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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 그럼에도 단단한 영화 <세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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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세자매>

 

영화 <세자매> 포스터. ⓒ리틀빅픽처스

 

일부러 꾸긴 듯한 느낌의 배경에, 세 여성의 얼굴이 나란히 있다. 일면 평온해 보이는 얼굴들, 눈을 감고 있다. 메인 카피 두 줄이 보인다. '어쩌겠어요 이렇게 다른 걸?' 다르지 않고 비슷해 보이는 얼굴이라 매치가 잘되진 않지만, 이 영화가 하려는 말인 것 같아 마음속에 저장해 둔다. '세자매'라고 크게 쓰여 있는 제목을 보고 문소리, 김선영, 장윤주의 이름을 본다. 

 

포털 사이트에 올라간 보도자료를 훑어본다. 완벽한 척하는 가식덩어리 둘째 미연, 괜찮은 척하는 소심덩어리 첫째 희숙, 안 취한 척하는 골칫덩어리 셋째 미옥이라고 세 자매를 소개하고 오랜만에 맞이한 아빠 생신에 모여, 부모에게 사과받고 싶었던 자매가 폭발한다고 한다. 웬만한 가족 영화는 중간 이상할 테고, 배우 면면도 화려하며, '척하며' 살다가 한데 모여 폭발한다는 시나리오에 흥미가 돋는다. 

 

영화 <세자매>는 사전 정보 하나 없이 포스터와 보도자료 등으로 대략의 느낌만 파악한 후 보게 되었다. '파란만장' '좌충우돌'이라는 단어가 연상되어 봤건만, 정작 영화는 정녕 '고통'스러웠다. 영화의 만듦새나 연기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내내 마음을 너무나도 힘들게 했다. 세 자매의 일상 그리고 삶의 단면만을 보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뭔가 다른 세 자매의 면면

 

첫째 희숙은 작은 꽃집을 운영하며 말할 수 없이 막돼먹은 딸과 함께 살고 있다. 희숙이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어도 별생각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폐륜아라는 느낌보단, 겉은 자랐지만 속은 아직 유아기에 머무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희숙은 버는 족족, 그리고 빌려서라도 사업을 말아 먹고 별거하는 남편에게 상납하듯 돈을 준다. 그녀는 누가 뭐라 하든 하염없이 웃으며 지나갈 뿐이다. 

 

둘째 미연은 대형 교회 집사이자 성가대 지휘자로 뼛속 깊이 투철한 기독교 신자인데 교수 남편을 둬 잘 살기까지 한다. 가정을 이끄는 데 있어서도 기독교 정신으로 사랑을 실천하려 한다. 그야말로 두루두루 완벽한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바람 핀 흔적과 현장을 목격한 후 꼬여 간다. 그녀의 완벽함 뒤에 가려진 가식의 진짜 얼굴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셋째 미옥은 극작가로 너무나도 심각한 슬럼프에 빠져 있다. 주위 모든 사람을 힘들게 한다. 어딜 가나 누구한테고 욕을 하는 게 다반사이다. 애 딸리고 돈 많은 야채 유통업 사장님과 결혼했는데, 엄마 노릇을 할 줄도 모르고 하기도 싫은 그녀는 매일같이 막무가내로 난장판을 만들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 유일한 말 상대는 둘째 언니 미연뿐,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취해서 전화해 옛날 얘기를 꺼낸다. 

 

가족 영화의 외형, 심리 영화의 내형

 

영화 <세자매>는 완벽한 '가족 영화'의 외형을 띄고 있다. 세 자매를 통해 판이하게 다른 이 시대의 가족상 그리고 인간군상을 보여 주며 나름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뜻밖에도 '심리 영화'였다.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는 개개인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아픔'이 준 영향 그리고 '아픔'을 견디는 법을 세 자매를 통해 각기 다르게 보여 주고 있다고 보았다. 

 

희숙은 자신감뿐만 아니라 자존감이 아예 없어 보인다. 한없이 속으로만 넣어 두며 절대 밖으로 표출하지 못한다. 그저 실없는 웃음으로 대체할 뿐이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경험을 했다고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미연은 모든 희로애락을 투철한 기독교 사상으로 치환한 듯하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겨우 버티고 억누르며 살아왔다고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미옥은 반대로 그 무엇도 담아 두려 하지 않고 모든 걸 표출한다. 문제는 부정적이고 과격하게, 피해를 주는 방식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영화의 시작에서, 오밤중에 겉옷을 걸치지 못한 채 두 여자아이가 손을 잡고 급하게 뛰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세자매 중 둘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고 그들이 어째서 그 시간에 그 차림으로 그렇게 뛰어 가야 했을까 생각하니 '가정폭력'밖에 답이 나오지 않는다. 세 자매는, 하나같이 빙퉁그러진 성격이 형성되고 삶의 형상까지 나쁜 영향을 미쳤을 정도의 경험을 했던 걸까. 추측하건데 그랬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추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너무 힘든 감상이었지만, 잘 만든 영화다

 

'내면아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개인의 정신 속에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재하는 모습의 아이로, 어린 시절의 주관적인 경험이 평생 동안 지속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극중에서 이 모습이 가장 적확하게 나오는 건 첫째 희숙 모녀인데, 희숙은 내면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듯한 모양새다. 그런가 하면, 그녀의 딸은 고어틱하게 치장하고 막막을 서슴지 않는 겉모습과 달리 엄지를 물고 자는 등 역시 내면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듯하다. 내면의 성장이 멈춰 버린 엄마와 역시 내면의 성장이 멈춰 버린 딸.

 

미연과 미옥도 어린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또는 벗어나려 하지만 당하고 봤던 걸 답습하는 모습을 보인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지만 가정폭력을 일삼았던 아빠를 쏙 빼닮은 삶을 사는 듯한 미연, 아주 온화한 외면에 온화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내면이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미옥은 아마도 '폭력'이라는 두 글자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녀가 가정폭력을 목격했을 당시 그녀는 아직 제대로 자아를 형성시키기 전이었을 테니 말이다. 희숙은 당했고, 미연은 배웠으며, 미옥은 답습한 게 아닐까.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찢어지고 머리가 웅웅 울리는 영화, 시종일관 힘들었고 아팠다. 그렇지만 이건 '감정'적인 면이고 '이성'적으로 접근해 보자면 매우 잘 만들어진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건 내 마음이지, 영화가 아니었다. 영화는 아주 단단하고 탄탄했다. 감정이입이 최대치로 되게끔 만든 영화라서 이성적으로 보기 힘든 아이러니가 힘들게 했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다분하다. 

 

어떤 식으로 감상하든 결국엔 '우리' 세 자매를 응원하게 된다. 그들의 일상을 보면 치가 떨리고 답답하고 짜증나지만, 그들의 삶 전체를 들여다보면 그저 불쌍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나무를 보지 말고 숲 전체를 보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세 자매를 완벽하게 연기한 세 배우에게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지만, 각본과 연출을 도맡아 한 이승원 감독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될 수밖에 없다. 그의 차기작을 꼭 챙겨 볼 것이고, 그의 이전 작품들도 챙겨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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