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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성공이라는 이름의 욕망, 괴물의 또 다른 이름 <나이트메어 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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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나이트메어 앨리>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영화를 논함에 있어 감독을 언급하고 지나가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가장 적절한 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의 영화에는 그만의 고유 마크 또는 인장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1993년에 장편 연출 데뷔 후 30여 년 가까이 활동하며 거의 모든 작품(<퍼시픽 림>만 각본 제외)에 연출·각본을 도맡았고 원안과 제작까지 도맡을 때도 있다. 그의 영화는 오롯이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하겠다. 

 

기예르모 감독의 스타일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자못 혐오스럽기까지 한 크리처들을 판타스틱한 아름다움의 미장센 배경에 올려 두고는, 암울한 시대상과 기민하게 엮어 냈다. 그가 창조한 세상에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 놓고는 미로에서 보물 찾기 하듯 놀면 되는 것이다. 여러모로 그의 영화는 환상적이다. 

 

그런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이번에 조금 다른 영화를 들고 왔다. 그로테스크와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스타일과 암울한 시대상은 그대로이되, 판타지와 크리처를 쏙 뺀 진중한 범죄 심리 느와르 <나이트메어 앨리>가 바로 그 영화이다. 2006년작 <판의 미로>로 스타일을 확립시키고 2018년작 <셰이프 오브 워터>로 정점을 찍었다면, 이번 작품으로 또 다른 단계로 나아간 것 같다. 

 

성공에 눈 먼 남자

 

1939년 미국, 스탠턴은 언덕 위 오두막 마루 밑에 누군가의 시신을 묻고 불을 지른 뒤 버스에 올라 정처 없이 길을 떠난다. 그가 도착한 곳은 어느 유랑극단, 그곳에서는 프릭쇼(기형쇼라고도 한다)가 한창이었다. 얼떨결에 유랑단장 클렘의 눈에 띄어 취직을 하는 스탠턴, 얼마 되지 않아 독심술사 부부 지나와 피트를 만나 기술을 배운다. 이내 능숙해져서 유랑극단에 닥친 위기를 명민하게 넘긴다. 

 

자신감을 얻은 스탠턴은, 전기를 흡수하는 쇼를 하는 몰리에게 다가간다. 자신이 이곳에 있을 사람이 아닌 만큼 그녀도 이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투의 설득으로, 함께 유랑극단을 떠나 뉴욕으로 향한다. 2년 후 그들은 뉴욕 상류층을 대상으로 독심술 쇼를 펼치며 명성과 돈을 쓸어 담고 있었다.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둘의 사이는 틀어진 듯하다. 스탠턴은 차가워졌고 몰리는 버티기 힘들어 보인다. 

 

그때 그들의 쇼에 심리학자 릴리스가 나타난다. 그녀 때문에 처한 위기를 간신히 모면한 스탠턴은 그녀를 찾아가 더 큰 성공의 밑바탕이 될 수 있는 인맥을 소개받는다. 대신, 그녀에게 그의 과거를 있는 그대로 들려줬어야 했다. 바람대로 스탠턴은 훨씬 더 많은 돈을 한번에 만질 수 있는 성공으로 나아가는데... 과연 그 끝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성공이라는 이름의 욕망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성공'이라는 단어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도통 뭘 하던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는 스탠턴은 암울한 시대의 산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다. 영화의 시작점이 다름 아닌 1939년인데, 1929년부터 시작해 10여 년간 계속된 대공황의 끝물이었기 때문이다.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스탠턴은 대공황 상황에서 무기력해질 대로 무기력해진 평범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가 성공에 집착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생각하고 꿈꾸는 게 성공밖에 없는 시대였으니 말이다. 다른 모델을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다. 더욱이 2년 뒤 그가 성공다운 성공을 맛본 후에도 암울한 시대상은 바뀌지 않았다. 대공황의 위기는 지나갔다고 하지만 전쟁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말이다. 바다 건너 유럽에선 이미 전쟁이 시작된 지 오래다. 그러니 기댈 곳은 역시 성공뿐이다. 성공을 해야 뭐라도 하든 또는 뭘 하지 않든 할 힘이 생길 게 아닌가. 

 

문제는 미쳐 가는 세상에서 성공에의 열망만큼 욕망에 맞닿아 있고 그래서 취약한 게 없다는 점이다. 일개 인간이 선을 넘은 성공을 맛보려 하다가는 그 안에 있는 괴물 또는 시대라는 괴물한테 먹혀 버리기 일쑤이니 말이다. 가장 눈에 띄는 먹잇감이라고 할까. 제목 '나이트메어 앨리' 즉, 악몽의 골목에서 빠져 나왔다고 생각하겠지만 보다 훨씬 본격적으로 악몽의 거리와 악몽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이쯤이면 그가 갈 곳은 정해져 있지 않겠는가, 다시 나이트메어 앨리로 돌아갈 거라는 걸 말이다. 

 

괴물에서 시작해 괴물로 끝난다

 

기예르모 감독 작품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크리처'가 왜 이 작품엔 등장하지 않을까 하고 궁금해할 수 있겠으나, 들여다보면 괴물이 많이 보인다. 프릭쇼를 펼치는 이들이 아니다. 그들의 다름을 철저히 이용해 먹는 유랑단장 클렘이 괴물이고, 그의 밑에서 배운 것들을 철저히 이용해 먹는 독심술 쇼 사기꾼 스탬턴이 괴물이며, 스탬턴이 릴리스와 짜고 돈을 벗겨 먹으려 했던 거물 에즈라도 괴물이다. 

 

물론, 기예르모 감독의 전작들을 보면 외면적으로 흉측하고 기괴한 이들이 괴물이 아니라 진짜 괴물은 따로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나이트메어 앨리>의 경우 '진짜 괴물은 따로 있다'라는 메시지를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경제 대공황과 세계대전 사이의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바, 경제가 요동치고 전쟁의 냄새가 스멀스멀 나는 지금과 겹쳐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괴물이 판치는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스탠턴의 인생은 기구한가, 이해할 만한 지점이 한 곳이라고 있었는가. 영화로만 보면 기구하지만 이해할 만한 지점은 거의 없다시피 한 것 같다. 영화가 일부러 그의 과거사를 내보이지 않은 이유도 있고 시대상 역시 특출하게 내보이지 않기도 했다. 즉, 그가 괴물이 된 게 상당 부분 스스로에 의해서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괴물은 왜 만들어지는가'보다 '괴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더 재밌을 테다. 여하튼, 기예르모 감독 작품을 보면 '괴물'에서 시작해 '괴물'에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