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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전설의 테니스 자매를 키운 아버지의 78페이지 도박 <킹 리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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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킹 리차드>

 

영화 <킹 리차드> 포스터.&nbsp;ⓒ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등 6개 부문에 이름을 올리며 지난 한 해 전 세계 영화계의 주인공 중 하나로 설 만한 자질을 보여 준 영화 <킹 리차드>, 단독 주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리차드 역의 윌 스미스가 기어코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날아 올랐다. 윌 스미스로서는 2002년 <알리>와 2007년 <행복을 찾아서>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생애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의 위업을 이뤘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레버넌트>로 오랜 숙원을 푼 이후 이전과는 또 다른 행보를 보여 준 것처럼 윌 스미스 또한 차기 행보가 기대되는 한편, <킹 리차드>의 또 다른 포인트가 눈길을 끈다. 테니스 팬이라면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 같은 실화, 바로 테니스 역사와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전설 윌리엄스 자매(비너스, 세레나)의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이다. 제목의 리차드는 윌리엄스 자매의 아버지 리차드 윌리엄스다. 

 

<킹 리차드>는 갱스터들의 성지이자 갱스터 힙합의 탄생지인 캘리포니아주 L.A.의 컴튼 출신의 흑인 여성이 어떻게 위대한 챔피언이자 스타가 되었는지 일련의 실화를 바탕으로 흥미롭게 풀어 냈다. 나아가, 리차드를 뻔하지 않고 입체적으로 그려 내 강한 인상으로 마음을 사로잡는 호소력을 내뿜었다. 몇 생각나지 않는 테니스 소재 영화 중 단연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작품임에 분명해 보인다. 

 

챔피언 육성 계획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컴튼, 리차드는 유명짜한 테니스 코치들에게 자신의 두 여자 아이들 비너스와 세레나를 소개하는 데 여념이 없다. 미래의 세계 챔피언이 될 재목이라고 확신하며 그녀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고안한 78페이지 챔피언 육성 계획도 들이대 보지만,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는 두 아이들과 매일같이 훈련에 매진한다. 길 건너 집의 중년 여자는 그들의 모습에서 가혹함을 읽었는지, 두 아이들과 리차드 브랜디 부부에게 미쳤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설 경비업체 에서 일하는 리차드와 간호사로 일하는 브랜디 부부, 그들에겐 이 위험한 곳에서 무슨 일 있어도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절대적 신념이 있다. 그 숙원을 이뤄 줄 이들이 바로 아이들인데, 비너스와 세레나 자매는 테니스 챔피언이 되어 돈과 명성을 거머쥘 테고 공부 잘하는 다른 아이들 셋 또한 의사와 변호사가 될 것이었다. 그러니, 눈앞에서 총에 위협을 당하고 또 누군가가 총에 맞고 죽어 나가는 할렘가에서 몸을 사리는 한편 악착같이 살아가야 했다. 

 

철저한 계획, 절대적 훈련, 특출난 재능이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유명한 코치한테 배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언니 비너스만이었다. 그런데, 리차드는 사사건건 코치에게 관여하고 비너스가 우승한 뒤 아주 조금이라고 풀어진 듯한 모습을 보이면 철저하게 통제하며 급기야 유명한 에이전트의 꽤 좋은 조건도 가차없이 차 버린다. 코치도 잘라 버린 건 물론이다. 아내는 물론 당사자와도 한마디 상의 없이 말이다. 비록 철저히 아이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누구도 다가갈 수 없을 만큼 꽉 막혀 있다. 정녕, 누구를 위한 걸까?

 

내 삶에 내가 없다는 것

 

위대한 스포츠 선수 뒤에 가족, 특히 아버지의 존재가 버티고 있는 예는 많다. 스포츠를 포함한 예체능 분야의 특성상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재능을 발견해 철저히 키워 나가야 빛을 발할까 말까 하기에, 가족의 역할이 절대적인 것이다. 그 가장 적절한 예가 인류 역사상 '천재'의 표본이라고 할 만한 볼프강 모차르트일 텐데, 그조차 아버지 레오폴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그런 시선을 먼저 견지하고 이 영화를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영화 속 리차드 윌리엄스는 제목처럼 '킹'으로 군림한다. 비너스, 세레나 윌리엄스 자매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미 테니스 챔피언 육성 계획을 마련했고 태어난 후에는 두 말할 것도 없이 그대로 따랐으니 말이다. 두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에 전혀 상관없이 테니스 전설이 되어야 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부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가족 전체가 할렘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람 잘 날 없는 흑인 나아가 흑인 여성을 대표해 테니스에 임한다. 거기에 그들 '자신'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한 사람을 오롯이 이루는 과정에서의 교육학적 시선으로 보면 가히 '최악'의 방법일 것이다. 내 삶에 '나'는 없고 '가족' '우리' 심지어 '인종'과 '여성'까지 있으니 말이다. 그 과정에의 가혹함, 압박감, 부담감을 어떻게 감내했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결과론적으로 그 모든 걸 계획하고 실행하고 감내하고 이겨냈으니 역사에 길이남을 전설의 챔피언으로 거듭났을 테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선 모든 순간이 '폭력'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비너스와 세레나의 그런 심리는 전혀 비추지 않는다. 애초의 영화의 기획의도와 방향과 맞지 않으니 쓸모 없는 부분이었을 테지만, 최소한 영화가 더욱 풍성해지는 측면에서 조금이라도 다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차라리 교육 영화

 

영화가 주목하는 건 오직 리차드다. 리차드의 사연과 심리 그리고 리차드를 둘러싼 세간의 시선 말이다. 어린 시절 흑인이라는 이유로 무차별 폭행을 당했을 때 자신을 지켜 주지 않았던 아버지, 거기서 기인한 아버지의 초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소명과 다름 아니다. 나아가, 리차드는 그 소명을 '탈출'이자 '성공'으로 승화시킨다. 위험으로부터 지키는 걸로는 한계가 있으니 아예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킹 리차드>는 리차드만을 주목했기에 리차드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의무가 생겼으니 그를 향한 논란을 포함한 다양한 시선도 다뤄야 하는 것이다. 누가 봐도 그를 향한 두 시선이 공존한다. '대단하다'와 '너무하다'는 시선 말이다. 그렇게 해야 위대한 챔피언을 탄생시킬 수 있구나 하는 감탄과 어떻게 아이들에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 하는 탄식이 동시에 떠오를 수밖에 없다. 영화는 리차드와 브랜디, 리차드와 코치 코헨, 리차드와 코치 매시의 관계를 통해 리차드의 양면성을 드러낸다.

 

이 영화는 일반적인 스포츠 영화의 성공 스토리를 따르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테니스 영화 혹은 스포츠 영화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차라리 <죽은 시인의 사회> <디태치먼트> <위플래쉬>같은 교육 영화라고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어떻게'가 궁금했지만 '왜'의 지점에 다다르고 종국엔 '옳고 그름'의 선상에 있게 되니 말이다. 

 

이 모든 질문과 생각과 나름의 해답을 영화가 온전히 수렴하니, 다분히 실화에 천착해 결과가 궁금할 수 없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흥미로울 수 있었다. 이보다 몰입한 영화가 근래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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