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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연쇄살인마와 기이하게 얽힌 반전의 향연!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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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실종>

 

영화 <실종> 포스터. ⓒ디스테이션

 

중학교 3학년생 카에데는 탁구장을 했다가 망해서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아빠 사토시와 단둘이 살고 있다. 아빠가 철이 덜 들었는지 어디가 모자란 건지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걸려서는 카에데가 수습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사토시는 300만 엔의 현상금이 걸린 연쇄살인마 야마우치 테루미를 본 것 같다며 신고해서 포상금을 타면 좋겠다고 말한다. 

 

다음 날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거짓말처럼 사라진 사토시, 카에데로선 황당하기 이를 데 없지만 아빠를 찾아야 한다. 사토시는 테루미를 잡으러 간 걸까. 선생님, 친구와 함께 이곳저곳을 수소문하던 중 아빠가 일하는 일용직 사무실도 찾아가는데 현장에 아빠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젊은 남자와 조우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다름 아닌 연쇄살인마 야마우치 테루미였다. 

 

다음 날 아빠의 탁구장에서 자고 있던 테루미를 발견하곤 쫓는 카에데, 그에게서 뺏은 바지에 아빠의 핸드폰과 카린 섬으로 가는 배 승차권이 있었다. 카에데는 테루미가 아빠를 납치했다고 확신하곤 카린 섬으로 향한다. 카에데는 그곳에서 사토시를 발견할 수 있을까? 사토시는 테루미를 잡으러 나갔던 걸까? 테루미는 사토시를 죽였을까? 이런저런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다. 

 

봉준호의 조연출 출신 감독 작품

 

격세지감이다. 꽤 오래된 일이지만, 과거 일본 영화가 국제 평단에서 최상단의 위치에 군림했을 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화인들이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이후엔 한국 영화들이 두루두루 전 세계적인 호평을 받고 흥행의 한 축도 담당하면서, 오히려 일본 영화계가 우리나라와의 연관성을 높이고자 하는 모양새다. 

 

일례로 현존 최고의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한국 자본으로 한국 배우들과 함께 한국에서 <브로커>를 촬영했고,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잇는 적통 하마구치 류스케의 경우 2010년에 도쿄예술대학 영상대학원 졸업 작품으로 <심도>를 찍을 때 한국영화아카데미와 한일합작으로 진행했다. 영화 <실종>의 감독 가타야마 신조의 경우 한국 영화계의 대들보 봉준호 감독과 인연이 깊은데 <마더>의 조연출 출신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그를 수식할 때 가장 앞에 붙는 게 '봉준호 감독의 조연출 출신'이다.

 

영화 <실종>은 '연쇄살인마와 조우한 아빠가 사라지고 아빠의 이름을 한 연쇄살인마가 나타났다'는 흥미진진한 한 문장으로 주의를 끈다. 하지만 이 문장은 영화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촘촘하게 짜여진 이야기를 감상하고 있노라면 생각지도 못한 반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반전이 전부가 아닌 것이 가끔 예측하기 힘든 곳으로 튕기는 탁구공처럼 이야기가 튕겨 버리니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반전을 위한 반전이 아니고 이야기 밖으로 튕겨 버리지도 않기에 영화에 온전히 집중하며 즐길 수 있을 테다.

 

카에데의 시선, 테루미의 시선, 사토시의 시선

 

주지한 영화의 줄거리는 정확히 1/3에 해당한다. 더불어, 이 영화의 구성이 카에데와 테루미와 사토시 세 명의 시선으로 나뉘어 있는 만큼 1/3이라고 해도 큰 의미를 지니지 않을 수 있다. 나머지 2/3을 끝까지, 즉 영화를 끝까지 봐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으면 영화를 아예 안 본 거나 마찬가지란 얘기다. 예측하기 힘든 반전과 이리저리 튕기는 스토리 라인이 전체 이야기 안에서 완벽하게 얼키고설키기 때문이다. 

 

카에데의 시선, 테루미의 시선, 사토시의 시선 모두 확고하게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래서 그들은 따로 또 같이 그때 그 장소에서 그렇게 조우했구나 하고 퍼즐 맞추듯 희열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초반엔 카에데와 테루미, 중반엔 테루미와 사토시, 그리고 종반엔 카에데와 사토시가 긴밀하게 조우하며 시종일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카에데의 성장 이야기로도 읽히는데, 엄마가 없는 상황에서 아빠의 뒤치다꺼리를 해 주는 것도 모자라 갑자기 사라진 아빠의 뒤를 쫓아가선 믿기 힘든 아픈 진실까지 받아들이는 카에데의 모습이 사뭇 어른이 되어 가는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알아야 할 걸 알게 되면서 동시에 알지 않았으면 하는 걸 알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일본 사회의 어두운 단면

 

봉준호 감독의 스타일이 다분히 묻어나는 부분이 있다면, '웃픔'에 가까운 '유머'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긴장으로 한없이 쪼여지기만 하는 감정이 일순간 풀어진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전혀 잔인하지 않을 것 같은 장면에서 날것의 잔인함이 훅 하고 들어와 헉 하고 숨이 막히기도 한다. 신인 감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을 만큼, 틈 하나 없는 이야기에 완급 조절까지 자유자재로 하니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이 영화는 일본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 역시 봉준호 감독의 스타일에 기댄 면이 없지 않아 있는 바, 일본에서는 하룻밤 사이에 집과 직장 그리고 가족을 떠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자발적 실종자'가 늘어나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증발'이라고 하는데, 영화 <실종>의 시작을 알리는 사토시의 증발 또는 실종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영화의 원제는 'さがす'로 '찾다'의 의미를 갖는데, 사에데가 혹시나 아빠를 찾았을 때 함께 찾아지는 진실의 무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극중에서 자살하고 싶어 하는 이들을 도와준다는 명목 하에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의 경우와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사토시의 아내가 사토시에게 차라리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해서 은연중에 접근한 연쇄살인마에게 아내의 목숨을 맡긴 사토시의 경우를 비춰 일본의 오래된 사회 문제인 '타인에 의한 자살'과 '간병 살인'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스토리, 반전, 완급 조절을 겸비한 연출력에 자못 심각한 사회 문제들을 가져와 장르적으로 소화해 버리기까지 하니 이 영화 감독 그리고 각본까지 쓴 '가타야마 신조'의 이름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앞으로 자주 보일 이름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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