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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안드로이드 양이 떠난 후 남겨진 인간들의 애처로움 <애프터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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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애프터 양>

 

영화 <애프터 양> 포스터. ⓒ(주)왓챠

 

여기 네 명으로 이뤄진 가족이 있다. 차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제이크, 회사 중역으로 바쁘게 일하는 키라, 입양한 딸 미카, 그리고 안드로이드 양. 백인과 흑인이 만나 중국계 딸을 입양하곤 딸에게 중국 문화와 언어를 알려주고자 중국인 안드로이드 양을 사온 것이다. 미카는 양을 친오빠처럼 따랐고 제이크와 키라로선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양이 돌연 작동을 멈춘다. 양이 그렇게 되자 미카는 학교도 가지 않는다고 떼를 쓴다. 그만큼 충격을 받은 것이리라. 제이크와 키라는 양을 고치기 위해 이곳저곳을 수소문한다. 하지만 코어가 고장나 다시는 기동을 할 수 없다는 말만 들을 뿐이다. 그러던 중 수리공 러스를 통해 누군가를 소개받는다. 사실상 양을 고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일 곳이었다. 

 

제이크는 기술 박물관이라는 곳에 간다. 처음엔 매몰차게 대하다가 양의 안에서 발견한 뭔가를 보여주자 관심을 보인다. 그걸 두고 러스는 사생활 침해의 위험이 있는 스파이웨어라고 말하지만, 기술 박물관 측에서는 양의 기억이 저장되어 있는 메모리 뱅크라고 말한다. 그러곤 제이크에게 양의 메모리를 한 번 살펴보고 테크노사피엔스 연구에 꼭 필요한 양과 메모리를 박물관에 넘길지 말지 선택하라고 한다. 제이크는 집으로 돌아가 양의 메모리를 살펴보는데... 거기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코고나다 감독의 연출력

 

올해 상반기 전 세계를 휩쓴 콘텐츠들 중에서 <파친코>는 특별했다. 순수하게 외국 자본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총 8화 중에 1, 2, 3, 7회를 코고나다 감독이 맡았고 4, 5, 6, 8회를 저스틴 전 감독이 맡았다. 그중 코고나다 감독이 유독 눈에 띄었는데, 바로 이 작품 <애프터 양> 덕분이다. 

 

영화 <애프터 양>은 알렉산더 와인스타인의 단편소설 <Saying Goodbye to Yang>을 원작으로 안드로이드 '양'의 기억으로 인간 성찰과 정체성 탐구를 견지하고 가족과 상실의 화두를 던진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살아온 코고나다 감독 자신의 이야기, 생활, 생각, 고민, 관심사항 등이 압축적으로 들어 있는 듯하다. 

 

코고나다 감독은 2017년 <콜럼버스>로 장편 영화 데뷔를 훌륭하게 치르기 전에 유명 감독들의 비디오 에세이를 제작하고 영화 잡지에 소속되어 비평 활동을 활발하게 했는데, 연출을 함에 있어 그동안의 경험과 보통 연출자에겐 없는 능력을 한껏 살려 다분히 '영화적인' 연출력과 영상미를 자랑한다. 영화 감독 아닌 아티스트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가족 그리고 정체성

 

<애프터 양>은 제목 그대로 안드로이드 양이 떠난 후가 주된 배경이자 주된 스토리다. 로봇과 인간 사이의 성찰을 다루는 SF영화를 보면 로봇이 주인공이자 주체인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다르다. 제이크가 양의 기억을 더듬으며 양이 바라본 제이크, 키라, 미카의 모습을 바라본다. 거기엔 정작 양의 모습은 없지만 덕분에 점점 멀어지고 있었던 세 가족의 단란하고 행복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제이크로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너무도 당연하게 항상 곁에 있던 양이 보이지 않으니 이상하다. 본명 세 가족은 행복해 보이는데 뭔가 허전하다. 양이라는 '안드로이드'가 아닌 '가족'의 일원인 양이 보이지 않기에 이상하고 허전하게 생각된 것이리라. 그렇다, 그가 인간이든 로봇이든 신경 쓰지 않고 그는 이미 가족이다. 영화는 영리하게 또는 노골적으로 안드로이드 양을 구입하기 전에 백인 아빠이자 남편, 흑인 엄마이자 아내, 중국계 딸이라는 가족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코고나다 감독도 양 역의 저스틴 H. 민도 한국계 미국인인 바 영화에서 최소한 양을 한국인으로 바꾸거나 양을 연기한 배우를 중국계로 캐스팅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다분히 일부러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서양인을 대할 때 뭉뚱그려 대략적으로 분류하지 세세하게 나누지 않는 것처럼 서양에서 동양인을 대할 때도 비슷할 것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터, 중국계든 한국계든 일본계든 별 관심 없이 하나로 뭉뚱그려 보는 시선을 대변한 게 아닌가 싶다. 

 

인간과 로봇

 

양은 본래 미카에게 중국의 문화와 언어를 알려주고자 하는 취지로 사온 중고 안드로이드였을 테고,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 지금으로선 놔두면 부식되는 만큼 언제까지고 가지고 있을 수만은 없는 쓸모없는 유기체에 불과하다. 그런 양에게 있는 메모리 뱅크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고 특별하며 절대적이기까지 하다. 양이라는 안드로이드의 정체성, 로봇과 인간을 가르는 성질, 상실의 대상을 향한 기억의 의미를 아우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내가 나일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단연 '생각'이지 않을까. 감정, 기억, 상실 등도 모두 생각에서 파생되었을 테다. 물론 연구를 통해 동물은 물론 식물도 감정이 있고 기억도 하며 상실의 의미를 알고 있다고 하지만, 인간만의 특성을 거기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양의 특별한 기억은 곧 양 그 자체도 특별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하겠다. 나아가 그런 양의 상실을 두고 제이크, 키라, 미카가 따로 또 같이 기억하는 걸 보면 양'이' 기억하는 행위와 양'을' 기억하는 행위의 인간성이 엿보인다. 

 

인간과 로봇이 공존할 날이 머지 않았다. 새로운 윤리가 생길 것이고 로봇에게도 새로운 권리가 주어질지 모른다. 결코 인간이 될 순 없겠지만 인간과 버금가는 또는 다름없는 아니, 어떤 면에서는 넘어서는 대우를 받을 것이다. 그때를 대비하라는 말 따위를 하려는 게 아니다.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인간이 언제까지 만물의 영장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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