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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학교에 내던져진 아이들의 이야기 <플레이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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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플레이그라운드>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포스터. ⓒ해피송

 

일곱 살 노라는 막 입학한 낯선 학교가 두렵기만 하다. 입학 첫날 아빠의 손을 떼기가 무섭고, 오빠 아벨이 함께 입학해 종종 볼 수 있다고 해도 울음이 멈추지 않는다. 선생님이 돌아가며 이름을 말해 보라고 해도 잘 대답하지 않는다. 체조, 수영 등 체육 시간도 무섭다. 점심 때는 오빠한테 가서 밥을 같이 먹으려고도 한다. 그녀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라는 것이다.

어느새 학교에서 웃고 있는 노라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가는 모양새다. 그런데 오빠를 보러 가니 누군가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처음엔 선생님이 와서 말렸고 두 번째엔 선생님한테 가서 말했더니 와서 말렸다. 그런데 세 번째엔 선생님한테 가서 말해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괴롭힘이 끝나고 아벨은 동생에게 당부한다. 선생님, 아빠를 막론하고 어른들한테 절대 말하지 말라고 말이다.

하지만 아벨을 향한 괴롭힘은 점점 심해진다. 결국 노라는 아빠에게 말하고 선생님에게도 말하고 만다. 상황이 더 좋아지길 바라고 한 행동이었으나, 상황이 더 악화될 뿐이다. 아벨은 외톨이가 된 것도 모자라 놀림을 받고 노라는 아벨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다. 아빠는 학교에 찾아오질 않나 노라를 잘 보살펴 준 선생님은 떠나고 급기야 아벨은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 노라는 과연 학교 생활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학교라는 거대한 사회의 아이들

 

학창 시절을 생각해 보면 마냥 즐겁거나 설레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힘들거나 축 쳐지지만도 않았다. 희노애락이 다 녹아 들었던 것 같다. 그런 가운데 학년이 올라 가거나 학교가 바뀔 때면 움츠러들고 혼란스럽고 모든 게 두렵기만 했는데, 다가올 변화의 양상이 어떨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영화 <플레이그라운드>는 학교라는 거대한 사회 안에 내던져진 덜 성숙한 아이들의 성장 이야기를 다룬다. 비록 학교라는 공간이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의 보호 아래 최대한 견고하게 다뤄지며 아이들은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학원에서 또 다른 기관에서 다양하게 수양을 받으니 만큼, 학교 생활이 생각보다 수월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학교 생활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거나 별 거 아닌 듯 크게 마듬에 두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학생)에게 학교는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친다.

그건 학교라는 곳이 단순히 교실뿐만 아니라 운동장, 식당, 복도, 놀이터, 공터, 화장실, 탈의실, 수영장 등의 공간들을 아우르고 있기에, 가히 하나의 '세계'라고 불릴 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영어 제목이 'PLAYGROUND'인 한편 벨기에 원제는 '세계' '세상' 등을 뜻하는 'UN MONDE'인 이유다. 하여,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결코 가볍게 보지 않아야 하고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노라의 극적인 변화와 성장

 

영화는 철저히 주인공 노라를 비춘다. 어느 정도냐 하면, 아빠나 선생님 같은 어른과 함께 있을 때도 카메라의 높이를 낮춰 노라를 비추고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도 친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은 채 목소리만 들리는 식이다. 그것도 멀찌감치 떨어져 가만히 비추는 게 아니라 상당히 클로즈업을 한 상태로 끊임없이 노라를 따라 다닌다. 그러다 보니 노라의 조그마한 변화도 눈치챌 수 있다.

카메라에 주인공만 오롯이 담는 건 상당한 모험이지만 제대로만 담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방식도 없을 것이다. 특히 이 영화처럼 주인공의 변화 양상과 차츰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자 했을 때 더 빛이 난다. 노라는 처음엔 학교를 극도로 두려워하며 아빠는 물론 오빠에게 기댔지만 학교 생활에 적응해 가며 본인이 아닌 오빠의 일에 깊게 관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극적인 변화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라는 말,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 친구랑 다툴 수도 있다는 말 등 어릴 때 참 많이 들었다. 물론 누군가한테 말하기도 했을 테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또 당사자가 되어 보면 그토록 무섭고 잔인하고 무책임한 말이 없다. 친구가 전부인 시절엔 친궁에 관한 그 어떤 말도 엄청 크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극중 노라, 특히 아벨에겐 그 말들이 어떻게 들렸을까.

 

다르덴 형제라는 레퍼런스

 

화 <플레이그라운드>는 벨기에에서 건너왔다. 벨기에 영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이름, 다르덴 형제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텐데 실제로 촬영 당시 많은 조언을 얻은 건 물론 엔딩 크레딧에서 '뤽 다르덴'의 이름을 볼 수 있다. 또한 감독 로라 완델이 직접 밝혔듯, 그녀의 연출에 다르덴 형제가 명확한 레퍼런스였다고 한다.

다르덴 형제의 특징이라고 하면, 불안정한 상태의 사람들이 등장하고 카메라는 집요하리만치 그들을 쫓는다. 또한 영화적인 느낌이 아닌 다큐멘터리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 영화의 특징과 거의 유사한 바, 노라와 아벨에겐 엄마가 없는 듯하고 아빠는 실업자이기에 매우 불안정한 상태다. 카메라는 노라를 집요하게 쫓는다. 그런가 하면 전체적인 느낌상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우린 비단 학창 시절 때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 가면서 그때그때 운동장에 내던져진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무방비로 발을 디디는 것이다. 그때마다 맞딱뜨리는 환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받아들여야 하는가. 쉽지 않은 과제다, 쉽게 풀 수 없는 숙제 같기도 하다. 날것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보여 주려 한 이 영화의 문법 덕분에 생각할 여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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