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크루엘라>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 일명 '라이브 액션'은 2014년 <말레피센트>를 시작으로 매년 한 편 이상씩 선보이고 있다. 몇몇 작품의 기록적 흥행에 힘입은 바가 큰데, 디즈니가 먹거리를 찾아 끝없이 분주하게 헤매는 와중에 자사의 풍부한 콘텐츠들을 울궈 먹는 선택을 한 것이리라. 노래로 보면 리메이크요, 책으로 보면 개정판 성격이라 하겠다.
비슷한 느낌으로, 원작에서 파생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내놓는 것도 영화계의 새로운 먹거리로 편입된 지 오래다.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대표적인 몇 개만 소개하자면, '스핀오프'는 원작의 일부를 차용한 별개의 작품이고 '외전'은 원작의 대부분을 차용한 비하인드 스토리격 작품이고 '리부트'는 최소한의 설정만 유지한 채 모든 걸 갈아엎은 작품이고 '프리퀄'은 원작의 시간상 앞부분을 다룬 작품이고 '시퀄'은 원작의 시간상 뒷부분을 다룬 작품이다.
가장 많이 나오는 게 후속편 성격의 '시퀄'이며, '스핀오프' 또한 많이 나온다. 시퀄이 원작의 후광과 스토리와 세계관을 취할 수 있어 제작하기 쉬운 면이 있는 한편, 스핀오프는 원작의 매력을 한껏 취하되 창작력을 발휘할 수 있다.
영화 <크루엘라>는 애니메이션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와 실사영화 <101마리 달마시안>을 기반으로 한 디즈니의 라이브 액션 프로젝트에 스핀오프를 얹힌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에스텔라, 혹은 크루엘라
특별하거나 특이하거나, 머리의 정중앙을 기점으로 하얀색과 검정색으로 나뉘게 태어난 에스텔라는 어딜 가나 튀었다. 하고 싶은 데로 하는 그녀 자신도 튀었고 말이다. 결국 학교에서 퇴학 같은 자퇴를 하고서 엄마와 함께 런던으로 향한다. 그곳 어딘가에 당분간 몸을 맡길 곳이 있다는 엄마, 그런데 파티가 한창인 대저택에서 세 마리 달마시안에게 물려 절벽으로 떨어져 죽고 만다. 에스텔라는 졸지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시내로 가게 되고, 운명처럼 재퍼스와 호레이스를 만난다. 그들 모두는 고아였다.
시간이 훌쩍 지나 성인이 된 그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훔치기뿐. 그렇지만 에스텔라는 의상 디자이너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녀의 꿈을 알아챈 재퍼스가 그만의 방식을 이용해 생일선물로 리버티 백화점에 취직을 시켜 준다.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화장실 청소뿐. 불만이 쌓인 어느 날 술먹고 쇼윈도를 엉망으로 만들었고, 하필 그날 런던 패션계의 대모 바로네스 남작 부인이 백화점에 나타난다. 엉망인 쇼윈도를 보고 천재성을 직감한 바로네스는 그 자리에서 에스텔라를 브랜드 매니저로 채용한다.
바로네스 남작 부인에게 총애를 얻으며 열심히 일하던 어느 날, 에스텔라는 바로네스가 그 옛날 엄마를 절벽에서 떨어져 죽게 한 바로 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후 에스텔라는 또 다른 인격 '크루엘라'를 꺼내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런던 패션계의 혁명적 이단아로서 바로네스의 명성과 권력을 뛰어넘고자 이중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어느 날, 에스텔라는 바로네스의 비서로부터 바로네스가 자신의 친엄마라는 충격적 진실을 듣게 되는데...
'신화'라는 매력적인 원천 소스
원작의 매력적이기 그지없는 빌런 또는 해석의 여지나 사연이 있을 법한 빌런을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영화들이 몇몇 있다. 주인공으로 낙점된 빌런을 얼마나 매력적으로 그리느냐에 영화의 성패가 달려 있는데, 2010년대 들어서 만들어진 <말레피센트> <베놈> <조커>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 퀸) 그리고 <크루엘라>까지 성공적인 작품들이 많다. 그런가 하면, 작년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로 나온 <래치드>는 소설과 영화로 유명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빌런 '래치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바 있다. 원작의 '우리편 선한 주인공'이 가지는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공감 어린 사연으로 매력이 한껏 발산되는 캐릭터가 탄생한 것이다.
