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그린나이트>
크리스마스 이브, 가웨인은 성 밖의 여자친구 집에서 눈을 뜬다. 성 안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만난 후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모인 연회에 참여한다. 그는 왕의 조카였고, 어머니는 왕의 여동생이었다. 여동생이 연회에 참여하지 않자 왕은 그 자리에 가웨인을 앉힌다. 왕과 왕비는 연회를 시작하기 전에 가웨인에게 그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하는데 가웨인에겐 들려줄 만한 이야기가 없었다. 대신 왕은 연회에 참여한 기사들에게 위대한 전설의 이야기를 들려줄 걸 요청한다.
한편, 가웨인의 어머니는 주술 마법을 준비해 '그린나이트'를 연회에 출몰시킨다. 왕은 그의 제안을 들어보기로 하는데, 그의 제안은 간단하고도 엄청났다. 누구든 앞으로 나와 무기를 들고 그와 맞서 싸워 그에게 흠집이라도 내면, 그의 거대한 도끼를 갖게 될 것이며 부와 명예가 따를 거라는 말이었다. 다만, 1년 후 녹색 예배당으로 그를 찾아가서 그에게 했던 것과 동일한 걸 돌려받아야 했다. 흠집을 내면 흡집을 받을 것이고, 목을 자르면 목이 잘릴 것이었다. 가웨인은 가차없이 그린나이트의 목을 잘라 버린다.
1년 후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때, 가웨인은 그린나이트가 기다리고 있을 녹색 예배당으로 향한다. 위대해지게 태어나지 않았을까 봐 두려운 그는 진정 위대해지기 위해 명예로운 길을 떠난다. 그곳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의 다섯 상처가 열정을 줄 것이며 기사의 다섯 가지 미덕이 길을 밝혀 줄 것이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미소를 지어 주시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것이었다. 그에겐 어떤 앞날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 끝엔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는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가웨인과 녹색 기사를 원작으로
아서왕 전설에 얽힌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5~6세기에 활동했다고 추측되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정확하지 않은 인물이 1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서 '전형성'을 캐치할 수 있어서일까. <가웨인과 녹색 기사>도 아서왕 전설과 관련된 이야기다.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이야말로, 아서왕 원탁의 기사 중 핵심이거니와 기사도의 모범으로 불리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14세기말 영국에서 지어진 시로, 1925년 그 유명한 <반지의 제왕>의 J. R. R 돌킨이 현대판으로 내놓았다.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그린나이트>는 <가웨인과 녹색 기사>를 원작으로 감독의 각본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고스트 스토리>의 그 감독이 중세 모험 판타지 영화를 연출했다고?' 하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봐 왔던 아서왕 전설 관련 콘텐츠들이 거의 모두 그러 했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 <왕좌의 게임> 같은 느낌 말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범상치 않다. 중세 모험 판타지 영화와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은 거의 비슷하다. 똑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유분방하지만 이뤄 놓은 게 없는 왕족이 명예를 위해 그리고 기사가 되기 위해 자기만의 이야기를 갖고자 필멸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곳으로 떠나는 것이다. 한 차원 높은 성장 스토리, 기사로서의 명예를 찾고자 목숨 걸고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 훗날 들려줄 무용담을 얻고자 필히 행해야 하는 통과의례.
가웨인의 여정을 함께하며
보다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면, 가웨인의 엄마와 아서왕 내외가 내밀하게 짜고 가웨인으로 하여금 왕으로서 최소한 가져야 할 것들을 습득하게끔 조작한 걸로도 보인다. 몇몇 만화책들 보면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제자로 하여금 한 단계 혹은 몇 단계 성장하도록 무인도에 가둬 놓고 알아서 생존하게 하는 거 말이다. 물론, 알고 보면 무인도도 아니고 크나큰 위협이나 유혹 등도 모두 스승이 치밀하게 짜 놓은 술수이다. 짧고 굵게 육체적으로 단련하고 정신적으로 깨달은 후 크게 진일보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중요한 순간마다 어려움을 헤치고 나아가는 가웨인의 생각에 그의 엄마와 아서왕 내외의 말이 크게 작용한다. 사람이 중요한 선택과 결정을 할 때 누군가의 꽂히는 한마디와 한순간이면 충분하다. 또 가웨인의 여정에서 맞딱뜨리곤 하는 사람들은 마치 관문처럼 느껴진다. RPG 게임에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며 실질적인 해를 끼치진 않고 외려 도움을 주고 깨달음을 전하는 NPC처럼 말이다.
가웨인의 여정을 보며 나를 대입해 본다. 나는 나만의 이야기가 있을까. 나만의 이야기를 쓰고자 어떤 노력을 했나. 나는 누구나 통과해 마지 않았을 것 같은 의례나 의식을 치렀나. 누군가가 나의 성장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을 주고 깨달음을 전해 줬을까. 그런 행위는 누군가의 삶을 조종하려는 걸까, 순수하게 혹은 의도적일지언정 진정 누군가를 위한 걸까. 세상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 왔을까. 모두 나같지는 않을 텐데, 궁금하다.
수많은 상징을 둘러싸고
이 영화만이 갖는 미덕은 이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상징이 대놓고 드러나 있고 곳곳에 숨겨져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은 의외로 가웨인의 어머니인데, 원작에선 가웨인의 이모인 '모건 르 페이'일 것이다. 그녀는 여성이 발 붙일 곳 없는 원탁 연회에 참석하는 대신 마법으로 녹색기사를 만들었는데, 그 자체로만 상징하는 것들이 꽤 된다.
기독교적인 색채가 강한 아서왕의 궁전에 토속 종교의 색채을 띈 '마법'으로 만든 녹색 기사를 출몰시켜 혼란을 야기시켰다. 그런가 하면, 문명의 한가운데라고 할 수 있는 궁전에 다분히 '자연'적인 심지어 도끼를 놓은 자리에 식물이 자라기까지 하는 녹색 기사를 출몰시켰다. 남성만이 절대적인 권력을 갖는 궁전에 녹색 기사를 출몰시켜서는 원탁에서 유일한 '여성'인 왕비의 입을 빌려 상황을 조종하려 했다. 대비되는 모습들이 영화를 이끄는 원동력은 아닐지언정 영화를 보다 풍성하게 하는 데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쳤다.
<그린나이트>가 대단한 영화인 점은, 다분히 상징적으로만 해석이 가능하면서도 상징을 완전히 제거하고 스토리만으로 충분히 감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스토리로만 봐도 스토리의 층위 위에 스토리를 감싸는 스토리적 상징이 존재하지만 말이다. 이런 식으로 감상하고 저런 식으로 감상하고 종횡무진·이합집산하여 감상해도, 모두 'GOOD' 이상의 점수를 줄 수 있다.
여타 영화처럼 비록 2시간에 불과하지만, 파생될 개념과 상징과 이야기들은 20시간, 200시간, 2000시간도 모자를 게 분명하다.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관계조차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콘텐츠·이야기의 보고, 호불호가 갈릴 게 분명하지만 그조차 뛰어넘는 연구적 가치까지 있는 영화. 명작 중에서도 손꼽는 명작으로 남을 테지만 아이러니하게 문학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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