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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탐욕으로 파멸한, 죽여서라도 갖고 싶었던 구찌 <하우스 오브 구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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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하우스 오브 구찌>

 

영화 &lt;하우스 오브 구찌&gt; 포스터.&nbsp;ⓒUPI 코리아

 

리들리 스콧, 영국 출신의 명실공히 영화계 역사에 뚜렷이 남을 세계적인 대감독이다. 1977년 첫 장편 연출 데뷔 후 <에일리언> <블레이드 러너> <델마와 루이스> <글레디에이터> <블랙 호크 다운> <킹덤 오브 헤븐> <마션> 등 40여 년 동안 시대를 대표할 만한 영화들을 꾸준히 내놓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틴 스콜세지,스티븐 스필버그 등과 더불어 2020년대에도 활발히 활동하는 노장 감독이다.

 

하지만 <글레디에이터>로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크게 날아오르고 <마션>으로 더 큰 흥행을 차지한 걸 제외하면, 흥행과 수상 면에서 생각보다 큰 업적을 내놓진 못했다. 종종 그의 네임벨류에 걸맞지 않은 범작과 졸작을 내놓기도 하거니와 그의 작품들이 대체로 2시간을 훌쩍 넘는 긴 러닝타임을 지니고 있다는 단점도 무시할 수 없다. 2021년 하반기에 연달아 찾아온 두 작품도 마찬가지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가> 152분, <하우스 오브 구찌>가 158분이었다. 앞엣것은 흥행 참패를 면치 못했고 뒤엣것은 나름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는 리들리 스콧 감독이 동명의 논픽션을 처음 접하고 20여 년간 준비해 내놓은 작품이다. '구찌 일가'라는 적나라하고 일면 명확한 제목과 '구찌'라는 브랜드에서 어느 순간 구찌 일가가 사라져 버린 역사적 사실과의 역설적 대비가 인상적이다. 그렇다, 이 영화가 그리는 게 바로 구찌 일가가 구찌에서 사라지는 과정이다. 

 

구찌 일가의 짧고 굵은 흥망사

 

1978년 이탈리아 밀라노, 운수회사 사장의 딸 파트리치아 레지아니는 어느 파티에서 우연히 마우리치오 구찌를 만난다. 괜찮은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는 둘, 어느 날 서점에서 필연적으로 다시 만난다. 이후 둘은 급격히 가까워지고 급기야 마우리치오는 아버지 로돌포 구찌에게 파트리치아를 소개한다. 로돌포는 당연한 듯 반대하고 마우리치오는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한다. 대신 구찌 가에서 나오다시피 하곤 파트리치아의 운수회사에 들어간다.

 

한편, 당시 구찌는 로돌포 구찌와 그의 형 알도 구찌가 50 대 50으로 지분을 나눠 갔고 있었는데 알도는 능력 없는 아들 파올로를 못 미더워하고 대신 마우리치오를 우대했다. 하여, 결혼 후 평범하게 살고 있던 마우리치오와 파트리치아 부부를 초대해 환대하기도 한다. 그때부터 파트리치아에게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물론 그녀는 구찌 일가에 편입된 건 맞지만 마치 자신이 구찌인 것처럼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곤 구찌의 경영에까지 참견하려 한다. 

 

마우리치오는 아버지 로돌포가 죽고 난 후 지분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구찌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하는데, 결정적일 때마다 아내 파트리치아가 치고 들어온다. 그는 그녀가 한순간에 변해 버린 모습이 점차 싫어지기 시작한다. 처음엔 사업적으로 선을 넘었다고 생각해 부담스러웠다가 나중엔 인간적으로 실증을 느꼈을 것이다. 결국 별거 후 이혼 수순으로 나아가는데... 마우리치오의 결정에 파트리치아는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고 만다. 

 

죽여서라도 갖고 싶은 이름

 

1995년 3월 27일 이탈리아 밀라노 백주대낮, 마우리치오 구찌는 괴한의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세상을 뜨고 만다. 1993년 바레인의 투자회사 인베스트코프에게 모든 지분을 넘기고 현금을 두둑히 챙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수사 끝에 드러난 정황으로, 충격적이게도 전 부인 파트리치아의 청부 살인이었다. 이탈리아 현대사에서 가장 충격적이라고 일컫는 사건이다. 

 

<하우스 오브 구찌>는 마우리치오 구찌와 파트리치아 레지아니의 운명같은 만남에서 시작해 파트리치아의 청부 살인으로 마우리치오가 죽음을 맞이하며 끝난다. 그 중심엔 단연 파트리치아가 있을 텐데, 평범했던 그녀가 '구찌'라는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명품 이름의 맛을 들이고 난 후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파국으로 치닫는 서사가 영화의 제일선에 위치해 있다. 그녀의 구찌를 향한 욕망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영화 포스터에 나와 있는 한 줄의 카피 '죽여서라도 갖고 싶은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가 하면, 영화는 파트리치아 아닌 구찌 일가의 파렴치한 욕망 즉 탐욕도 잊지 않고 보여 준다. 들여다보면 파트리치아가 욕망을 분출하게 된 것도 구찌 일가의 빙퉁그러진 욕망의 일면을 알아차려서일 수도 있다. 로돌포는 아들에게 지분을 넘긴다는 서명을 하지 않고 죽었고, 파올로는 아버지 알도를 세금 포탈 혐의로 감옥으로 보내고 지분을 취득했으며, 파트리치아는 파올로로 하여금 구찌 저작권 무단 도용 혐의로 지분을 팔게 했다.

 

처절하리만치 가혹한 일가의 내분이 연달아 이어진 것이다. 그때 이미 '구찌'라는 브랜드에서 '구찌 일가'는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사이사이에서 파트리치아가 상당히 결정적인 역할을 이어가지만 말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같다는 말이 있다. 진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기 힘들고 또 누군가가 각본을 짠 것처럼 드라마틱한 전개가 일품인 실화를 두고 하는 말인데, 구찌 일가의 마우리치오 살인 사건이 그렇다. 일가친척들 간의 내분도 충분히 막장스러우나 살인 사건이 방점을 찍는다. 리들리 스콧을 비롯한 영화 제작자들이 가장 많이 고민했을 만한 지점인데,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평범하고 평면적인 연출 스타일인 것 같다.

 

영화는 그야말로 평범했고 매우 평면적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동일한 길이의 신이 계속 이어진다. 하나의 신에는 거의 예외 없이 2~3명만 얘기를 이어갈 뿐이다. 표정과 행동 따윈 하등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더불어 신과 신 사이가 매끄럽게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신들이 유기적을 이어진 시퀀스가 아예 없는 느낌까지 든다. 소설로 보면, 큰 이야기를 이루는 장이나 부 없이 소소한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자못 지루할 수 있는 스토리 라인 가운데 눈에 띄는 것들도 있다. 리들리 스콧은 영화계에 진출하기 전에 광고계의 전설로 불렸을 만큼 비주얼리스트로 정평이 나 있는데, 이 영화에서 그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한다. 1970, 80,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알 듯 모를 듯 변화하는 '구찌 스타일'을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아울러, 역시 알 듯 모를 듯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변하는 파트리치아의 내면을 외면의 변화로 완벽하게 대체해냈다. 적재적소에 빛을 발하는 OST들은 더 말해 무엇하랴.

 

영화는 말한다. '구찌'라는 브랜드가 아닌 '구찌 일가'는 제대로 변화해 내지 못했다고 말이다. '구찌'라는 명망 있는 이름 하나에 모두가 매몰되어 외면만 화려하게 치장해 나갔을 뿐이지 내면을 훌륭하게 가꿔 나가지 못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