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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가족 같은 회사, 완벽해 보이는 보스의 진짜 모습 <굿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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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굿 보스>

 

영화 <굿 보스> 포스터. ⓒ(주)엔케이컨텐츠

 

지방정부에서 수여하는 우수기업상 최종 후보에 오른 '블랑코 스케일즈', 이 좋은 소식을 전 직원 앞에서 공표하는 블랑코 사장. 얼마 후면 심사위원이 회사에 찾아올 텐데, 그때까지 아무 탈 없이 잘 지낼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그때 정리해고로 회사에서 쫓겨난 호세가 아이들을 이끌고 처들어와선 블랑코의 부탁을 무색하게 만든다. 회사에서 꿈쩍하지 않자 그는 곧 회사 정문 앞 공유지에 텐트를 치고 본격 1인 시위에 들어간다. 심사위원이 오기 전에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 

 

한편, 생산팀 총괄 미랄레스가 부쩍 실수가 잦은 것 같다. 아니, 이 정도면 심각한 문제다. 회사에 큰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야말로 블랑코에게 가족 같은 직원이다. 블랑코의 아버지와 미랄레스의 아버지가 함께 이 회사를 세웠기 때문이다. 그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서 문제를 캐 보니 불륜이 얽혀 있었다. 그것도 더블 불륜... 심사위원이 오기 전에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 

 

이번엔 블랑코 본인에게 문제가 들이닥친다. 새로 온 여자 인턴들 중 릴리아나가 유독 눈이 간다. 꼬락서니를 보니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여러 어린 여자 직원과 놀아났던 것 같다. 이번에도 여지 없이 눈이 맞아 하룻밤을 보냈는데, 알고 보니 릴리아나가 동창의 딸이라던가... 근데 릴리아나는 진심인 것처럼 보인다. 심사위원이 오기 전에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

 

블랙 코미디 문제작

 

4년 전에 개봉해 스페인의 크지 않은 영화임에도 국내에 꽤 알려졌던 <어 퍼펙트 데이>, 제목과 정반대되는 최악의 하루를 보낸 NGO 구호단체요원들의 이야기를 블랙 코미디 요소가 한껏 들어간 채 보여 줬다. 할리우드 명품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기도 했지만,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감독의 각본과 연출이 제대로 만개했다는 게 맞을 테다. 

 

페르난도 감독은 <어 퍼펙트 데이> 개봉 이듬해 2018년 마약왕 에스코바르 이야기를 다룬 <에스코바르>로 빠르게 다시 찾아왔었는데, 이후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굿 보스>로 찾아왔다. 이번에도 역시 각본과 연출을 도맡아 했고, 전작에 이어 스페인의 대표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과 함께했다. 스페인의 아카데미로 불리는 2022 고야상에서 장장 1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기염을 토했다.

 

더할 나위 없는 블랙 코미디로, 해결하려 하면 할수록 더 꼬여만 가는 블랑코 스케일즈의 일주일을 담았다. 정확히 말하면, 블랑코 스케일즈를 자기 몸처럼 생각하고 직원들을 자기 가족처럼 대하는 블랑코의 일주일이다. 한껏 재미 있었는데, 재미가 있는 만큼 상황은 꼬여만 가고, 꼬여 가는 과정 속에서 행해지는 일들이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 여러 일과 상징들을 생각하면 문제작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텐데, 영화적 재미에 천착해 웃고 넘기기만 해도 충분하다. 

 

굿 보스? 배드 보스!

 

영화 속 '블랑코 스케일즈'는 저울을 만드는 회사다. 어느 쪽이 더 무거운지 또 가벼운지 정확히 알려 주는 게 저울이기도 하지만, 무게를 재지 않을 때는 정확히 균형을 이뤄야 하는 게 저울이다. 영화는 바로 그 점을 들여다봤는데 사장 블랑코가 회사의 크고 작은 일을 해결하려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겹쳐진다. 공교롭게도 문제가 있었을 때는 회사 정문에 있는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블랑코로서는 우수기업상을 획득해 회사 평판과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시 보조금도 받아야 하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 버리면, 더 이상 해결이 아니라 '봉합'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살면서 그럴 때가 없어도 한 번은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 본성이 나오는 걸까. 평소 고수하고 있던 체계와 견지하고 있던 신념을 한순간에 내팽개쳐 버리고, 당면한 과제를 위해서만 생각하고 행동하니 말이다. 본성은 본성이되, 나약한 본성이 아닌가 싶다. 블랑코도 '굿 보스'라는 강성한 이성의 면모를 뒤로 하고 '배드 보스'라는 나약한 본성의 면모를 보여 줄 수밖에 없었다. 누구라고 지목할 것도 없이 많은 기업인이 그런 모습을 보인다. 

 

'가족 같은 회사'라는 지향점

 

블랑코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크고 작은 일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며 외치는 구호가 있다. '가족 같은 회사' 말이다. 분명히 이 영화의 배경은 스페인인데 이토록 기시감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보다 조직에 충성하는 기업 문화와 역시 개인보다 일족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가족 문화가 과거 산업화 시대 동안 긴밀하게 얽히고 설켰기 때문이리라. 

 

가족 같은 회사의 지향점은 가족의 가장 역할을 하는 단 하나의 보스가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모든 일에 관여하는 만큼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 권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보스의 너른 품 안에서 조직의 판단에 불만을 갖지 말고 시킨 일만 하면 아무런 문제 없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하지만, 부족한 시스템 하에서 보스가 절대 선일 수 없기에 상황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거니와 보스와 조직이 그 어떤 일을 시키든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가족 같은 회사를 지향하는 회사도 다녀 봤고 가족 같은 회사를 혐오하는 회사도 다녀 봤다. 개인적으로 둘다 별로였다. 가족 같은 회사를 혐오하면 좋지 않냐고 쉽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걸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사악한 의도가 숨어 있다는 점이 함정이다. 이 둘을 적절히 섞어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는 게 가장 좋다는 것인데,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굿 보스가 마냥 좋은 것만도 그렇다고 배드 보스가 마냥 나쁜 것만도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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