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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중년에 들이닥치는 위기와 공허에 대하여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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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이정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이정표> 포스터. ⓒ넷플릭스

 

장거리 트럭 기사 갈립은 어느덧 50만 킬로미터 주행을 달성한다. 회사 최고의 베테랑 중 하나인 그를 모두가 신망하고 따른다. 하지만 곧 그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밤낮없이 일하며 무거운 걸 들다가 허리가 삐끗한다. 회사는 이런저런 구실로 그에게 인턴을 붙여 사수로 일을 알려 줄 것을 명령한다. 회사 최고의 베테랑이자 갈립의 절친이기도 한 딜바우그가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 야간 운행이 불가하다는 이유로 잘린 걸 보니, 여차하면 그도 잘라 버릴 심산이 아닌가 싶다.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아내의 가족에게 큰 액수를 배상해 줘야 한다. 부부 사이에 말 못할 사연이 있을 테지만, 갈립은 무표정으로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는다. 그저 가진 모든 걸 털어 돈을 장만하려 할 뿐이다. 그로선 무슨 일이 있어도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돈도 벌지 못할 뿐더러 계속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터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사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노조가 파업을 선언한다. 갈립으로선 파업 노조원 몫까지 더 열심히 더 많이 할 수밖에 없지만, 허리가 아파 이전만큼 잘하기가 힘든 와중에, 노조원들은 그를 못마땅히 여기고 회사는 베테랑으로서 그가 중재를 해 주길 은근히 바란다. 인생을 휩쓸 풍파가 한순간에 몰아닥친 듯한 이 상황을 어떻게 타파할 수 있을까? 

 

대표 인도 감독의, 인도 영화 같지 않은 인도 영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이정표>는 인도에서 건너온 작품으로 '이반 아이르'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그는 첫 번째 연출작 <소니>를 넷플릭스와 함께했는데, 두 번째도 역시 넷플릭스와 함께했다. 두 작품 모두 베니스 영화제 오리종티 부문에 초청될 정도의 위상을 보인 만큼, 넷플릭스와 함께하는 대표 인도 감독 중 하나라도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인도 영화 하면 '발리우드'라고 불리는 세계적인 영화 산업의 메카를 연상시키며 춤과 노래가 가미된 화려하고 신나는 분위기가 생각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인도 영화들은 엄연히 발리우드와는 상관이 없을 터, 실제로 만듦새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이반 아이르의 두 작품 <소니> <이정표>도 마찬가지다. 

 

'작품성'을 맨앞에 두고 작가주의 영화라고 해도 무방할 연출력을 선보이니 말이다. 특히 <이정표>의 경우 굉장히 어두운 분위기와 더불어 극적인 장치가 단 한 개도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인도 영화가 이 정도 수준일 수 있구나 싶기도 하면서, 인도 영화 특유의 생동감을 느낄 수 없기에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걸 느끼고 생각하게 해 준다는 걸 확신할 수 있다. 

 

과도기에 선 사회와 시대 그리고 중년

 

우선 제목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영어로는 'milestone'이고 한국어로는 '이정표', 한국어로는 거리 및 방향을 알려 주는 표식 또는 일이나 목적의 기준이라는 뜻을 가지는데 영어도 마찬가지로 두 가지 뜻을 가진다. 즉, 이 영화는 제목이 가지는 두 가지 뜻을 모두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하겠다. 거리 표식과 기준 말이다. 

 

영화의 최초로 돌아가서 갈립이 50만 킬로미터를 주행했다는 게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만큼 베테랑으로서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의미가 우선 떠오르지만, 한편 이젠 그만 내려올 때가 되었다는 의미도 떠오른다. 거짓말처럼 인생을 뒤흔들 만한 일이 연달아 터지지 않는가. 몸, 관계, 일 등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삐걱대지 않는가. 

 

문제는 시대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명실상부 백세 시대 아닌가, 갈립은 많아 봐야 50대일 듯한대 이제 내려오면 남은 반평생은 어찌하란 말인가. 얼마 전만 해도 5060 중년은 은퇴해서 노후를 준비하고 즐길 수도 있을 만한 나이겠지만, 이젠 그럴 수 없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시 시작될 인생 후반전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 통념이 아직 시대정신을 따라잡지 못했다. 지금이 정확히 과도기, 이 영화는 과도기에 선 사회와 시대를 중년 갈립이 맞딱뜨린 일들로 상징화해 보여 주고 있다. 

 

인생의 무상, 허무, 공허에 대하여

 

보다 일차원적으로 들여다봐도 얻을 게 있을 것 같다. 갈립이라는 캐릭터를 보자. 오직 '일'에서만 자신을 찾고 삶의 의미를 모색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매우 현실적이다. 나도 그러한 것 같은데, 언제쯤 일을 그만둘 수 있을지 매일 같이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불현듯 일에서만 나의 가치를 찾으려 한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럴 때면 인생이 한없이 무상해지곤 한다. 

 

누구도 이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테다. 돈이 없으면 살 수 없거늘, 극소수를 제외하곤 노동 없이 돈을 벌 수 없으니, 끊임없이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면, 오직 돈 때문으로만 일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순간이 오는데 거기에 가치를 부여하고 나면 인생에서 가장 큰 의미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옳지 않거나 나쁘다고 할 순 없겠지만,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허무와 공허를 물리치기 힘들다. 

 

결국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때가 올 텐데, 살아갈 돈을 어떻게 마련하고 나아가 삶의 의미를 어떻게 지닐 수 있을 것인가. 갈립은 일단 한 고비는 넘길 걸로 보인다. 무슨 수를 쓰던지 할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머지 않아 풍파가 또 한순간에 몰아칠 것이리라. 그땐 너무 많이 와 버렸을지도 모른다. 삶의 거리에서나 방향에서나 기준에서나. 그렇다고 조금 더 빨리 알아서 준비하면 나아질까. 장담하기 힘들다. 인생은 너무나 빨리 가 버리고 알면서도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으며 운명의 굴레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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