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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무엇이 그녀를 화나게 만들었는가 <불도저에 탄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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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불도저에 탄 소녀>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 포스터. ⓒ리틀빅픽쳐스

 

19살의 작은 소녀 혜영은 왼쪽 팔을 가득 채운 용 문신을 팔토시로 가린 채 신경질난 얼굴로 욕설을 퍼붓고 다닌다. '다수의 폭력에서 약자를 보호하고자' 폭력을 행해 나름 억울하게 법정에 서기도 했지만 '정도는 미약하나 폭행을 계속'하니 그녀의 성향을 알 만하다. 혜영에겐 중국집을 운영하는 아빠 본진과 어린 남동생 혜적이 있는데, 본진과는 도무지 부녀지간으론 보이지 않는 관계이고 혜적과는 여타 남매지간보다 훨씬 애틋함이 묻어난다. 

 

그러던 어느 날, 본진이 중국집에서 요리 도중 화상을 입더니 보험 3개를 한 번에 갱신하고 다음 날 사고를 쳐 병원에 실려간다. 남의 차를 훔쳐 타 인적 드문 곳에서 누군가를 들이박았다는 것이었다. 그 사이 경찰에게서 본진이 폭력을 휘둘렀다는 말도 들었다. 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이 계속 본진을 찾기 시작하고 곧 중국집으로 누군가가 찾아오더니 중국집이 넘어 가게 되었다고 한다. 

 

혜영은 혜적과 함께 따로 나가서 살 집을 마련하고자 알바를 하면서 중장비 직업 훈련도 받는다. 그러던 중 본진이 뇌사에 빠져 죽음이 멀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황당하고 믿을 수 없는 일들에 맞딱뜨린 혜영은 아빠의 사고 현장을 찾아간 후 사고 피해자, 경찰, '한국중장비' 최영환 회장을 차례로 찾아간다. 혜영은 아빠 본진의 사고를 둘러싼 진실에 한 발짝씩 다가서고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거침없는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하는데...

 

막돼먹은 세상을 향한 폭력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는 막돼먹은 세상을 향해 앞뒤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어느 소녀의 이야기다. 제목에서부터 묻어 나는 무모한 돌진성이 시종일관 영화를 지배하는데, 여타 사회 고발 영화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스토리 라인과 결코 탄탄하다고 할 순 없는 성긴 구성이 조금 아쉬울 수 있으나 절망에 파묻히지 않고 절박하고 거칠게 대항하는 모습이 자못 와닿는다. 

 

이 날것의 영화를 오롯이 끌고 가는 건 작고 마른 소녀 혜영인 바, 드라마 <SKY 캐슬>의 히로인 중 하나인 '강예서' 역의 김혜윤 배우가 맡았다. 세상 곳곳에서 온갖 불혐화음으로 그녀를 화나게 하는 것들에 맞서 열정적으로 분노를 발산하는 모습이 단단하고 묵직하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모습에 혀를 차면서도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엔 분명 부조리한 것들과 불합리한 것들과 정녕 화나게 하는 것들이 판을 친다. 그런 세상을 목도하고 누군가는 세상 탓을 할 테고 누군가는 체념을 할 테며 누군가는 아예 고개를 돌려 버린 채 못 본 채 할 테다. 그런 와중에 세상으로 돌진해 세상에 들이박아 버리는 이도 있다. <불도저에 탄 소녀>는 그런 논외 존재의 합리적 존재성을 우리 앞에 불러 세워 보여 준다. 

 

왜 그녀는 불도저에 탈 수밖에 없었을까?

 

우선 '왜 그녀는 불도저에 탈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제목에서 기인하는 스토리성에 마음이 쏠릴 수밖에 없다. 혜영이 아빠 본진에게 하는 행동과 말만 봐도 본진이 그동안 해 온 '짓거리'를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얼핏 보면 중국집을 운영하며 열심히 살아온 것 같지만, 두 아이들 혜영과 혜적을 내놓은 자식처럼 방치해 온 게 틀림없다. 그러니 아직 20살도 되지 않은 혜영이 혜적의 누나이자 엄마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가정에서부터 이럴진대 세상 천지가 그들(그녀와 그녀의 동생)에게 행하는 짓거리는 훨씬 더 할 것이다. 혜영으로선 세상이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용 문신으로나마 조금이라도 보호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모자라 험악한 표정, 반말, 욕설, 폭력 등으로 뭐라도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녀가 더 날뛰면 날뛸수록 '제발 좀 날 건드리지 마'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녀는 결코 강한 존재가 아니라 누구보다 약하디 약한 존재, 세상이 그녀를 보호해 주지 않기에 그녀가 스스로를 보호해 줘야 한다. 

 

영화 중반부 즈음부터 혜영이 직접 이리저리 발로 뛰며 드러나는 본진의 사고 진실이 흥미롭다. 강자와 약자, 가해자와 피해자, 거짓과 진실이 얽히고설킨 일련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서스펜스를 동반한 미스터리 스릴러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투박하고 거칠기 이를 데 없는 와중에 생각 외로 자못 흥미진진했다는 말이다. 

 

사회 고발의 측면에서

 

그런가 하면, 영화는 '왜 그녀는 불도저에 탈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사회 고발의 측면에서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세상은 왜 그렇게 숨기는 게 많은지, 왜 그렇게 서로를 속고 속이는지, 왜 그렇게 누가 누군가를 무시하고 얕잡아 보는지, 왜 그렇게 못 살게 굴고 화나게 만드는지. 강자가 약자를 일방적으로, 교묘하게 그리고 절대 빠져 나가지 못하게 굴레의 구렁텅이에 처넣는 것만이 사회 고발의 대상이 아니다. 하찮아 보이지만 거의 모든 사람에게 내재되어 있고 또 표출되기도 한 많은 것이 사회 고발의 대상이다. 

 

혜영이 제목 그대로 불도저에 타 누군가를 해하려 하거나 해하거나 뭔가를 부셔버린다면, 원인이야 어떻든 결과론적으로 그녀에게 '괴물'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그렇게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짚고 넘어갈 건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녀 혜영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갖가지 무기를 지닌 채 항상 화나 있게 말이다. 세상이라는 반석 위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 정도밖에 없다. 그래서 투박하고 거칠고 날것이며 성기다. 영화의 만듦새가 성긴 이유가 주인공 혜영의 상황을 반영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면, 영화를 보는 시선과 영화를 대하는 관점과 영화를 평하는 말이 달라질까. 혜영같은 이를 보는 세상의 눈과 이 영화를 보는 세상의 눈이 다르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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