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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폭력의 역사에 대항하라! <바쿠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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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바쿠라우>

 

영화 <바쿠라우> 포스터. ⓒ영화사 진진

 

브라질 북동부 세라 베르드 인근 바쿠라우, 족장 카르멜리타의 장례식을 맞아 마을의 모든 구성원이 모였다. 그들은 정신적 지주를 떠나 보내며 인종, 성별, 계급 구분 없이 모여 단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마을의 의의를 다시 한 번 각인시킨다. 그런 그들 앞에 세라 베르드 시장 토니 주니어가 찾아와 찢어 발긴 책들과 유통기한 한참 지난 식료품을 주며 지지를 호소한다. 

 

마을 사람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며 토니에게 욕과 함께 댐 이야기를 꺼낸다. 토니가 댐을 건설하는 명목으로 바쿠라우로 가는 물을 끊어 버린 것이었다. 하여 정기적으로 식수차를 외부로 보내 물을 가져와야 했다. 토니가 돌아간 후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마을 신호가 잡히지 않아 지도에서 사라져 버리질 않나, UFO 같이 생긴 드론이 나타나질 않나, 식수차에 총알 구멍들이 숭숭 생기질 않나, 마을 사람들이 한두 명씩 살해당하질 않나...

 

외부의 공격이라는 걸 눈치 챈 마을, 범죄를 저지른 후 댐 근처에 숨어 있는 룽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그는 카리스마와 무력을 겸비한 리더로 어떤 외부의 공격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만한 재목이었다. 그 사이 정체를 드러 낸 공격의 정체, 미국에서 온 용병 집단이었다. 그들은 바쿠라우를 향한 공격을 감행하는데... 과연 바쿠라우는 막아 낼 수 있을까?

 

폭력에 관한 호기심 어린 쾌감

 

2019년 제72회 칸 영화제는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 영화 역사상 다시 없을 영광일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았기 때문이다. 다분히 한국적이지만 전 세계에 통용되고 받아들여질 이야기. 그때 심사위원상을 받은 작품이 둘 있었는데, <라 미제라블>과 <바쿠라우>였다. 두 작품은 나란히 올해 개봉했는데, 폭력에 관한 이야기라는 공통점도 있다. 

 

영화 <바쿠라우>는 2010년대 브라질 영화의 부흥을 홀로 이끌고 있다시피 한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감독의 작품으로, 브라질의 아픈 과거와 현재를 '영화적'으로 그려 냈다. 하여 시작부터 중반 이후까지 도대체 이 영화가 무슨 내용일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하고 심각한 의구심을 보낼 수 있다. 자칫 영화를 중도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광폭한 의구심을 낯섬의 호기심과 장르적 쾌감으로 무마하며 끝까지 본다면 만족할 게 분명하다. 누군가는 어떻게 영화를 이리 잘 만들 수 있는가 감탄할 테고, 누군가는 현실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게 가능할까 감탄할 테다. 또 누군가는 슬퍼하며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바쿠라우 마을은 도대체 왜 공격을 당해야만 했는가 하고 말이다. 

 

아마존 원주민이 상대해야 했던 이들

 

지난 9월 1일 브라질 170개 부족 6천여 명이 브라질리아 대법원 청사 앞에 모여 시위를 단행했다. 브라질 정부가 아마존 개발을 위해 원주민 보호 구역을 축소하는 법안을 추진해 대법원이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결정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법안이 확정되면 원주민 동의 없이 땅을 개발할 수 있게 된다. 원주민으로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대대손손 살아왔던 땅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브라질은 1988년 개정한 헌법에 따라 아마존에 대한 원주민의 권리를 보장해 왔는데, 2019년 취임한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개발을 밀어 붙이고 있다. 

 

클레베르 감독이 1950년대 브라질 영화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시네마 노보 운동을 계승하며 작품 활동을 해 왔고 나아가 정치적 입장도 확고하게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쿠라우>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생각 나게 하는 피 비린내 가득한 장르적 외피를 쓴 주의적·사조적 영화이다.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민담 구조를 차용해 남미 특유의 화려하고 기이한 에너지로 제국주의를 비판한다. 

 

영화를 현실과 거칠게 대입해 보면, 바쿠라우 마을은 아마존의 보호 구역이고 바쿠라우 마을 사람들은 원주민이고 시장 토니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이며 미국 용병들은 대통령의 끄나풀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 곳곳에서 알아차릴 수 있듯 아마존의 원주민들이 상대해야 했던 건 2020년 전후의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 아마존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외부인의 발자국부터 시작되었다. 개중에 잘 알려져 있는 사건들이 있을 테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건이 있을 뿐이다. 

 

도대체 왜 바쿠라우를 공격했나

 

바쿠라우 주민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장면들이 많았다. 그들은 왜 그렇게 행동하는 거지? 하지만 충분히 '다름'의 영역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온 그들만의 방식이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미국 용병들의 행동은 맥락도 이유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 온 누구인지, 왜 바쿠라우 마을을 공격하는지 말이다. 앞엣것이 영화적으로 기이한 면모를 풍기는 한편 배경을 전혀 모르다시피 한 영화 자체를 향한 의아함이라면, 뒤엣것은 진실로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도대체 왜?

 

영화는 이 지점에서 현실을 보여 주는 데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간다. 현실에선 명목상 이유라도 있는데, 영화에선 명목상으로도 아무 이유가 없다. 물론 유추해 보면 알 수 있는 게, 토니 시장이 돌아간 직후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토니의 사주를 받은 용병 집단이라는 걸 알아 챌 수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마을 주민들이 왜 우리를 공격하냐는 말에 그저 모른다고 답할 뿐이다.

 

말인즉슨, 감독은 영화를 통해 역으로 현실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다. 진실은, 명목상으로도 이유 없는 그저 광기에 지나지 않은 행동일 뿐이라고. 너희들은 원주민을 두고 야만적이라고 하지만, 너희야말로 야만의 극치를 몸소 보여 주고 있는 거라고. 그렇지만, 영화가 감독이 선언을 하고 있진 않아 보인다. 굉장히 영리한 판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가 하면, '폭력'에 대해서도 역치의 방향으로 원주민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한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누구나 '너무 폭력적이야'라는 말을 대뇌일 수 있을 텐데 대부분 그 방향이 원주민을 향할 것이다. 하지만, 그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누군지도 모를 이가 아무 이유 없이 총을 들고 와 마구잡이로 죽여 대기 시작한 게 아닐까? 폭력의 '수위'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근본 없이, 이유 없이, 끊임 없이 폭력을 행한 것에 초점을 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