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루카>
디즈니·픽사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도 이전과 다를 바 없는 행보를 보였다. 매년 쉬지 않고 신작을 공개해 왔듯, 2020년엔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을 내놓았고 2021년엔 <소울>을 내놓았다. <온워드>의 경우 제작비가 어마어마했으나, 극장 개봉을 강행했다가 실패를 맛보고 말았다. 화제성이나 작품성에 있어서 여타 픽사 명작들에 비해 평이했으니 더 안타까웠다. 반면, <소울>은 극장 개봉은 포기하고 디즈니 플러스로 내놓았는데 픽사 역대급 명작이란 찬사를 받으며 화제성이나 작품성에 있어서 크게 날아올랐다.
그리고, 픽사는 2021년에 또 하나의 작품 <루카>를 디즈니 플러스로 내놓았다. 물론, <소울>도 마찬가지였지만 한국엔 아직 디즈니 플러스가 상륙하지 않았기에 극장 개봉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직전의 작품이 역대급 명작 판정을 받아 버렸기에 상대적으로 밀리는 경향을 보일 수밖에 없겠으나, 픽사는 픽사인지라 절대적으로 작품 자체만 보면 언제나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픽사는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자주 선보였는데 대표적으로 <니모를 찾아서>(호주 케언즈), <라따뚜이>(프랑스 파리), <코코>(멕시코), <소울>(미국 뉴욕) 등이 있다. <루카>도 이들 작품과 결을 같이 하는데, 이탈리아 리비에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에도 노미네이트되었던 픽사 최고의 단편 중 하나인 <라 루나>로 연출 데뷔를 했던 엔리코 카사로사의 작품이기에 기대감이 증폭된다. 그 자신이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리비에라는 제노바 근처 해변이다)으로 현장감이 탁월할 것으로 보인다.
'바다 괴물' 루카의 물 위 나들이
이탈리아 리비에라 해변 마을, 바다 괴물의 전설이 내려온다. 바로 그 바다 괴물의 일족인 루카는 평소 엄마한테 육지 근처에도 가지 말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들은 외려 인간들을 물 위의 육지 괴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궁금증을 뒤로 한 채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던 루카는, 우연히 또래의 알베르토를 만난다. 그는 서슴없이 육지와 물속을 오가는데, 알고 보니 그들 일족은 육지에선 인간 형상으로 물속에선 괴물 형상으로 변할 수 있었다. 아니, 자동으로 변하는 능력이 있었다.
루카로선 신기하고 설레는 한편 두렵기도 했지만 로베르토가 있어서 괜찮았다. 이후로 둘은 계속 붙어 다니면서 함께 꿈을 꾼다. 이탈리아 스쿠퍼의 대명사 '베스파'를 타고 전 세계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자는, 상당히 구체적인 꿈이었다. 돈이 없는 그들은 베스파를 직접 만들고자 하지만, 번번히 실패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말이 있듯 루카는 자주 물 위 육지로 간다는 걸 부모님께 들키고 만다. 부모님은 루카에게 극약처방을 내리는데, 심해에 사는 루카의 큰아빠께 한 계절 동안 지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받아들이기 힘든 루카는 로베르토에게 상의하고, 로베르토는 리비에라 해변 마을로 함께 가자고 한다. 루카의 부모님이 그곳까지 쫓아오진 못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들은 우연히 포르토로소 컵 소식을 듣고 출전하기로 마음먹는다. 우승 상금으로 베스파를 사겠다는 일념이었다. 매번 도전하지만 혼자서 철인 3종을 온전히 뛰지 못해 기권하고 마는 줄리아와 친해져 함께 팀을 짜기로 한다. 그들은 포르토로소 컵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까? 부모님 몰래 가출한 루카의 미래는? 로베르토의 오랜 바람은?
유년 시절에 경험하는 게 좋다
유년 시절의 경험은 평생을 좌우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반드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양한 경험이 가장 중요할 것이고, 많은 경험과 좋은 경험이 뒤를 이을 것이다. 다양한 경험은 다양한 생각과 행동을 수반한다. 그래서 유년 시절에 질 좋은 교육과 환경을 막대한 양으로 제공하려 한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스스로의 바람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게 가장 좋을 테다.
루카는 누군가(주로 부모님)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경험을 쌓는 게 아닌 또래 친구에 의해 자의적으로 경험을 쌓게 되는데, 그야말로 '올바른' 방향이 아닌가 싶다. 물론,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다시피 한 어린 나이이기에 지극히 현실적인 위험 요소가 산재해 있을 것이다. 그걸 모르는 바 아니나, 어른이라고 해서 세상물정을 잘 알고 위험 요소를 자유자재로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세상은 어른보다 아이를 지키려 하기에 아이의 경험이 훨씬 더 다양하고 방대할 수 있을 테다.
로베르토 덕분에 물 위 세상을 경험하는 루카는, 줄리아 덕분에 우주로까지 나아간다. 이 세상은 웬만큼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여, 그는 부모님이나 심지어 로베르토까지 확언하는 '바다 괴물은 할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어'라는 명제를 부정하려 한다. 호기심이 상상력을 동반한 도전정신으로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왜 안 되지? 안 될 게 뭐지? 한 번 해 보면 안 될까? 해 보고 싶어!
알기 쉽고 받아들이기 쉽게 전달한, 삶의 진리
유년 시절의 다양하고 방대한 질 좋은 경험에서 촉발된 성장으로 루카와 함께했다면, 영화는 또 다른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려 한다. 시대와 조우하려는 시도임에 분명한데, '다름'을 '틀림'으로 오인하지 말고 '혐오'와 '차별'과 '편견'을 철폐해야 한다는 메시지 말이다. 루카와 로베르토가 '바다 괴물'이지만 인간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생활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보고 듣고 느낀다. 그저 '다르게' 생겼을 뿐인데 다름을 넘어선 틀림의 영역인 '괴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를 통해선 위의 메시지가 깊이 와닿진 않았다. 분명 메시지를 전하고 있긴 한데 말이다. 그건 아마도, 루카와 로베르토 그리고 줄리아가 따로 또 같이 선보이는 우정과 성장의 경험이 훨씬 와닿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딱 그 이야기와 메시지까지만 전하며 보다 진득하게 다루려 하고 다른 메시지는 최소화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그랬다면, 훨씬 더 좋은 작품으로 기억에 더 깊이 남았을지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우정과 더불어 '바다 괴물'이라는 소재로 '자아를 찾는 여정'을 그리는 데 공력을 더 쏟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루카로선, 나는 바다 괴물로 물속에서 왔지만 베스파를 타고 자유롭게 다니고 싶고 학교에 다니며 끝없이 새어 나오는 호기심을 충족하고 싶다.
<루카>는 그럼에도 누구나 알기 쉽고 받아들이기 쉽게 삶의 진리의 단면을 전달해 주는 데 확실하게 성공했다. '역시 믿고 보는 픽사'이 절로 나오게 하게끔 하는 데 분명히 성공했다.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서 이 한 편이 훌륭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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