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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중국 청춘 영화가 보여 주는 청소년 범죄의 일면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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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

 

영화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 포스터. ⓒ싸이더스

 

3년 전 엄마를 잃은 후, 자허와 아빠의 삶을 피폐해졌다. 과거 한때 레슬링 선수였던 아빠는 도축장에서 받은 고기를 나르며 연명하고 있고, 열네 살 생일이 코앞인 자허는 학교에서 고기 냄새가 난다며 따돌림을 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어떤 소년을 보게 되는데 낯이 익었다. 자허는 그가 3년 전 엄마를 살해한 소년 유레이라는 걸 직감한다.

 

유레이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는 모양으로 곧잘 친구들이랑 어울려 술도 마시고 PC방도 가는 것 같다. 자허는 이후 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그런데, 그는 3년이 아니라 4년 형을 선고받았더랬다. 집이 잘 산다더니 일찍 나온 것인가. 들어 보니, 소년원에도 가지 않고 학교와 다름없는 교정시설에서 편안하게 지내다가 왔다고 한다.

 

뒤늦게나마 소송을 준비해 보려는 자허, 변호사를 찾아가기도 하고 친한 친구에게 돈을 마련해 보려고도 한다. 하지만, 여러 모로 여의치가 않다. 결국 자허는 유레이를 죽일 마음을 품는다. 그를 찾아갈 때마다 번뜩번뜩 살인 충동을 느낀다. 유레이는 자허의 정체를 아는 듯 모르는 듯 일하고 친구들과 놀면서도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하는 것 같다. 과연 그들은 어떤 미래와 함께하게 될까?

 

중국 청춘 영화의 최전선

 

한중일 삼국의 '청춘'영화 시장에서 중화권이 단연 앞서가는 모양새다. 레트로 감성과 코미디 장르 그리고 퀴어까지 다양성을 앞세운 대만 영화를 포함해, 정통 드라마로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중국 영화가 믿고 볼 만하다. 개중에 특히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먼 훗날 우리> <소년시절의 너>까지 중국을 대표할 만한 여배우로 우뚝선 '저우둥위'가 단연 눈에 띈다.

 

여기, 제2의 <소년시절의 너>와 제2의 저우둥위가 함께한 영화가 우리를 찾아왔다. 다분히 시적 감성이 풀풀 풍기는 제목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으로, 장편 데뷔작인 이 작품으로 많은 영화제에 초청되어 큰 호평을 받은 저우순 감독과 신예지만 신예답지 않은 안정된 연기로 역시 큰 호평을 받은 덩은시 배우의 합작이다.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은 영화를 시종일관 이끄는 처연한 분위기가 보는 재미에 큰 몫을 차지하지만, '청소년 범죄'라는 무겁고도 시의성 있는 소재가 주요하게 작용한다. 어떤 식으로든 여운이 짙고 길게 남을 게 분명해 보이는데, 어떤 감성과 어떤 생각거리를 전해 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의 중국 청춘 영화들이 그래왔듯 말이다.

 

성장의 통과의례

 

영화의 가장 큰 맥락은 주인공 자허의 심리이다. 그녀는 비록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너무 힘들지만 강직하게 이겨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유레이와 마주하는 순간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있을 수 없었다, 그를 따라다니며 그 옆에 있어야 했다. 그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알아야 엄마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인 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그런 순간들이 온다. 어떤 식으로든 맞딱뜨려야 하는 사람, 일, 순간 말이다. 피해서 옆으로 에둘러 지나가도, 애써 덮어 두곤 모른 채 지나가도, 어떤 식으로도 지나가지 못하고 물러서 버려도 결국 언젠가 다시 맞딱뜨릴 것이다. 그럴 땐 그것의 정체를 제대로 아는 게 우선일 테다. 알면 알수록 힘들고 아프고 슬플 수 있고, 알고 나선 돌이키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긍정적일 때가 많다.

 

자허는 자기도 모르게 '올바른' 쪽으로 나아갔다. 피하거나 덮어 두려고 하지 않았고 물러서지도 않았다. 용기 있게 대면했다. 아빠처럼 술에 의지하거나 유레이처럼 운명론을 펼치지도 않았다. 그것도 자신을 위로하는 나름의 '방법'일 테지만 올바르진 않다. 또한, 자허는 자신을 잃지 않고 무언가에 지지도 않았다. 순간의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잡으려 한 것이다. 성장으로 가는 통과의례는 누구나 치르게 될 텐데, 자허는 누구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 훌륭하게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용기에서 비롯된 용서

 

영화에 자주 등장해 눈에 띄는 오브제가 하나 있다. 극중에선 '은황후'라 불리는 공기정화식물이다.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공기정화에 좋은 식물. 은황후가 자라야 할 곳은 음지일까 양지일까. 자허가 은황후를 음지에서 양지로 옮겨 주는 장면에 오래 남는다. 마치 본인이 은황후인 듯 또 유레이가 은황후인 듯,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아가려는 굳은 의지가 엿보인다. 청춘이라면 마땅히 어두운 곳에서 빛을 보고,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을 찾아 나가야 한다.

 

'촉법소년' 논쟁은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닌가 보다 싶다. 극중에서도 유레이가 살인 범죄를 저질렀을 때 열네 살이었다고 한다. 촉법소년의 마지노선에 걸리는 나이로, 비록 유레이가 그걸 악용한 건 아닌 듯하지만 피해자 유가족으로서 자허가 받아들여야 하는 억울함과 상실감과 분노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 영화는 촉법소년을 중심에 놓지 않고 곁가지로 활용함으로써 풍부함에 일조하게 했다.

 

진정한 용서란 뭘까. 글로만 또는 말로만으론 절대 정의하지 못할 것이다. 절대적으로 당사자가 되어 봐야 하는 문제일 테다. 용서를 해야 하는 입장 그리고 용서를 받아야 하는 입장. 영화는 두 입장에 있는 둘을 주인공으로 내 보여, 진정한 용서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용서를 할 준비가 되어야 하고 용서를 받을 준비가 되어야 한다. 용기에서 비롯될 것이다. 후회 안 할 용기와 미움 받을 용기 그리고 받아들일 용기. 자허는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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