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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항일 첩보 영화로 돌아온 장이머우의 노림수 <공작조: 현애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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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공작조: 현애지상>

 

영화 <공작조: 현애지상> 포스터. ⓒ조이앤시네마

 

1931년 9.18 만주 사변 후 일제는 중국의 동북 지역을 점령하고 이듬해 괴뢰 정권인 만주국을 세운다. 이후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14년간 만주국의 하얼빈 경찰청 특무과는 지하 항일 조직 및 애국지사들을 족족 잡아들여 고문하고 도륙하는 데 앞장섰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에서 5년간 특수훈련을 받은 공작원 4명이 '새벽'이라는 비밀 작전으로 하얼빈에 잠입하고자 한다. 그들의 임무는, 일제의 비밀 처형장 베이인허에서 탈출한 단 한 사람 왕쯔양을 출국시켜 국제 사회에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설원을 건너며 조직과 접선해 기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가는 길조차 여의치가 않다. 만약을 대비해 두 명씩 2조로 하얼빈 잠입을 시도하는데, 설원에서부터 특무원을 만나고 기차에서 뿔뿔이 흩어지다시피 한다. 다행히 한 조는 하얼빈에 들어가 조직이 마련한 숙소에 자리잡는다. 하지만, 알고 보니 하얼빈으로 가는 기차에 같이 탄 조직원부터 하얼빈 숙소를 마련해 준 조직원과 숙소를 지키는 조직원까지 모두 특무원이었던 것이다. 

 

추격전 끝에 공작조의 맏형 격인 장셴천이 잡혀 심한 고문을 당한다. 그럼에도 그는 다른 조의 정체는커녕 비밀 작전의 정체도 발설하지 않고 탈출을 시도하기까지 한다. 특무과의 핵심에 당 조직의 비밀 정보원이 암약하고 있었고 그의 도움이 있었다. 이후 작전은 비밀 정보원 저우이의 꼼꼼하고 똑똑하기 그지없는 수행을 중심으로 판이 짜여진다. 공작조는 비밀 작전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장이머우 최초의 항일 첩보 영화

 

중국 영화계 5세대의 대표 격이자 중국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 '장이머우' 감독, 1988년 연출 데뷔작 <붉은 수수밭>부터 베를린 영화제 황금공상을 받더니 1990년대 내놓은 작품마다 전 세계적으로 호평 받으며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 주요 상을 휩쓸었다. 웬만한 감독이라면 범접할 수 없는 커리어. 2000년대 들어서는 미장센에 치중하며 중화주의 색채가 강한 영화들을 내놓았고, 2010년대 들어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듯 문화대혁명을 비판하는 영화들을 내놓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폐막 총감독을 맡기도 했다. 

 

그의 오랜 커리어 최초로 항일 첩보 영화 <공작조: 현애지상>을 내놓았다. 중국판 <암살> 또는 <밀정>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조선족 출신 췐융센 작가의 원작을 기반으로 췐융센과 장이머우가 함께 각본을 썼다. 중국의 국민 배우 위허웨이를 비롯해 중국 영화계의 미래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주아문, 류호존 등이 주연으로 열연한다. 스텝 중 눈에 띄는 이들이 있는데, 무술감독의 정두홍 그리고 음악감독의 조영욱이다. 정두홍 감독은 이름만 들어도 알 텐데, 조영욱 감독은 <올드보이> <신세계> 등의 영화 음악을 책임졌다. 

 

화려한 면면이 먹혀 들었는지, 항일 첩보 영화로서의 '국뽕'이 먹혀 들었는지, 또 다른 요인이 있었는지 모르나 영화는 중국 현지에서 상당한 흥행을 일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단연 세계 최고의 영화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에서 어마어마하다고까지 할 순 없으나, 자그마치 2억 달러 가까운 흥행 성적을 올린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부제 '현애지상'의 뜻인 '벼랑 끝에 서 있는 순간'이 떠오른다.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고, 곧 재미로 발현되어 흥행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오락 영화'를 지향한 모양새

 

혹자는 이 영화를 두고 중국 공산당을 찬양하다시피 하는 '국뽕 영화'라고 주장할지 모르나, 만듦새의 면면을 두고 보면 그런 느낌을 거의 아니 전혀 느낄 수 없다. 숨도 쉬기 힘들 만큼 긴장이 연속되는 '오락 영화'에 차라리 가깝다고 하겠다. 단지 소재가 항일 첩보일 뿐인 것이다. 이 영화가 지향하는 바가 오락이라는 걸 초반부터 알아챌 수 있다. 

 

공작원 네 명이 따로 또 같이 설원에서 조직원을 만나 함께 기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가면서 이미 특무원의 존재를 눈치챈다. 당연히 특무원은 그들이 공작원이라는 걸 알고 있고 말이다. 즉, 영화는 초반부터 과감하게 조직원과 특무원이 서로의 존재를 알고 비밀 작전을 수행하게끔 한다.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속고 속이는 순간들이 계속 이어지니 긴장을 놓을 틈이 없다. 

 

관객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치밀하게 직조된 첩보 체제 속에서 액션보다 심리에 치중했다면 완전히 다른 장르의 영화가 되었을 테지만, 장이머우는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긴장감을 피곤하게 끌고 가는 게 아니라 흥미롭게 끌고 가는 게 목적이었을 테다. 어느덧 비밀 작전의 핵심 열쇠가 된 특무원 비밀 정보원 저우이가 영화 전체를 책임질 핵심 열쇠이기도 하다. 썩어 문들어진 마음속과 대조되는 그의 무표정한 얼굴이 모든 걸 대변한다 하겠다. 

 

영상미 그리고 독립에의 투쟁

 

<공작조>를 감상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면, 장이머우 감독의 전매특허인 '영상미'에 주목하는 것이다. 하염없이 눈이 내리는 설원에서 시작해 공작조의 임무 과정이 가시밭길일 거라 예상되는 가운데, 영화 내내 계속 눈 내리는 하얼빈을 보고 있으니 가슴 뭉클해지는 경향을 보이며, 영화가 끝나는 배경도 역시 설원 한가운데이기에 독립에의 임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예견하게 한다. 

 

1931년 9.18 만주 사변으로 본격화된 일제의 중국 침공, 가히 일제의 동아시아 침략 전쟁의 시작이나 다름없었다. 올해 2021년이 90주년으로, 언제나 되짚어야 할 일제의 만행과 독립에의 투쟁이 이 영화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비록 중국 공산당의 처연한 역사가 한국 관객들에게도 와닿을 거라는 생각을 하긴 힘들겠지만, 공산당을 떠올리지 말고 무명으로 죽어 간 독립열사를 떠올리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