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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희대의 연쇄 살인 사건, 한 저널리스트의 절규 <샘의 아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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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샘의 아들들: 어둠 속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샘의 아들들> 포스터. ⓒ넷플릭스

 

1976년부터 이듬해까지 미국 뉴욕은 충격적인 연쇄 살인으로 집단 패닉에 빠진다. 밤에 차 안에 있거나 걸어 다니는 시민에게 총격이 가해져 크게 다치거나 죽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피해자들 간에 공통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연쇄 살인엔 범인의 범행 동기나 범행 스타일을 특정할 최소한의 단서가 있기 마련이다. 

 

제아무리 1970년대 범죄율이 높고 웬만한 범죄에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뉴욕이었지만, 무차별 연쇄 살인에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의 양상이 특정되어 있지 않기에 누가 대상이 될지 대략적인 추측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살인은 계속된다. 6명이 죽고 7명이 부상을 입는다. 그러던 1977년 8월, 최초 범행 1년 여만에 범인이 잡힌다. 

 

범인은 24세 청년 데이비드 버코위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복 중인 경찰에 붙잡힌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했고 365년 형에 처해 교도서에 수감된다. 희대의 연쇄 살인이 이렇게 끝날 거라고 봤지만, 누군가에겐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샘의 아들들: 어둠 속으로>는 데이비드 버코위츠의 연쇄 살인 막전 막후를 경찰 아닌 어느 기자의 시선에서 치밀하게 풀어 놓은 작품이다. 범죄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모양새, 대단한 작품임에 분명하다. 

 

이상한 점들

 

작품의 화자는 '모리 테리'라는 저널리스트, 그는 사건이 주로 일어났던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데이비드 버코위츠의 집에서도 멀지 않았고 말이다.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그런데 그의 그런저런 관심을 집착으로 발전시킨 계기가 있었다. 뉴욕 시장 이하 경찰과 검찰의 대처가 황당하기 그지 없었던 것. 누군가는 그 광경을 그냥 지나갈 수 없었을 테고, 그게 바로 모리 테리였다. 

 

당시 뉴욕 시는 시장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현 시장은 재선을 노렸는데, 하필 희대의 연쇄 살인 사건이 터졌고 제대로 된 단서 하나 없이 범인 검거에 지지부진했다. 아니, 단서가 있긴 했다. 피해자들이 맞은 총이 공통적으로 44구경 탄환을 이용했던 것. 하여, '44구경 살인마'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용의자를 체포할 수 있었는데 이후 일사천리로 처리하곤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하게 사건을 덮어 버린 것이다. 후속 수사를 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점들이 수없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선, 피해자 유가족들과 생존자가 데이비드 버코위츠 혼자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단정했다. 그 말고도 여러 명이 함께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또한, 목격자에 의해 그려진 범인 몽타주가 제각각이었다.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 몽타주가 이토록 다를 수는 없는 것이었다. 특히, 마지막 사건의 목격자 제보에 따르면 데이비드 버코위츠는 절대 물리적으로 범행이 불가능했다. 

 

지독한 탐사

 

IBM 사내 기자였던 모리 테리는 탐사 전문 기자로 전직해, 사건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간다. 분명 데이비드 버코위츠와 함께 범행에 가담한 공범이 있었을 거라고 봤다. 그는 데이비드 버코위츠가 아직 잡히지 않았을 때 그가 경찰에 보내 온 편지를 분석한다. 편지를 통해 데이비드 버코위츠는 자신을 '샘의 아들'이라고 칭하며 이웃집의 개 '샘'에게 악령이 깃들어 자신에게 살인을 사주했다고 말한 바 있다.

 

모리 테리가 가닿은 곳은, 사탄을 숭배하는 집단인 사교. 즉, 데이비드 버코위츠 연쇄 살인 배후에 악령이 깃든 이웃집 개 '샘'이 아닌 사탄을 숭배하는 집단인 '사교'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고군분투하며 제대로 사건의 이면을 탐사하기 시작한다. 탄탄하게 정황증거를 수집하며 사건의 핵심에 가닿던 모리 테리, 그때 기묘한 일이 연달아 일어난다. 데이비드 버코위츠와 함께 범행을 저질렀을 거라 생각했던 이들이 석연치 않은 모습으로 사망한 것이다. 

 

그럼에도 사건 탐사를 그만둘 수 없었던 모리 테리, 사건이 공식적으로 종결을 맞이한 지 10여 년이 흐른 후 <궁극의 악>이라는 책으로 파란을 일으킨다. 그동안 사건에 대해 치밀하고 깊이 있게 취재한 내용을 집대성한 결과물이었는데, 언론에서 덮석 문 것이다. 사건의 선정성을 최대한 이용하는 언론, 언론을 이용해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려는 모리 테리, 꿈쩍도 하지 않는 검경찰. 

 

또다시 시간이 흘러 1993년, 모리 테리는 오랜 시간 사건에 매달려 온 결실을 맺듯 감옥에 수감된 데이비드 버코위츠와 인터뷰할 시간을 갖는다. 이 인터뷰에서, 즉 전국민이 다 볼 카메라 앞에서 데이비드 버코위츠는 직접 자신의 단독범행이 아니었음을 밝힌다. 수사가 재개될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었지만, 수사는 재개되지 않는다.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또는, 애써 무시한 모양이다. 

 

세상을 향한 절규

 

<샘의 아들들>은 이쯤부터 작품의 주인공을 완전히 모리 테리로 틀어 버린다. 더 이상 데이비드 버코위츠와 사건은 메인 소재가 될 수 없다. '모리 테리'라는 한 인간의 광기 어린 집착을 보는 시선이 주된 소재이자 주제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과 인생까지 걸고 사건에 매진한다. 왜 그랬을까? 아니, '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는 자신의 믿음을 온 세상에 증명해 인정받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 대상이 데이비드 버코위츠의 연쇄 살인 사건이었던 것뿐이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이 데이비드 버코위츠 단독범행으로 확정해 판결을 냈기에, 한 인간의 광기 어린 집착 또는 집착 어린 광기에 의한 음모론으로 치부되어 버렸다. 다른 분야로 치환해 보면, 수학자나 과학자가 하나의 이론을 가지고 평생 증명에 매진하다가 결국 해내지 못한 것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들 앞에는 '불운' 정도의 수식어가 붙겠지만, 모리 테리 앞에는 '음모론'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모리 테리의 심정을 화자의 형식으로 전해 준 이는 다름 아닌 세계적인 배우 폴 지아마티다. 특유의 우울끼 섞인 음성이 모리 테리의 적확하게 대변해 준 것 같다. 의구심, 열정, 자신감, 답답함, 우울함 등이 연잇는 모리 테리의 심정 변화가 폴 지아마티 목소리 하나로 너무나도 절절하게 전해졌다. 뜻밖에도 범죄 다큐멘터리로 한 인간의 세상을 향한 절규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적어도 이 작품에선, 여타 작품들처럼 연쇄 살인 사건 자체에 큰 소구점을 두긴 힘들 것이다. 대신 수확이 있다면, 모리 테리를 통해 들여다보는 '인간의 심연'이다. 그를 향한 지극한 감정 이입이라는 희한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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