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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미나리는 원더풀 원더풀이란다!'의 진한 의미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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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미나리>

 

영화 <미나리> 포스터. ⓒ판시네마

 

지난 2월 28일 저멀리 미국 할리우드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미나리>로 윤여정 배우가 수십 개의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싹쓸어 버리다시피 하는 가운데, 영화가 제78회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것이다. 불과 지난해에는 <기생충>이 같은 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쾌거를 이룩한 바 있다. <미나리>도 그 전철을 따르지 않을까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 하나는 <미나리>가 미국 입장에서 '외국 영화'인가 하는 것이다. 제작사는 물론, 감독과 출연 배우들(윤여정, 한예리 배우만 한국인) 모두가 미국인이거니와 미국에서 100% 촬영했는데 말이다. 다만, 영화 대사의 50% 이상이 한국어였을 뿐이다. 이 점이 골든 글로브의 규정에 걸렸는데, 지난해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페어웰>과 동일한 맥락이다.

 

문제는, 골든 글로브 역사를 훑어 보면 영어보다 서양의 다른 언어가 많이 쓰였을 때 외국어영화상이 아닌 작품상 후보에 오르거나 작품상을 탄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내막이나 사연이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상당히 노골적인 아시아계 차별이 아닌가 싶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미나리>는 작품성과 연기력으로 가히 광폭 행보를 계속하고 있으니, 앞으로의 낭보들도 기대해 본다. 불과 몇 시간 전에는 미국 아카데미의 바로미터 중 하나인 영국 아카데미 일명 'BAFTA'에서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도 들려왔으니 말이다. 

 

어떻게 흘러갈지 모를 다섯 가족의 정착기

 

198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아칸소로 이주 온 어느 한인 가족. 제이콥은 가족들에게 가장으로서 해냈다는 걸 보여 주고자 한국 채소 농장을 만들어 성공하고 싶다. 아내 모니카는 심장이 좋지 않은 막내아들 데이비드도 걱정되고 시골에서 다시 시작하는 게 안정적이지 않은 것 같아 불만이지만, 그래도 원래 남편과 하던 일(병아리 감별사)을 계속 하며 가사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제이콥도 농장을 성공시키기 전까진 병아리 감별사 일을 계속하기로 한다. 

 

하나하나, 농장을 만들어 가며 희망을 일구는 제이콥. 모니카는 아이들 걱정에 결국 한국에서 엄마 순자를 불러온다. 순자는 가방 가득 이것저것 챙겨서 왔는데 고춧가루, 멸치, 한약 그리고 미나리 씨앗도 있었다. 큰딸 앤과 막대아들 데이비드는 외할머니 순자와 많은 시간을 갖게 되는데, 평범한 여느 할머니와는 뭔가 다른 그녀가 탐탁지 않다. 

 

제이콥의 농장에 위기가 찾아 온다, 공짜로 퍼올리던 땅속 물이 매마르고 납품이 진행되고 있던 거래처에서 약속을 어긴다. 순자는 하룻밤 새에 뇌졸중에 걸려 몸의 오른쪽이 마비된다. 모니카는 아칸소에서의 삶을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아이들과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려 한다. 그런가 하면, 데이비드는 거짓말처럼 심장 질환이 낳고 순자가 집 근처에 심어 놓은 미나리는 혼자서도 무럭무럭 크는데... 다섯 가족의 정착기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낯선 땅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한인 가족

 

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 미국 낯선 땅에 뿌리내리고자 한 어느 한인 가족의 정착기이다. 외양은, 흔하디 흔한 아메리카 드림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목적의식으로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희망을 일구고 환희와 좌절의 성장을 맛보며 고군분투하고 다시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말이다. 이 영화를 이런 식으로 봐도 아무런 이질감이 없을 테다. 

 

하지만, 영화 곳곳의 날선 대사와 낯선 인물들을 보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캘리포니아 그리고 서울이라는 도시와 시골의 차이, 가정에서 자연스레 나뉘어지는 남녀의 역할, 가장이 홀로 느끼는 가족부양의 부담감 등에서 가정 내에서조차 갈등 요소가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비단, 이주 가족의 혼란과 불안 때문이 아니라 보편적 가족이 모두 끌어안고 가야 할 숙제이다. 

 

그런가 하면, 제이콥의 농장에서 함께 일하는 나이 먹은 아저씨 폴은 종종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악령을 쫓아내거나 예수께 기도하는 행동을 굉장히 기이하게 하는 것이다. 그는 일요일, 즉 주일에는 아주 큰 십자가를 지니고는 '이곳이 나의 교회'라며 고행하듯 길을 걷기도 한다. 제이콥이 농장 터를 고를 때 어느 눈 가린 백인 남자가 수맥을 찾는 장면도 나온다. 상당히 이질적인 종교·주술 행위들이 불편하게 다가왔는데, 여느 시골에 남아 있을 법한 왜곡된 모습들이 아닌가 싶다. 

 

특유의 생명력과 적응력 그리고 영향력의 '미나리'

 

영화 <미나리>를 말함에 있어 제목의 '미나리'를 빼놓을 수 없다.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라고 할 만한대, 순자가 한국에서 들여온 미나리 씨앗을 집 옆 시냇가에 뿌리면서 하는 말 "미나리가 잘 자라네. 미나리가 얼마나 좋은 건데. 잡초처럼 아무데서나 막 자라니까, 누구든지 다 뽑아 먹을 수 있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다 뽑아 먹고, 건강해질 수 있어. 김치에도 넣고, 찌개에도 넣고, 국에도 넣고, 아플 땐 약도 되고, 미나리는 원더풀 원더풀이란다!"가 자못 심금을 울린다. 한인의 특성을 말하는 것 같다. 

 

한인은 특유의 끈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으로 어딜 가도 살아남아 성공을 이룩하고야 말지 않는가. 그러면서 미나리처럼 방대하고도 선하기만 한 영향력을 누구한테고 끊임없이 뿜어 내기도 한다. 극중에서 미나리는 순자가 네 가족에게 선사하는 선물과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러며 말하는 것 같다.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건, 희망도 환희도 좌절도 성장도 회복도 아닌 '가족' 그 자체라는 걸 말이다. 

 

같은 목적을 꿈꾸지만 다른 방향이라면 괜찮을 걸까, 나중에 다시 만나면 되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다른 목적이라도 같은 방향을 보는 게 맞지 않나 싶다, 결과 궤가 같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제이콥과 모니카는 같은 목적을 꿈꾸지만 엄연히 다른 방향을 보고 또 향하고 있었다. 그들 앞에 나타난 순자가 그들을 한곳으로 모이게 했을까? 영화의 서사 맥락상 그래야 할 테지만, 영화는 끝나기 직전까지 진짜 속내를 내비치지 않는다. 영화는 말하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순자가 오고 나서부터 계속 보여 왔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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