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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20여 년만에 찾아온 대만 청춘영화의 진정한 시작 <남색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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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남색대문>

 

영화 <남색대문> 포스터. ⓒ오드

 

전 세계 영화계, 그중에서도 아시아를 한정해 보면 인도 그리고 한중일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할리우드를 넘어 세계 최고의 영화 산업 메카를 형성하고 있는 발리우드의 인도와 각각의 뚜렷한 색채로 나름의 영화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한중일 말이다. 거목들 사이에서 그래도 두 나라는 빼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만과 태국, 각각 청춘과 로맨스를 위시한 드라마 그리고 공포와 스릴러를 위시한 장르가 두각을 나타내 왔고 나타내고 있다. 

 

태국도 태국이지만 대만 영화는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친숙하다. 허우샤오시엔, 차이밍량, 에드워드 양처럼 대만을 넘어 세계를 호령한 예술영화 감독들이 있(었)고 2000년대 들어 청춘과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가 주류를 이뤄 한국에도 큰 인기를 끌었다. 2020년대인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대만 특유의 분위기와 시대상과 캐릭터들이 모두 한국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만 청춘 멜로의 시초, 정확히 말하면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끈 대만 청춘 멜로의 시초라고 하면 단연 2007년작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주걸륜이 연출했고 주걸륜과 계륜미가 주연을 맡았다. 신드롬급이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런데, 그보다 5년 전인 2002년에 대만 청춘 멜로의 진정한 새로운 시작을 알린 작품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는가? 계륜미의 데뷔작이기도 한 <남색대문>이 그 작품이다. 20여 년만에 처음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찌 환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세 청춘의 찬란하고 혼란했던 시절

 

17살 소녀 시대를 지나고 있는 멍커로우, 그녀에겐 절친 린위에전이 있다. 린위에전의 주된 관심사는 장시하오다. 동갑이자 같은 학교생이기도 한 그는, 한밤중에 몰래 홀로 수영장을 이용하는데 린위에전이 그 사실을 알고 멍커로우에게 같이 가자고 한다. 멍커로우는 린위에전을 대신해, 린위에전이 장시하오를 좋아한다고 장시하오에게 말한다. 

 

처음 마주친 멍커로우와 장시하오, 멍커로우는 장시하오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장시하오는 적극적으로 자기소개를 하며 멍커로우에게 다가간다. 이후 계속해서 부끄러워하는 린위에전을 대신해 장시하오에게 린위에전의 마음을 전하는 멍커로우, 그래서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장시하오는 멍커로우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장시하오에게 보내는 린위에전의 편지에 멍커로우의 이름이 써 있는 게 아닌가? 그 때문에 멍커로우와 린위에전은 멀어지고, 멍커로우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보고자 장시하오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그녀는 장시하오를 좋아할 수 없다는 자신의 마음을 다시금 확인하는데... 그녀는 왜 장시하오를 좋아할 수 없는 걸까? 장시하오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린위에전은 왜 그렇게 행동했던 걸까? 세 청춘의 찬란했던 고등학교 시절이 펼쳐진다. 

 

현재를 고민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청춘들

 

'청춘'이라는 말,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시절을 가리킬 텐데 정작 청춘은 청춘을 잘 모르고 청춘이 지난 이들이 청춘을 잘 안다. 청춘이 청춘에 만족할리 만무하고 하루빨리 시간이 지나 안정적인 어른이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하여, 많은 청춘 영화들이 '힘들지만 잘 이겨 내자, 아프니까 청춘이지'라는 식의 논조를 내 보이는 것이다. 

 

<남색대문>은 이후 이어질 대문 청춘 영화만의 논조를 새롭게 창조해 낸 듯하다. 고등학생 청춘들이 현재를 고민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데 주저함이 없으니 말이다.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고민하고, 성 정체성이 뭘지 고민하며, 끊임없는 반복으로 진실 또는 진짜에 가닿으려고 한다. 힘듦에 매몰되거나,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거나, 찬란할 것 같은 미래만 꿈꾸지 않는다. 

 

지극히 별거 없는 것 같은 이야기 속에 이처럼 심오할 수 있는, 아니 청춘으로선 가장 심오할 고민이 담겨 있다. 그러며 청춘의 모습을 그리는 것 자체로 하염없이 아름답고 찬란하기에, 이 사실을 아주 잘 아는 듯한 감독은 조금이라도 인위적일 수 있는 연출 방식이 아닌 <인간 극장> 같은 다큐멘터리 혹은 다큐 드라마 느낌이 묻어날 정도로 날 것의 연기와 장면이 주를 이루게 했다. 계절 배경도 여름에 한정시켰기로서니, 아주 탁월한 선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분히 청춘의 입장에서

 

어른이 되면, 해야 할 것도 생각해야 할 것도 챙겨야 할 것도 들여다봐야 할 것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그런 어른의 시선과 관점으로 청춘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보여 줘야 할 게 많을 테다. 그렇지만, 정작 청춘의 입장에서 세상은 단순할 것이다. 이 영화는 그중에서도 친구 관계만을 보여 줬다. 두 주인공 또는 세 주인공의 학교 생활이나 가정 환경을 보다 조금이라도 세세하게 보여 주려 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친구 관계만을 보여 주는 한편, 이상하리만치 반복적인 말과 행동이 보인다. 이상 행동으로까지 비춰질 수 있을 정도인데, 조금만 달리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싶다. 궁금하고 고민스러우며 혼란스러운 나 그리고 우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서, 숨김없이 보고 싶다는 생각의 발로이기도 한 것이다. 같은 말과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맥락이 잡히고 보이지 않던 게 보일 때가 있지 않은가. 

 

혹자는 이 영화를 보고 요즘 느낌, 세태와 동떨어져 의미가 퇴색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다. 또는 매우 전형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당히 서투르다고 말할 수도 있을 테고. 하지만, '전형'의 시작을 돌아보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더불어, 이 영화를 보며 의미 부여만 하지 않을 테니 재미와 감동도 한껏 느끼고 받을 게 분명하니 실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여름이 끝나가는 지금, 아니 언제나 돌아올 여름이면 <남색대문>이 생각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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