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비커밍 아스트리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스웨덴이 낳은 위대한 동화작가로 그녀를 대표하는 <말괄량이 삐삐>뿐만 아니라 <사자왕 형제의 모험> <산적의 딸 로냐> 등 살아생전 70권 넘는 책을 내놓았다. 1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2억 부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렸다. J.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 이전 어린이·청소년 문학의 현대 정전이라고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그녀의 기념비적인 연설문이 책 <폭력에 반대합니다>(위고)로 번역출판되어 나왔는데, 그녀는 1978년 독일 출판서점협회 평화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아동 폭력 반대 메시지가 농후한 발표를 했다. 이 연설은 스웨덴에서 세계 최초로 아동 체벌 금지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위대한 동화작가는 물론 위대한 사회활동가이기도 했다.
영화 <비커밍 아스트리드>는 그녀의 치열하고 다사다난하고 파란만장했던 10~20대 시절 이야기를 전한다. 덴마크 영화계를 이끌 페르닐레 피셔 크리스텐센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 연출작으로, 그녀는 칸 영화제와 베를린 영화제 등에서 수상한 바 있는 실력파이기도 하다. "말괄량이 삐삐가 없었다면 나는 감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밝힌 만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진면목을 들여다볼 기회가 아닌가 싶다. 2018년에 만들어졌지만, 우리나라엔 3년 지난 최근에 개봉했다.
위대한 작가가 되기 전의 아스트리드
1920년대 스웨덴 시골, 10대 중반을 넘어서는 소녀 아스트리드는 엄격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집안일을 돕고 동생들을 돌보며 살아가야 할 운명이다. 저녁 9시 전에는 집에 들어와야 하고 이성교제는 물론 머리 모양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와중에 아빠만큼은 그녀의 진면목, 즉 글솜씨를 알아 줘서 신문사의 인턴으로 일할 수 있게 힘을 써 준다.
그녀는 레인홀드 블룸버그가 편집장으로 있는 신문사에 인턴이자 조수로 일하게 된다. 그는 아스트리드의 가장 친한 친구 아빠이기도 했다. 맡은 일을 척척 해내며 블룸버그 편집장의 눈에도 든 아스트리드,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단발 머리를 찰랑거리며 더욱더 활기차게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어느 날 힘들어 하는 블룸버그에게 다가가는 아스트리드, 그들은 곧 성관계를 갖는 관계로 발전한다. 그러곤 얼마 가지 않아, 덜컥 임신을 한다.
엄격한 기독교 집안인 건 둘째 치고 교회의 후원으로 먹고 살기에 소식이 퍼지게 해서는 안 되었다. 아스트리드는 블룸버그의 말에 따라 스톡홀름으로 가 비서 수업을 듣기로 한다. 그런데 한 술 더떠, 블룸버그는 이혼 소송 중으로 아직 결혼 상태였기에 간통죄로 감옥을 갈 수도 있다고 하는 게 아닌가. 아스트리드는 블룸버그를 지키고자 곧 태어날 아기를 덴마크의 위탁가정에 당분간 맡기기로 하는데...
'여자'로서 신선한 생각과 시선
영화는 주지했다시피 위대한 동화작가이자 사회운동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주인공으로, 그녀의 10~20대 삶을 거의 있는 그대로 옮겨놓은 작업물이다. 하여, 비록 동화라든지 작가라든지 사회운동가라든지 하는 그녀의 직업적 정체성에 대해선 전혀 나오지 않는다. 전혀 연관이 없는 별개의 인물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10~20대의 삶이 이후의 삶을 규정하거나 삶에 지대하고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게 당연하다. 절대 별개라고 치부해 버릴 수 없다.
영화로 아스트리드의 10~20대를 들여다보면 특이할 만한 면모들이 보인다. 1920년대라는 걸 감안할 때, '여자'로서 무도회에서 혼자 깨발랄한 춤을 춘다든지 '주님 앞에선 모두 평등하다'며 9시까지 집에 들어올 것을 중용하는 엄마의 말에 반대한다든지 블룸버그가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잃은 걸 두고 "어미가 자식을 잃는 것만큼 큰 고통은 없지"라고 했을 때 "남자도 마찬가지 아니에요?"라고 되묻는다든지 과감하게 긴 머리를 잘라 버리든지 하는 건 굉장히 신선하다.
남자와 여자로 갈라쳐 버린 사회의 생각과 시선을 꺼리낌 없이 부숴 버리는 것이다. 막연히 머리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들을, 그녀는 가슴으로 인지한 채 적재적소에 타인에게 말할 수 있다. 가슴으로 인지된 개념들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농익어 삶을 규정하기에 이른다. 아스트리드의 주옥 같은 작품들 그리고 약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드높인 사회활동들이 모두 그때 이미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짜' 아스트리드 되기
영화의 제목이 왜 '비커밍 아스트리드'일까. 그는 '아스트리드'로 태어나 평생 '아스트리드'로 살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우리는 그녀를 아스트리드보다 '린드그렌'으로 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바로, 그녀의 남편 성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결혼하면 부인이 남편을 따라 성을 바꾸는 나라가 많지 않는가. 물론, 영화에선 린드그렌이 굉장히 젠틀하게 나온다.
아스트리드는 영화에서 끊임없이 외부에 의해 휘둘린다. 이걸 했다가 저걸 했다가 여길 갔다가 저길 갔다가 말이다. 명확하게, 하고 싶은 게 있었고 가고 싶은 게 있었고 생각이 있었고 의견이 있었지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름만 아스트리드였지, 정체성으로서 아스트리드일 수 없었다. 영화를 보며, 그녀가 그녀만의 생각으로 그녀만의 선택을 하길 바라게 된다.
비단 여성뿐만 아닐 것이다. 자신만의 생각으로 자신만의 선택을 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움의 대상 말이다. 하여, 이 영화는 진정한 나로 살지 못했던 여성과 엄마와 아내 아스트리드의 이야기를 보여 주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보고 깨달음을 얻어야 할 대상은 훨씬 광범위할 것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아닌 여성이자 엄마이자 아내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해당하는 사람들만 보고 느끼고 감동하고 깨달으면 안 된다. 정반대에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영화를 보고 느끼고 감동하고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뀌어 가지 않겠는가, 올바른 방향으로. 이 영화는 비록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라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짧은 시기만을 보여 줬을 뿐이지만,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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