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작 열전/신작 영화

그때 그 시절의 정치 낭만을 되살려 보여 주는 이유 <킹메이커>

반응형

 

[신작 영화 리뷰] <킹메이커>

 

영화 &amp;lt;킹메이커&amp;gt; 포스터.&amp;nbsp;ⓒ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1961년 강원도 인제, 국회의원 뱃지를 다는 데 몇 차례나 실패한 정치인 김운범 앞에 자칭 선거 전략가 서창대가 찾아온다. 실상 그는 이북 출신으로 잠깐 약방을 맡아 운영하고 있는 낯선 사람이었다. 똥 묻은 놈들하고 싸워 이기려면 똥 안 묻을 수가 없다며,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목적을 향해 가야 한다고 설파하는 서창대 앞에 김운범은 정치는 장사가 아니라고 칼같이 대답한다. 그럼에도 김운범은 서창대를 받아들인다. 서창대의 힘이 크게 작용한 듯 재선에 성공한 김운범이다.

 

재선을 목포에서 달성한 김운범은 3선도 목포에서 달성하고자 한다. 하지만, 박기수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엎은 공화당 김병찬의 위세가 등등하다. 그때 김운범 앞에 다시 나타난 서창대, 그동안 그는 운신 상태나 마찬가지였는데 김운범이 그의 방식을 그리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서였다. 서창대는 김운범 캠프 내부를 단결시킨 후 특유의 마타도어 전략을 개시한다. 그가 주로 한 '짓'은 공화당으로 둔갑해 유권자들한테 교묘히 못된 짓을 하는 것이었다. 이 전략은 잘 먹혀 들어갔다. 

 

여전히 신민당 내 비주류이자 핵심은 아니었던 김운범에게 당내 젊은 실세들인 김영호 의원과 이한상 의원이 접근한다. 이른바 '40대 기수론'을 앞세워 3명이 연대해 눈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바람을 일으키자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김운범은 김영호와 이한상의 들러리 역할을 할 게 뻔했다. 그럼에도 다시 없을 절호의 기회인 건 맞았으니, 김운범 그리고 서창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그들은 다시 한 번 함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을까?

 

김대중, 그리고 엄창록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80년이 채 되지 않은 정치 역사에서 '김대중'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1954년 국회의원 선거(낙선)로 정치계에 첫발을 뗀 그는 세 차례 실패한 후 네 번째에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고, 1971년 대통령 선거(낙선)로 대통령의 꿈을 꾸기 시작했지만 역시 세 차례 실패한 후 네 번째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던 고비를 수차례 겪었던 그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던 IMF 외환위기의 한국을 기사회생시키기도 했다. 

 

영화 <킹메이커>는 김대중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1961년부터 1971년까지의 정치 인생을 모티브로 삼았다. 하지만, 제목을 들여다보면 김대중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없는 것이 그때 그의 뒤에서 그림자처럼 암약하며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했던 '엄창록'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듯하다. 마타도어(흑색선전)의 귀재이자 선거판의 여우로 불렸던 그 말이다. 

 

한국 역사를 들여다보면 정도전이나 한명회 같은 킹메이커가 눈에 띄고, 현대사를 들여다보면 김윤환이나 이해찬 같은 킹메이커가 눈에 띈다. 그야말로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만한 양지의 킹메이커들이다. 하지만, 엄창록의 경우 누구도 알기 힘든 음지의 킹메이커였다. 그의 수단이 우선하는 방식은 김대중의 목적이 우선하는 방식과 정반대에 있었기 때문이리라. 언제 어디서 누가 정치를 하고 선거를 치르든 숙고하지 않을 수 없는 대립이다. 

 

이상과 목적, 현실과 수단

 

김대중과 엄창록이 아닌, 영화 속 김운범과 서창대의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춰 보자. 김운범은 화려하면서도 진심이 묻어나는 언변과 혁신적인 정책, 믿음직한 카리스마를 앞세워 바람을 일으키지만 공화당을 이기기엔 결코 쉽지 않다. 그의 방식은 올바르고 이상적이지만, 그가 상대하는 공화당의 다분히 현실적인 방식을 당해 낼 순 없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유권자를 진흙탕으로 끌어와 진흙을 묻히고 있는데, 김운범으로선 진흙탕에 들어갈 수 없으니 말이다. 

 

반면, 서창대는 김운범이 이기는 유일한 길은 공화당이 만들어 놓은 진흙탕에 같이 들어가는 것이라고 주창한다. 그 과정을 서창대 자신이 김운범이라는 이름으로 오롯이 감당할 테니, 김운범은 그 이후 세상을 올바르게 바꾸는 이상을 펼치면 될 터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합작의 모습인가.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조화' '수단과 목적의 균형'이라는 이상은 이상적일 뿐 완벽할 수 없나 보다. 

 

김운범은 서창대의 도움을 받아 세상을 바꾸는 길을 닦고 서창대는 김운범을 통해 세상이 바뀌는 걸 보고 싶다. 그들은 방향이 정확히 같다. 하지만 가는 길이 다르다, 김운범은 양지 바른 길로만 가고 싶고 또 가야 하는 반면 서창대는 빛이 있는 목적지에 이르고자 음지 어린 길로 가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정치적 낭만을 위하여

 

현대 정치사를 들여다보면, 독재가 횡행하던 1960~70년대 그때 그 시절이 지금보다 훨씬 더 무섭고 살벌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문인지 정치적 낭만이 살아 있었다. 영화 속 김운범이야말로 정치적 낭만의 살아 있는 화신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정치의 목적이 표를 버는 것'이라는 명제가 당연한 듯 마타도어가 횡행한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가짜뉴스가 유권자들 혼을 빼놓지 않는가. 

 

그렇게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된 가운데, 사람다운 세상이 되게끔하는 데 티끌만 한 도움이라도 될 정책 공약은 사라지고 상대를 향한 막무가내 비방만 오갈 뿐이다. <킹메이커> 속의 김운범과 서창대의 대립이 무색하게, 누가 덜 더럽고 덜 뒤가 구리고 덜 비호감인가 하는 대결 양상이다. 김운범과 서창대의 대립이 단순히 정치 역학 또는 정치 공학을 넘어 '인간이라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하는 고차원적 물음에까지 닿을 수 있는 반면, 현실 속 대립은 일차원적이기 짝이 없다. 한 나라를 이끌 국회의원, 그리고 대통령을 뽑는 데 말이다. 

 

영화는 질문을 던지고 나름의 답도 도출해 냈다. '정치인이라면 세상에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가?'라는 질문, '정치인이라면 세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라는 답. 비록 이 영화가 답을 도출해 내는 방법론에 관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지 나름의 확고한 답을 도출해 내진 않았지만, 지금 우리나라 정치 현실을 보면 방법론부터 다시 고민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하여, 이 영화의 방향이 맞는 것 같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