<크루엘라>의 크루엘라는 비록 악인에 가까운 빌런이지만 영웅과 맞닿아 있는 성장 스토리로 눈길을 끈다. 일찍이 세계적인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책 <천의 영웅을 가진 영웅>을 통해 영웅 신화의 원형 구조가 17단계로 이뤄진다고 했다. 이를 할리우드 굴지의 스토리 컨설턴트 크리스토퍼 보글러가 책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를 통해 영웅 스토리 12단계로 재탄생시켰다. 두 구조의 핵심은 동일하다. 출발, 입문, 귀환. 크루엘라는 에스텔라로서 일상을 영위하다가 런던으로 떠났고 바로네스의 브랜드 매니저가 되며 새로운 세계로 입문했으나 여러 시련을 겪고는 다시 크루엘라로 귀환한다.
이 영화는 또한 오이디푸스 신화에 빚을 지고 있기도 하다. 여성으로서 왜 엘렉트라가 아닌 오이디푸스냐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크루엘라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아예 논외이기에 오이디푸스 신화의 대칭적 성격으로서의 엘렉트라 신화가 아닌 오이디푸스 신화의 여성 버전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다만, 오이디푸스가 신탁에 의한 타의로 아버지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면 다분히 현대적으로 재탄생한 크루엘라는 자의로 어머니와 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영화가 화려하기 그지없는 외양을 보이면서도 스토리가 탄탄한 느낌을 주고 여러 장면에서 또 여러 캐릭터에서 상징 어린 면모를 보여 주는 게 바로 '신화'라는 인류의 모든 이야기 원천에서 소스를 가져왔기 때문일 테다.
이보다 더 매력적일 수 없는 빌런
<크루엘라>를 좀 더 영화적으로 즉 영상을 위주로 들여다보면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외양이 빛을 발한다. 눈으로만 봐도 충분하고 귀로만 들어도 충분하다. 아카데미 2회 수상과 8회 노미네이트에 빛나는 할리우드 최고의 이상 디자이너 제니 비번이 의상 총책임자로 임해 277벌에 달하는 의상을 제작했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한다. 특히 크루엘라가 바로네스에 대적해 런던 패견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킬 목적으로 입는 옷들은 눈을 의심할 정도이다. 그 장면에서 다른 건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엠마 스톤도.
크루엘라에게선 파격을 넘어 '혁명'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생각나게 하는데, 1970년대 런던 펑크 문화의 탄생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펑크의 여왕'이자 '런던 패션의 대모'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스타일을 참고했다고 한다. 그녀는 '다른 방식으로 하면 안 되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반면, 크루엘라와는 정반대의 느낌이자 스타일인 바로네스 남작 부인의 경우 우아함의 정석이라고 할 만한 크리스챤 디올을 참고했다고 한다. 그는 '꽃 같은 여성을 디자인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비비안 웨스트우드 스타일과 맥과 결을 같이하는 음악이라면 당연히 '펑크' 장르다. 펑크 음악은 1960년대 생겨났지만, 영화의 배경인 1970년대 전성기를 열었다. 반항, 반란, 혁명의 기조를 바탕으로 기성 주류에 직접적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극중 사운드들은 크루엘라의 모습과 기가 막히게 접목되어 생생하게 전해진다. 크루엘라라는 캐릭터성을 완벽히 대변해 주는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캐릭터로서 당당히 영화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매력적으로 재탄생한 빌런과 사연 어린 스토리가 또다시 나올까 싶다. 그녀는 1970년대 런던에 있지만 2020년대 한국에서도 전혀 이질감 없이 스며들어 통용된다. 그녀를 워너비로 삼는 이들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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