 회사, 실력과 명성은 있기에 제 값 주고 회사를 넘길 수 있지만 자부심 또는 고집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경영자, 얼떨결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는 와중에 깨달음을 얻고 해피엔딩. 하지만 이 영화가 만듦새보다 훨씬 괜찮아 보이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장미의 재배 과정, 인간의 성장 과정

 

베르네 부인은 극중 신입들한테 가르쳐 주는 듯 극 밖의 관객들에게 보여 주는 듯 장미의 재배 과정을 상세하고 섬세하게 행한다. 장미들의 '결혼'이라고 표현한 접붙이기, 꽃가루를 받아 씨앗을 만드는 종묘, 씨를 뿌려 기르는 파종 등 하나하나 설명을 깃들여 직접 보여 주는 것이다. 어떤 꽃을 피울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어떤 꽃이든 '아름다울 것'이기에 최선을 다해 보살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세 명의 보호관찰 신입 중 하나인 프레드는 14살 때 엄마한테 버림받은 후 범죄의 길로 접어들어 지금까지 어영부영 살아왔다. 그에게 후각의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베르네는, 프레드 역시 어떻게 자랄지 모르지만 어떻게 자라든 '아름다울 것'이기에 최선을 다해 보살펴야 할 대상임을 인지한 듯 그에게 조향사의 길을 추천한다. 

 

꽃이든 인간이든, 인간이든 꽃이든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비단 프레드뿐만 아니라 다른 두 보호관찰 신입 또한 장미정원에 와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꽃 피우고 있는 것일 테다. '아름다운 꽃'이라는 뜻의 원제 'La Fine Fleur'가 주는 자못 깊은 의미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이 영화가 하찮은 스토리와 구성을 뒤로 하고 한없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다. 

 

"아름다움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니?"

 

극중 베르네 부인이 프레드에게 말한다. "아름다움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니?"라고 말이다. 당연히 맞는 말 같으면서도 틀린 말이기도 한 것이, 누군가한테는 아름다움 없는 삶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 덕분에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책 제목이기도 한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유명한 문구와 이어지는 맥락이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스며든 말이기도 한 것 같다. 

 

여기서 빵을 '물질'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면 아름다움은 '영혼'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을 테다. 그렇다면 극중에서 대기업 라마르젤이 돈을 한보따리 싸들고 와도 베르네 부인은 절대 회사를 아니 자신을 팔아넘기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영혼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물론 그녀 하나만 믿고 일하는 직원들을 책임져야 할 의무도 그녀한테 있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될 테지만 말이다. 

 

'영혼' 하니까 2022년 상반기를 강타한 에버랜드의 '소울리스좌'가 떠오르는데, 그녀는 그리고 그녀를 포함한 수많은 2030 소울리스좌들은 역설적으로 스스로(영혼)를 지키고자 일터에서는 영혼 없이 즉, 스스로를 감추고 일에 임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른 모든 걸 지킬 수 없다고 해도 최후엔 나를 지킬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