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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세계관까지 흔들린다! <좋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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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좋은 사람>

 

영화 <좋은 사람> 포스터. ⓒ싸이더스, 찬란

 

남자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경석, 담임을 맡은 반에서 지갑 도난 사건이 발생한다. CCTV를 한 번 돌려 보고 세익이 의심 갈 만한 행동을 했다는 걸 알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아이들 양심에 기대해 보기로 한다. 하지만, 아무도 자백하지 않는다. 비밀을 지켜 주고 불이익도 없을 거라고 공표까지 했지만 말이다. 결국 지갑을 도난당한 광렬이한테 돈을 주며 사건을 봉합하려 한다. 그때 전 부인 지현한테서 연락이 와 딸아이 윤희를 이틀만 봐 달라고 하고, 같은 반 학생이 찾아와 세익이가 의심된다고 말한다. 

 

경석은 세익이를 불러 사건 당시 교실에 들어가서 뭘 했는지 자세하게 쓰라고 하고는 윤희를 데리러 간다. 그런데 윤희는 경석과 같이 있기 싫은 듯 계속 엄마만 찾는다. 윤희를 차에 혼자 있게 두고는 세익이를 보러 가는 경석, 하지만 세익이는 아무런 말도 쓰지 않았고 돌아와 보니 윤희는 차 안에 없다. 찾고 또 찾았지만 없어서 경찰서에 찾아가 봤더니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야말로 청천벽력, 경석과 지현은 뒷수습을 하려 한다. 

 

그들 앞에 나타난 트럭기사, 그는 본인이 윤희를 치었긴 하지만 그 직접적인 이유로 윤희와 함께 있던 한 청소년 학생을 지목한다. 그 학생이 윤희를 차도로 밀어서 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고 장소에는 CCTV가 없고 조금 떨어진 곳에 CCTV가 있는데 사고가 일어나기 얼마전에 세익이 길 잃어버린 윤희를 만나 같이 가는 모습이 잡혔다. 정황상 세익을 향한 의심을 버릴 수 없으나, 경석은 확실하지 않으니 섣불리 판단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저버리지 않는다. 점점 미궁으로 빠지는 사고의 진실은 무엇일까. 

 

'좋은 사람'에 대하여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으며, 고매한 인격을 가진 부류와 미천한 인격을 가진 부류로 나누어진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라는 대목이 있다. 극한을 넘는 상황에 처한 사람의 어쩔 수 없는 단편적 시선이자 의견일 텐데, 과연 실제로도 그럴까? 

 

'한국 영화 사관학교'라 불리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정욱 감독의 장편 데뷔작 <좋은 사람>은 사람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의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세태 그리고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단편적 프레임에 소소한 경종을 울리려 한다. 사람은 결코 단편적이지도 평면적이지도 않다. 입체적이고 다층적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영화는 초반 경석의 한마디로 캐릭터가 지향하는 바를 보여 주며 일찍이 주제로 돌진한다. "사람들은 잘못하고 실수하고 살아. 근데 중요한 건, 자기가 잘못한 거 인정하고 되돌리는 거야. 그 용기만 있으면 몇 번을 잘못하고 실수해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 좋은 사람이란 게 뭔지에 관한 가장 올바른 정의라고 할 수 있겠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그 또한 과연 그런지 자문할 수밖에 없다. 

 

'좋은 교사'이지만 '좋은 아빠'이지 못한

 

초중반까지 학교에서의 지갑 도난 사건에 대처하는 경석의 자세는 하염없이 '좋은 교사'로 수렴한다. 확실할 때까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으려 하며 그 누구의 말도 믿으려 한다. 균형 잡힌 신념, 학생들을 스스럼 없이 대하는 태도에 신망이 간다. 그라면 충분히 '좋은 사람'일 것 같다. 하지만, 가족에 관해서라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정반대인 듯한 인상을 풍기기까지 한다. 

 

전 부인 지현과의 전화 통화에서 위화감을 느끼기 힘들었다. 하지만, 아이 윤희 얘기가 나오자 당황한다. 다음날까지만 봐 달라고 했을 뿐인데 준비가 덜 되었다며 난감해한다. 그런가 하면, 아이도 아빠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혼 후라도 부모가 자식을 만남에 있어 난감해하고 아이가 부모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 뭔가 큰일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경석이 집 밖에서와는 달리 집 안에서는 결코 '좋은 남편이자 아빠'이지 못했다는 걸 암시한다. 

 

영화는 단순히 '밖에서는 좋은 사람, 안에서는 나쁜 사람'이라는 도식을 영화의 주제이자 구성으로 끌어오지 않았다. '좋은 사람'이라는 개념 자체를 뒤집어 보고 다시 생각하게 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경석은 실수하고 잘못해도 인정하고 되돌리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정의를 알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는 나쁜 사람일까? 그런가 하면, 세익은 실수하고 잘못하지만 인정하고 되돌리려고 노력한다. 그는 좋은 사람일까? 그렇다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누가 결정하는가? 누가 누구한테 확신할 수 있는가?

 

세계관을 흔들려는 의도의 질문

 

영화는 '좋은 사람'이라는 명제와 정의에 대한 의심과 혼란이 가중되는 만큼 미궁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가면 갈수록 두 사건사고의 진실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어지는 것이다. 지갑 도난 사건과 윤희 교통사고의 직간접적 관련자인 경석은, 세익을 향한 어쩔 수 없는 또는 의식적인 의심을 거두지 못한 채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트럭기사에게 휘둘린다.

 

중심에서 균형을 잘 잡고 있을 줄 알았던 경석이 흔들리며 영화를 보는 이도 같이 흔들리니, 보는 이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세계관을 흔들려는 데 목적이 있는 영화의 의도가 정확히 먹혀 들어갔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가 하려던 것과 전하려던 것은 여기까지다. 단단하게 굳어진 틀을 흔들어 보는 것 말이다. 재정리하고 재배열하고 재정립하는 건 각자의 몫이겠다. 

 

우리네 일상에서 마주했었고 마주할 수 있는 학교와 가족이 하염없이 무서울 수 있는 별것 아닌 듯한 스릴러의 배경이라는 게 섬짓하게 다가온다. 비록 작디작은 독립영화이자 젊은 감독의 데뷔작이지만 품고 있는 질문의 용량은 너무나도 방대하고 깊다. 그럼에도 빈틈 없이 촘촘한 연출과 연기가 대단하다. '웰메이드'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