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퍼펙트 케어>
영국 출신 할리우드 배우 '로자먼드 파이크'를 들여다보자. 자그마치 20여 년 전 <007 어나더데이> 본드걸 '미란다 프로스트'로 화려하게 신고식을 치른 후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연기력+흥행력 겸비 여배우로 우뚝 선 그녀는 유독 상복이 없었는데, 이번 제78회 골든 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세 번째 노미네이트만에 이룩한 쾌거,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그녀는 <오만과 편견> <언 애듀케이션> <세 번째 사랑> 같은 드라마, <써로 게이트> <잭 리처> 같은 액션, <타이탄의 분노> 같은 블록버스터 등 다양한 장르에서 주연급으로 활발히 얼굴을 비췄지만 큰 임팩트를 주진 못했다. 그러던 2014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나를 찾아줘>를 시작으로 그녀만의 캐릭터를 완성한다. 장르는 '범죄 스릴러', 캐릭터는 '악녀'로 말이다.
<나를 찾아줘> 이후 이번 새로운 영화 <퍼펙트 케어>로 또 다른 정점을 찍으면서 로자먼드 파이크의 시대를 열어젖힌 듯하다. 비슷한 캐릭터로 소모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한편, 같은 악녀라도 다양한 사연과 퍼포먼스를 보이는 캐릭터라면 언제 봐도 좋을 것 같다. 이제 로자먼드 파이크의, 로자먼드 파이크에 의한, 로자먼트 파이크를 위한 영화 <퍼펙트 케어>를 들여다볼 차례다.
잘못 건드렸다가 시작된, 목숨 건 전쟁!
말라 그레이슨(로자먼드 파이크 분)은 은퇴자들의 건강과 재산까지 완벽하게 관리하는 회사의 CEO로, 명망 높은 프로 후견인으로 판사까지 그녀를 100% 신뢰한다. 그녀는 감정을 섞지 않은 채 오로지 은퇴자 혹은 환자의 안위만을 생각하기에 가족보다 자신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하고 또 자신있게 말한다. 그게 '옳은 일'이라고 말이다.
누구도 반론하지 못할 논리로 이번에도 승소한 그레이슨, 회사로 복귀하자마자 다음 일에 착수한다. 그녀가 지분을 조금 가지고 있는 요양원 VIP실에서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재빠르게 의사를 만나 '괜찮은' 사람 한 명을 물색한다. 기억상실 증상을 아주 조금 보이고 있는, 돈 많지만 자식도 남편도 유족도 없이 혼자 부촌에 살고 있는 은퇴 여성 제니퍼 피터슨이었다. 그들은 재판을 통해, 그레이슨이 피터슨의 법적 후견인이 되게끔 조치한다. 그러곤 바로 실행에 옮긴다.
그레이슨은 아무 문제 없이 일상을 잘 영유하고 있던 피터슨을 데리고 와 핸드폰을 빼앗고는 약을 먹여 오히려 정신에 이상을 생기게 한다. 그러곤 요양원비를 감당해야 한다는 이유로 멋대로 재산을 처분해 버린다. 그러던 중 족히 수백만 달러에 달할 다이아몬드 뭉치를 발견하는데, 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장물로 보였다. 왠지 찜찜하지만 그대로 진행하기로 하는 그레이슨, 하지만 그녀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걸 건드린 꼴이 되었는데... 제니퍼 피터슨을 둘러싸고 그레이슨과 러시아 마피아와의 목숨 건 전쟁이 시작된다.
'완벽한 돌봄'의 병적인 의미
영화 <퍼펙트 케어>는 투 트랙으로 즐기면 좋을 듯하다. 제목을 음미하며 즐기는 게 하나다. '완벽한 돌봄'이라는 뜻일 제목, 이 얼마나 좋은 느낌인가?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 누군가가 나를 돌봐 준다는 것. 특히, 고령화 시대의 아픈 손가락이자 점점 관심 밖으로 밀려 나거나 방치하게 되는 대상인 환자이자 은퇴자, 노인들을 돌본다는 건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노려 파고들었다.
수요가 많아진다는 건 사업이 된다는 것, 즉 환자이자 은퇴자, 노인들을 돌보는 사업이 큰 돈으로 이어지기에 숭고한 일을 한다는 겉모양을 등에 엎고 실속을 챙길 수 있는 것이다. 완벽한 돌봄 시스템으로 안락하고 편안한 노후 생활을 보장받고 있는 것 같지만, 천편일률적인 돌봄 시스템으로 감금 당한 채 내가 나일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나를 돌볼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식도 나를 제대로 돌봐 줄 수 없고 방문돌봄으로도 완벽하게 돌봐 줄 수 없으니 시설에 들어가지 않기가 힘들다.
현재도 현재이지만 급격히 다가올 암울한 미래의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이다. 모든 게 사업화되어 가는 중에, 최후까지 인간이고 싶은 인간의 당연한 마음을 이용하며 착한 가면을 쓴 나쁜 내면의 지독한 발현인 것이다. 다들 느끼고 또 잘 알고 있지만 어찌할 방도를 찾기 힘들며, 누구나 한 번 거쳐 갈 것이기에 얽히고 설킨 꼬이고 꼬인 실타래를 풀기 힘들다. 영화는 급격히 변하는 세상의 지독한 시스템의 일부만을 가져와 보여 주며, 곧바로 범죄 스릴러로의 길을 간다. 재미와 의미를 다잡을 수 있을까.
신선한 '케이퍼 무비'
그레이슨이 그동안 한대로 제니퍼 피터슨을 '요리'하려 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상대가 끼어든다. 신고되지 않은 다이아몬드가 대량으로 발견되었을 때부터 알아봤지만 말이다. 그녀가 러시아 마피아가 연류되어 있었던 것이다. 은퇴한 마피아 두목이라든지 마피아 두목의 친지라든지, 여하튼 빨리 발을 빼면 이제까지처럼 사업(이라고 부르는 사기)을 이어나갈 테고 발을 빼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큰 돈을 만질 기회를 얻을 테다.
영화는 그레이슨이 발을 빼지 않고 마피아에 도전하면서 '케이퍼 무비' 혹은 '하이스트 무비'로의 장르를 명백히 한다. 명망 높은 회사의 CEO이지만 실상 사기꾼인 범죄자 그레이슨이 러시아 마피아의 수백만 달러짜리 다이아몬드와 마담 피터슨을 훔쳤으니 말이다. 통상적인 케이퍼 무비가 범죄자들이 모여 나름의 사연과 이유로 통쾌하하게 크게 한탕하는 플롯이라면, 이 영화는 영문 모른 채 크게 한탕을 해 놓곤 발을 빼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히는 플롯이다. 앞뒤가 바뀌었을 뿐 큰 틀은 같다.
제목에서 이어지는 의미와 함께 범죄자가 주인공이 되어 범죄자의 것을 훔치는 재미도 두루두루 갖춘 영화라고 평할 수 있겠다. 거기엔 로자먼드 파이크의 '발암' 악녀 연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단연 높은데, 그녀가 하는 일과 품은 생각은 영화의 지독한 의미를 상기시키고 또 재미까지 이어진다.
어차피 살다가 죽을 인생, 부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모든 걸 앞선다. 러시아 마피아도 그녀를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의 반전이 압권이다. 영화의 앞과 뒤가 완벽한 대구를 이루며 소름이 일게 하며, 영화의 중반 이후 급격히 케이퍼 무비로 전환되며 잊었던 '퍼펙트 케어'의 지독한 의미를 한순간에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근래 보기 드문, 완벽한 결말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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