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소피: 웨스트코크 살인 미스터리>
1996년 12월 23일, 아일랜드 좌남단 코크주의 웨스트코크 지방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살인 사건이야 일상다반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일일 텐데, 이 사건은 남달랐다. 작고 한적한 해변 마을 스컬에서 일어난 첫 번째 살인 사건이었고, 살해당한 이가 '소피 토스캉 뒤 플랑티에'로 프랑스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남편 다니엘은 유명 영화 제작자였고, 그녀 자신도 작가이자 제작자였다.
소피는 스컬의 해변가 언덕에 별장을 구입하고 해마다 찾았다고 하는데, 불과 30대 후반의 나이에 살해당하고 만 것이다. 집 앞에서 둔기로 머리를 강타당한 채 이미 시신이 된 후 발견되었는데, 당시만 해도 과학 수사가 초창기였기에 DNA는 무용지물이었다. 현장엔 범인을 특정지을 만한 어떤 증거도 없었다. 완전범죄였던 것이다.
범죄 다큐멘터리 명가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소피: 웨스트코크 살인 미스터리>로 이 사건을 전한다. 지난 25년 동안 미해결 미스터리로 남은 사건을 말이다. <맨 온 와이어>와 <서칭 포 슈가맨>으로 미국 아카데미 장편다큐멘터리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사이먼 친이 총괄프로듀서를 맡아 기대감을 부풀어 오르게 한다. 그는 뿐만 아니라 영국 아카데미와 에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소피' 살인 사건의 미스터리
유례 없는 살인 사건으로 충격에 빠진 마을 사람들, 그리고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울 프랑스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진 유가족들. 누군가는 걱정하고 누군가는 실의에 빠져 추모하고 있을 때, 언론은 득달같이 파고든다. 그럼에도 범인은커녕 용의자조차 특정할 수 없었다. 인적이 드물었기에 목격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강력한 용의자가 한 명 나타난다. 같은 마을에 사는 프리랜서 기자로, 이름은 '이언 베일리'였다. 그는 소피가 살해당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극적인 기사를 써댔다. 그런데, 자극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 아주 자세하기도 했다. 경찰조차 얻기 힘든 정보가 담겨 있었다. 그즈음, 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좋지 않은 제보가 잇따랐다. 결정적으로, 소피가 살해당할 바로 그때 현장 근처 다리에서 그를 봤다는 목격자가 나타났다.
평화수호대(아일랜드에선 '경찰'을 '평화수호대'라고 한다)는 비록 정황증거뿐이었지만 참으로 다양한 정황증거를 가지고 이언 베일리를 체포한다. 하지만 오래 구금해 심문할 수 없었고 이언 베일리도 자백하지 않았기에, 결국 풀어 줄 수밖에 없었다. 소피 살인 사건의 메인 이슈는, 점차 소피에서 이언 베일리로 옮겨 가고 있었던 것이다.
소피를 '둘러싼' 이야기들
한편, 소피는 당시 복잡한 심정과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남편 다니엘에서 안정을 찾을 수 없어 다른 남자를 만났다가 다시 다니엘에게 돌아와 있는 상황이었지만 결코 편하지 못했다. 사교계에서도 유명한지라 자신을 둘러싼 안팎의 잡음을 피해 아일랜드에서도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곳으로 피신 비슷하게 와 있었던 것이리라.
관련하여, 그녀가 살해당한 걸로 설왕설래가 많았다. 이를테면, 소피가 타국 땅에서 살해당했음에도 현장에 당도하지 않고 관심조차 보이지 않은 남편 다니엘이 복수심으로 청부살인을 사주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 같은 것 말이다. 이처럼, 작품은 '소피'가 아닌 소피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더 많이 전한다. 그러며 그녀를 잊지 않고 25년 동안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는 유가족들을 조명한다.
유가족들을 조명하는 게 곧 그녀를 조명하는 것이리라. 유가족들이 처음 그녀의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느꼈던 심정과 지난 25년간 어떤 심정으로 지내 왔는지와 지금 그리고 앞으로 물러서지 않고 끈질기게 진실로 향할 것을 말이다. 하여, 작품은 여타 범죄 다큐멘터리들과 결을 달리한다. 비록 범인으로 특정지을 순 없지만 강력한 용의자인 이언 베일리를 둘러싼 이야기만을 전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사건 자체를 중심에 두고 사방으로 퍼지듯 조망하고 있다.
짙은 슬픔이 묻어나다
이 작품을 보다 보면,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듯하다. 아일랜드 서남단의 작디 작은 해변 마을에서 일어난 기괴한 살인 사건이라는 특수성 때문일까, 제작자와 연출가가 노린 분위기일까, 처연하고 서연하기 그지 없다. 범죄 다큐멘터리 특유의 동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서스펜스가 보이지 않는다. 흥미롭기는커녕 안타까움이 앞서기까지 한다.
그건, 정녕 아무런 잘못도 없는 소피의 황량한 죽음과 장장 25년 동안이나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하는 이언 베일리(정황증거일 뿐이니 법적으론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리고 사건에 대해 한 게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경찰의 무능과 끊임없이 자극적이기만 한 기사를 양산해대는 언론이 이 사건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소피의 유가족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프랑스 법원의 판결을 통해 이언 베일리에게 죄를 물었다. 정황증거일 뿐이지만 (프랑스에선 통용되고 아일랜드에선 통용되지 않는) '증거의 다발'로 가능했다. 하지만 아일랜드 법원은 이언 베일리의 신변을 프랑스도 인도하는 걸 용인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 사건은 현재진행형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짙은 슬픔이 묻어나는 사건, 이런 사건이 또 없고 이런 다큐멘터리가 또 없다. 이만큼 진실이 궁금해지는 사건 또한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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